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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여기 열 개의 지갑이 등장한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이들의 소유물인 지갑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형사의 지갑에서 범인의 지갑까지 다양한 지갑들로 한 사건을 이야기로 만들어 낸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마음에 든다. 어떻게 지갑을 화자로 등장시킬 생각을 했을까...
지갑은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와 어른, 여성과 남성 모두가 공통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지갑이다. 지갑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돈은 들고 다녀야 하고 그 얼마가 되었든 돈을 넣기 위해서는 지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주머니인 지갑이 상징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누구의 지갑은 얇고 누구의 지갑은 두툼하다. 누구의 지갑은 인조가죽이고 누구의 지갑은 명품지갑이다. 지갑에도 서열이 있다. 그래서 난 공갈꾼의 지갑이 좋은 것 같다. 싸구려에 잡다한 장식 가득한, 지갑들도 비웃는 지갑. 그러나 그 지갑은 자신들의 주인을 불쌍히 여긴다. 자기 같은 지갑을 갖게 된 이들의 삶을 서글퍼한다. 자기 자신의 모양이 아닌. 이런 지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주인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작이라 세련된 맛은 없다. 하지만 지갑을 타고 흐르는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매끄럽지는 않아도 그 투박함이 오래된 지갑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좋았다.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 작가의 작품들은 더욱 발전하고 성장해서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리라.
한 남자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다. 하지만 냄새가 난다. 아내가 보험을 들고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었다. 그 여자의 다른 남자도 결혼을 하지만 첫 번째 부인은 역시 교통사고로 죽고 두 번째 부인은 의심스러워 탐정까지 고용하지만 결국 살해당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심증만 있고 결정적인 물증이 없어 오히려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스타가 되고 만다.
결국 지갑은 말을 못하고 죽은 이만 억울하고 불쌍한 것이다. 지금 자신의 지갑을 보며 그 지갑이 화수분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 좋은 것인지 옛 친구의 지갑을 읽으며 생각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