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후의 배심원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토니 모리슨의 <재즈>를 떠올렸다. 1970년대 미국 남부... 그곳에서 사는 흑인 노부인의 인생 이야기는 사실 범죄 이야기보다, 주인공의 신문사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웠다. 가끔 존 그리샴은 나를 혼란 속에 빠트린다. 추리 작가로서의 연막인지, 아니면 순수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가 흑인이든, 백인이든을 떠나서 그들은 환상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감명적이라던지, 아니면 그렇지 않다던지 하는 관점을 떠나서 말이다.
<타임 투 킬>에서 독자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통계적으로도 나와 있는 일이지만 백인 여자가 살해당하는 경우 미국인은 더 분노한다. 그리고 가해자가 흑인인 경우라면 가차없고 백인이더라도 형에 큰 차이는 없다. 단지 돈이 있고 없고 만이 문제가 될 뿐...
흑인은 지금도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 언젠가 덴젤 워싱턴이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유명한 영화배우가 된 후에도 뉴욕에서 백인 택시 기사에게 승차 거부를 당했었노라고.
이것이 지금 현실일진대 이 책에 등장하는 점잖은 전설적인 흑인 노부인에 대한 그림은 유토피아적인 환상일 뿐이다. 백인 신문사 사장과의 유대도 작위적이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미국의 많은 사람 중에 1970년대 단 한 사람쯤 이런 유형의 우정을 이룩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도 너무 잔인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작위적이다. 어울리지 않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은 당연히 픽션의 소재가 된다. 그렇다고 픽션이 보편성을 잃는다면 그건 우스운 블랙 코미디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존 그리샴의 그런 작위적 짜 맞추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책을 많이 파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야박한 것 같고...
그런데 왜 제목이 최후의 배심원인 것인지... 나는 아직도 재즈의 망상에 취해 그 배심원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이 작품은 괜찮았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물론 내게는 여전히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가 제일 낫고 그 다음이 <사라진 배심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