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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리스트 1 ㅣ 블랙 캣(Black Cat) 10
새러 패러츠키 지음, 나선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영국에서 지하철 테러가 일어났을 때 영국은 대테러 작전에 나섰고 그 와중에 엉뚱한 브라질 청년을 쏘아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단 사살한 뒤 신원을 확인한다는 것이 대테러 작전의 명분이고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미국의 애국법의 근간이다. 일단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경계하라. 종교가 다른 사람을 경계하라.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일단 죽이고 그 뒤에 조사하라.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일인가.
그런데 이런 일이 지금 세대에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은 어느 세대, 어느 나라에서도 존재했다. 유럽의 마녀사냥도 대표적인 이런 예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말도 안 되는 인혁당 사건이라는 걸 조작해서 사형시킨 일도 여기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매카시즘이 한창이던 미국의 3,40년대와 지금을 비교하게 해 준다. 그때를 산 사람들, 그때를 살아낸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과 가식과 함께 현재 미국에서 9.11테러 이후 사람들을 옳아 매고 있는 것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말해준다.
한 흑인 기자가 죽은 채 발견된다. 꼭 백인 기자는 그냥 기자로 쓰여 지는데 흑인 기자는 앞에 반드시 흑인이라고 명시를 한다. 흑인 의사. 흑인 간호사, 멕시코계 변호사, 일본 정원사 등등... 그러니까 아직도 미국은 백인만의 나라인 셈이다. 백인 부자들이 사는 곳에 흑인 기자가 죽었다는 것에 대해 백인 경찰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곳에 흑인이 있었으면 범죄자가 아니고 뭐겠어?" 그러니까 흑인이 뉴올리언즈에서 물건을 들고 나오면 훔친 거고 백인이 들고 나오면 가지고 나온 것이 되는 것이다. 백인이 죽었으면 살해된 것이 되는 것이고. 어쩌면 흑인이 범인이라고 단정할지도 모르지.
다시 매카시즘으로 돌아가서 매카시즘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매카시즘이란 공화당 의원이었던 매카시가 일으킨 것으로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反)공산주의 선풍이다. 그때 찰리 채플린도 미국을 방문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헐리우드 10인이라는 리스트를 만들어 그들을 축출했는데 그들은 애드리언 스콧, 돌턴 트럼보, 새뮤얼 왜츠, 레스터 콜, 존 하워드 로선, 링 라라드너 주니어, 앨버트 몰츠, 알바 베시, 에드워드 드미츠리, 허버트 비버먼이다. 모든 걸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때 흑인에 공산주의로 찍힌 헐리우드 스타(?)가 있었다면 백 프로 맥카시즘에 의해 희생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다시 미국에서 애국법이라는 탈만 바꿔 쓰고 등장한 것이다. 자신들의 죄는 보지 못한 채 그들은 매년 악의 축이라느니, 경제 제재를 가해야 할 나라라느니, 심지어는 전쟁도 마다 않고 있고... 누가 아는 가. 이럴 때 우리가 미국에 밉게 보이면 우리도 그들의 악의 축이 되어 공격을 받게 될지...
V. I. 워쇼스키... 모든 탐정이 그렇듯이 부자들의 일만 거의 맞아 한다. 왜냐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부자들이 감추고 싶은 것이 더 많은 법이니까. 내 생애 다시는 워쇼스키를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런 날도 있다니 좋기는 하지만 뒷맛은 참 쓰다. 뭐, 한마디로 말하자면 워쇼스키 너마저도...
워쇼스키가 등장한 이 작품은 그런 대비가 좋았다. 하지만 대비만 좋았을 뿐, 어쨌거나 힘 있는 자는 절대로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힘과 권력만 있다면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고... 그래서 죄 없이 죽은 흑인 기자의 여동생은 말한다.
"어차피 우린 알고 있었어요, 처음부터. 그 약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오빠를 죽였다는 것을 말예요. 마침내 확실하게 그 말을 들은 게 힘들 뿐이에요. 오빠는 사실 건강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렇죠? 미시간 대학에 다녔건, 상을 탄 기자였건, 건강식을 챙겨먹었건 상관없었던 거예요, 그렇죠? 결국 오빠는 흑인 남자들에게 찾아오는 질병으로 죽은 거예요. 살인 말이예요. 대학교육을 받았어도, 점잖게 살아왔어도 아무런 보람 없이 말예요. 그건 우리를 비켜가지 않아요."
일개의 탐정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과도한 기대를 건 나도 참... 하지만 정의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막아줄 어떤 것도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냥 워쇼스키처럼 연인의 무사하다는 전화 한통에 그래도 기뻐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솔직한 심정으로 워쇼스키는 진짜 탐정이다. 그에게는 어떤 권력도 없기 때문이다. 권력이 없으니 당하게만 된다. 너무 당하니 그래도 스카페타처럼 권력이 있어 지켜줄 무언가가 있었음 바라게 된다. 하지만 꼭 보시기... 필립 밀로, 루 아처의 계보를 잇는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탐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