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죽고 그 죽음에 의문점이 생기면 검시를 하게 된다. 검시란 단순히 죽은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살인이라면 범죄자를 잡으려는 이유만으로 행하는 수사 방식의 하나일 뿐일까? 대부분의 추리소설에서의 검시관이나 법의관이 등장하면 사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구라이시학교의 교장으로 불리며 종신검시관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검시로 그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라이시의 검시 방법을 보고 있노라면 검시는 단순한 죽은 이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이 종신검시관인 구라이시는 의사가 아닌 형사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퍼트리샤 콘웰의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와 같은 류로 생각하지 말기를 당부 드린다. 이 작품 속의 구라이시는 의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의사보다 더 날카롭게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매듭을 살피는 역할을 하는 독특한 탐정이다.

 

<붉은 명함>, <화분의 여자>에서는 후배 검시관으로 하여금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준다. 그것은 단순히 사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야쿠자같은 외모에 날카로움이 더해지면 적어도 교장으로 모시는 선생님에 대한 예의로라도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예를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주는 어른이, 그리고 따르려는 젊은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눈앞의 밀실>은 경찰과 신문 기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문 기자가 보는 앞에서 일어난 경찰 간부 부인의 죽음이라는 기막힌 사건 앞에서 경찰과 기자라는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가 밝혀진다.

 

<전별>은 이 단편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요코야마 히데오스러운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단순히 추리 소설로 머물지 않고 추리 소설적 요소는 다소 2% 부족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그로인해 인간애를 102%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다 읽고 나면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는 따뜻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잔잔히 오래 남게 되는. 퇴임을 앞 둔 상사의 마지막 미스터리를 해결해주며 던지는 구라이시의 한마디는 우리에게도 누군가 꼭 해줬으면 하는 말이다. 구라이시가 있어 그는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후회 없는 끝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상사로서 이런 부하직원을 둔다는 것 또한 행복이겠지만.

 

<목소리>는 미스터리한 한 여자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모든 사건을, 모든 사람의 인생을 구라이시가 좌우할 수는 없다. 사건을 해결하거나 타살인지 자살인지 결론을 내릴 수는 있어도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것까지 알아낼 수는 없다. 인생이란 어차피 각자의 것이고 각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교장이 신은 아니니까.

 

<한밤중의 조서>는 구라이시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구라이시의 백전백승을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의 신화를 그저 그런 사람들의 우상화정도로 여기는. 그래서 <화분의 여자>에서와 같은 의심하고 시험하려는 동료, 상사, 후배들이 생긴다. 그 점은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실책>은 구라이시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부하직원을 위해 일부러 실책을 감행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하직원에 대한 마지막 예를 다하는 모습은 책임전가와 아랫사람에게만 사고가 나면 뒤집어씌우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윗사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그가 괜히 구라이시학교의 교장이 아닌 것이다.

 

<17년 매미>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인연의 소중함과 덧없음을 함께 느끼게 된다. 누군가는 하나의 작은 인연도 소중히 간직하는 반면 누군가는 대단한 인연도 간단하게 뿌리치고 나 몰라라 할 수 있다는 것이 제목에서 16년을 기다렸다 번식을 위해 17년째 힘차게 모이는 매미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는 말은 다 어디로 가고 인내 없이 열매만 따려는 몰염치만 남았는지...

 

단편 하나에 사건이 하나일 때도 있고 여러 사건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함없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구라이시를 통해, 이 단편들을 통해 간단한 인생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면 산다는 게 참 고단할 거 같다. 옆에 구라이시 같은 어른이 없다고 해도 책 속에서나마 만나 가르침을 받았으니 나도 구라이시학교 학생이라고 말해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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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해도 되요.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 ^.

물만두 2007-05-2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그럼 저 구라이시학교 학생할래요^^

chika 2007-05-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사서 읽으까? ;;;;;;

물만두 2007-05-23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 내가 이작가를 편애하는 편인데 좋아!!!

moonnight 2007-05-2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로 구성된 단편집인가요? 독특하고 재밌을 거 같네요. 저도 보관함으로. ^^

물만두 2007-05-23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단편집이고 독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