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약속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는 두 단편이 실려 있다. 하나는 부제가 추리 소설에 부치는 진혼곡인 <약속>으로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다른 하나는 부제가 아직도 가능한 이야기인 <사고>로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는 추리 소설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추리 소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약속>은 정말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가 절로 떠오르는 작품으로 하지만 만약 영원히 기다려도 잡을 수 없다면, 덫을 놓고 기다려도 오지 않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끝까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고자 한 미련한 경찰과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어 버린 사건 앞에서 과연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살인의 추억>의 실제 사건인 화성 연쇄 살인범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직도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경찰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개인적으로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부치는 진혼곡'이라는 부제를 달고 싶다.
또 다른 작품 <사고>는 죄의 고백이자 자신의 성찰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전직 법조인들의 모의 재판에 회부된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유죄로 인정받자 자책하다 목을 매는 작품이다. 예수께서 죄 있는 자 돌로 쳐라 하셨거늘 아직도 돌을 들고 우린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다. 언제나 인간은 나아질지... 뒤렌마트는 이런 작품을 쓰면서 얼마나 인간에게 염증을 느꼈을지 생각해 봤다. 그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글로 미천한 독자가 감명을 받으니 걸작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