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티드 맨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라는 스파이 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쓴 작가 존 르 카레가 2008년 새로운 작품을 출판했다. 독일이 통일되고,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스파이 소설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늘 되풀이되고 약간씩 말만 달라질뿐 스파이 소설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내 생각은 무지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제 존 르 카레는 좀 더 깊이 있는 스파이 소설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스파이 소설이 있게 하는 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 자체에서 오는 그런 작품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한 사업가가 미국의 관티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테러리스트로 지목받아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는데 이미 그의 삶은 망가진 뒤였다는 이야기도 봤다. 이 작품은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남자가 독일 함부르크에 나타나 착한 무슬림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는 많은 곳에서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체첸인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를 도와줄 러시아어를 하는 인권단체 생크추어리 노스 소속의 변호사 아나벨은 자칭 이사라고 부르는 남자를 돕기 위해 애를 쓴다. 그는 함부르크에 반드시 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작품은 이사를 독일 시민이 되게 하기 위한 아나벨과 자신의 아버지때부터 내려오는 이상한 신탁기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제는 늙고 망해가는 은행가 브뤼가 착한 일을 하고자 애를 쓰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을 서로 조종하려는 독일과 영국의 전문가들의 행동과 이 일이 단순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계획된 일이고 또 다시 계획되는 일임을 알려준다. 이사가 테러리스트인지 아닌지 그들은 모른다. 그는 의사가 되고 싶은 가여운 청년일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많은 나라에 수배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미 그것을 알고 정보국의 변방으로 밀려난 바흐만은 그를 이용해서 진짜 테러리스트를 잡을 덫을 놓기로 한다. 물론 여기에 영국과 미국이 합류한 것은 물론이고. 

이사의 행보를 따라가며 시민권을 얻기 위해 애를 쓰는 불법체류자들의 불안한 삶과 양심때문에 편안한 삶보다 남을 돕는 삶을 선택했지만 그것마저 버거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을 이용하는데서 오는 양심과 싸우는 사람들을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사가 만약 무슬림이 아닌 서양 사람이었다고 해도 이들이 이런 행동을 보였을까? 만약 이사가 진짜 테러리스트라면 이렇게 허술한 모습으로 돌아다닐까? 작품은 이사의 이전 모습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등장했고 발견된 것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발생한다. 그들의 생각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 무슬림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시발점이 무엇이었는지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이것은 역사의 되풀이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십자군전쟁때와 지금이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종교로 전쟁을 하고, 사상과 이념으로 전쟁을 하고, 인종과 문화로 전쟁을 하는 한 이런 일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작품은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평소에 법과 정의는 모든 인간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다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아직도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결코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모든 인간은 무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죄고 어떤 인간은 무죄가 확실하더라도 유죄다. 그건 정치 게임의 일환이다. 인간이 그 정치라는 체스판의 졸이 되어버리는 순간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작가는 늘 스파이 소설 속에서 이런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인간에 대해 쓰고 있다. 그의 눈은 객관적이고 냉정하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분명 이런 일을 당하고 있으리라. 그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 또한 인간, 개인, 소시민의 한계다. 권력없는 자들의 한계가 어쩌면 원티드맨을 만드는 것을 보고만 있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과연 국가 권력이 테러리스트들을 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흉내만 내는 것인지, 테러리스트를 잡는다는 것을 표면에 내세워 갈등을 더욱 조장하고 분열을 획책하려는 속셈은 아닌지 묻고 있다. 진짜 테러리스트들을 진압할 생각이라면 근본적인 원인 해결만이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이 인권을 이야기한다. 미국과 영국, 언제까지 그럴꺼냐고 묻고 싶은 작품이다. 그래서 작품의 무대를 독일로 선택한 것인지 모르겠다. 시대가 바뀌어 언젠가 기독교인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원티드맨이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또 다른 평범한 소시민, 많은 무영씨들이 고생을 하겠지. 역사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 밟히고 억울하게 당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원티드맨이 되지 않는 수밖에 없다. 서글프지만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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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2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2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09-07-02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르까레의 신작 소설이 나왔네요.물만두님 말마따나 냉전이 끝나서 이 분의 시대도 끝난줄 알았는데 이렇게 새로운 책을 내놓으면서 건필을 휘날리시는군요.
르 카레도 악의 제국 소련이 사라진뒤 적대할 세력으로 이슬람을 정하는군요.안타깝지만 영미권 독자들에게 책을 팔기위해서는 어쩔수 없었겠지요.
르 까레의 새책도 좋지만 가능하면 스마일리 3부작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읍니다^^

물만두 2009-07-02 15:3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테러가 냉전을 대체하고 있으니까요.
리텔도 그렇고 많은 작가들이 테러와 러시아 마피아 뭐 이런 쪽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스마일리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데 소식이 없네요.

lazydevil 2009-07-0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뭡니까!!! 깜짝 놀라서 바로 로그인하구 댓글답니다. 만두님 서재 안들렸으면 까맣게 모를 뻔 했어요. 오늘 책주문했는데 취소하고 다시 담아야겠군요.. 암튼 신간보고 흥분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물만두 2009-07-03 10:07   좋아요 0 | URL
어머 놀랐잖아요~
제가 신간 소식이 뜸하여 죄송스럽습니다^^

미미달 2009-07-03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 정말 재작년부터 읽으려고 마음먹었으나 결국.... 지금까지도......
HI 만두님 !!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 그리워요~ㅠㅠ

물만두 2009-07-03 10:07   좋아요 0 | URL
미미달님 방가방가^^
빨랑 읽으세요.
님도 잘 지내시죠?
저는 늘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