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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다알리아 1
제임스 엘로이 지음 / 시공사 / 1996년 5월
평점 :
절판
선입견을 갖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실책이 되는 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 작품의 소재가 실제 일어난 미해결 살인 사건이라는 것에 현혹되어 결말까지 그렇게 작가가 그릴 거라고 생각하다니. 마지막에 가서야 이 작품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작가에게 미안하다. 좋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이 작품은 1947년 헐리우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미해결 살인사건을 소재로 버키 블라이처트와 파트너로 일하는 리 브랜처드가 함께 '블랙 다알리아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같은 권투선수 출신이지만 버키와 리는 너무 다르다. 그러면서 인연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관이 된 동기에서 권투를 하던 유명한 선수 두 명이 경찰로 만나게 된 것, 사건과 사랑까지 모두 인연, 또는 악연, 조작된 필연으로 계속 암울한 1940년대 로스엔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편의 필름 느와르를 완성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쇼트라는 여인의 처참한 죽음과 엘리자베스를 알던 엘리자베스를 닮은 매들린과의 만남, 그러면서 꼬이게 되는 버키의 운명과 거기에 휩쓸리는 리와 케이의 운명이라는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조화를 이 책에서 본다. 그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실이라는 것보다 허구라는 것이 더 사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쓸쓸하다. 암울하고 우울하고 서글픈 악연들의 결합이여... 나는 그 악연을 추모한다.
이 작품은 제임스 엘로이의 L. A. Quartet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The Black Dahlia (1987)', 'The Big Nowhere (1988)', 'L. A. Confidential (1990)', 'White Jazz (1992)' 이렇게 네 작품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로스앤젤레스라는 독특한 도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만의 독특한 암울함으로.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가 모두 출판되기를 바란다. 두 권이 나왔으니 나머지 두 권만 나오면 되는데. 시리즈 제목처럼 4인조에 2명이 빠진 구성은 말이 안 되니 말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 영화 <살인의 추억>을 생각했다. 사람 사는 곳은 같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누구도 죽은 자를 위해 진심으로 뛰어 주지 않는다. 피해자를 위해 진실로 뛰어 다니는 경찰이 있다면 그는 제정신이 아니다. 아니 그를 제정신으로 사회가 놔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란 그런 거니까. 인간이 사는 사회는 어떤 때는 블랙 홀 같은 느낌을 준다. 한번 빠지면 헤쳐 나올 방법도 없고 어디로 빨려 들어가는 지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