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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관 살인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6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추영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평점 :
십여 년전 여름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느라 진땀을 뺐다. 그래도 다 읽었다. 읽고 나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내 자신이 대견했다. 아직도 난 어떤 작품의 번역 상 오류는 웬만하면 넘어가는 편이다. 아주 막무가내가 아니라면 <장미의 이름>도 있었는데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품... 다 읽고 나니 번역한 이가 불쌍하다. 번역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이 작품은 해설집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일본에 해설집이 나왔으면 몰라도 번역, 그 이상의 번역이 필요한 작품이라 번역적인 오류를 역자에게만 돌리기에는 작가의 글쓰기가 너무 복잡하고 난해했다.
비슷한 관이 들어가는 작품으로 유키토 아야츠지의 관 시리즈가 있는데 겻 가지와 살을 모두 발라내고 뼈대만 보면 이 작품이랑 흡사하다. 단지 그 살과 가지가 문제다.
흑사관이라는 한 유럽풍 저택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1930년대의 살인 사건... 한 기이한 생각을 가진 남자에 의해 그 저택에서만 살게 된 네 명의 유럽인들... 그리고 그의 자식과 비서... 그가 죽은 뒤에 벌어지는 참혹하고 기이한 살인사건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말 많고 잘난 척 잘하는 탐정이 파일로 번스이상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 노리미즈 린타로가 그 파일로 번스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그 이상한 흑마술에 관한 책에 대한 얘기나 의학서적 이야기나 사람들과 주고받는 대화도 무슨 시의 글귀를 읊어 거기서 정신 감정을 하듯 하지 않나, 살인 사건에도 무슨 과학의 법칙을 대비시키지 않나...끝까지 오망성이라는 얘기와 정령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아무튼 이 작품은 노리미즈의 말로 시작해서 노리미즈의 말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대단한 번역가라 할지라도 그가 뜬금없이 내뱉은 말을 어디의 어떤 작품인지, 그가 어떻게 사용한 것인지를 미리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역자가 조금만 더 성의를 보였더라면 좀 더 매끄럽고 읽기 쉬운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각주와 해설을 다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건 이런 뜻으로 쓰인 말이라고 나중에 노리미즈가 설명을 하니 뒤를 보고 미리 앞에 약간의 언급은 해줘 독자로 하여금 읽는 지루함을 줄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일본 미스터리 작품의 4대 기서의 한 작품을 읽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지만 난 절대 이 책을 가지고 어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작품을 읽지 않으면 후회가 남을 것이다. 먼저 읽기 전에 마음 단단히 먹고 번역의 흠은 접고 보시길 바란다. 작품 자체의 꼬임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 읽는 나는 아직도 이 작품에 대해 이해를 못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