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성의 시각에서 쓴 올리버 트위스트라고나 할까. 무척 긴 분량의 책이었고 요즘 소설답지 않게 스피디한 전개가 없고 음모와 배신, 비밀과 끝없는 반전에도 불구하고 그 반복되는 사이가 너무 길어 그 간격을 넘기가 좀 힘들었다. 앞부분은 사실 지루하기도 했다.


19세기 런던의 묘사와 그 안에 그 당시 담을 수 없었던 것을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담아낸 것은 높이 사고 싶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모든 사람을 너무 잘 만들려고 애를 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인물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그 시대 배경에 공을 들이고 그 사회의 음지에 있던 것들에 대해 독자에게 알려주느라 정작 독자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작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쓸 생각이었던 걸까? 아니면 역사 소설? 아니면 레즈비언 스릴러? 그냥 로맨스가 있는 미스터리? 본질이 무엇인지가 모호해지면 작품이 좋고 읽은 뒤 독특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니까 이 작품 정체가 뭐야?’ 이건 어떤 요리사가 근사한 요리를 만들었는데 손님이 그 요리를 맛있게 잘 먹고 ‘그런데 제가 먹은 요리가 뭐죠?’라고 묻는 것과 같다. 왜 이것이 문제가 되냐 하면 이 작품의 장르와 특성, 이 요리를 선택한 것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몰랐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느낀 점이 바로 이 점이다.


한마디로 너무 길다. 하지만 1장만 잘 넘길 수 있다면 다 읽어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독특함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놀라운 반전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닿기가 참 어렵지 않나 싶다. 앞 장이 좀 지루해서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약하다. 몰입이 어렵다. 이 책을 이렇게 오래 잡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버지니아 울프와 허난설헌을 생각했다. 시대가 여성을, 여성의 재능과 여성의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여성을 남성보다 지위가 낮은 존재로 만들었던 시대에 여성이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시대에 대한 도전이고 반항이고 결국 자기 파멸이 될지라도 말이다. 생각해보자. 남성의 시대에 남성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남성을 배제시키는 일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런 점을 많이 느낄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와 허난설헌이 수와 모드처럼 만났다면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할 수 있을까?


여기서의 사랑은 단순히 성적인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그 시대 레즈비언 역사에 대해 연구한 것도 단순히 성적 문제만을 다루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본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공유할 수 없다면 사랑도 자연스럽게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찾게 되는 것 아닐까? 이 작품은 아마도 그런 점을 어필하고자 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는 내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여성의 저항의 상징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인물이 석스비 부인인 것도 이 시대를 씩씩하게 살아냈기 때문이다. 도둑 소굴의 대장이었고 아기를 판매하는 악질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지만 이 시대가 여성이 그렇게 살기 만만한 시대가 아니었다는 걸 알기에 그의 행동이 용서가 되는 것이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나는 <여자의 일생>에서의 잔처럼 사느니 수와 모드처럼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부분 때문에 이 작품을 마저 읽을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이런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작품을 읽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여자의 일생>같은 작품들과 그 시대 여성들을 얼마나 싫어하고 또 <올리버트위스트>의 배경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마도 이런 내 취향이 이 작품을 좋게만 볼 수 없게 만들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색다른 시각을 그 시대에 부여했다는 점에서 좋게 보기로 한다. 다만 레즈비언 스릴러라는 말은 사랑을 조각내서 경계를 그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늘 백인은 보통 인간으로 묘사되지만 흑인이나 백인이 아닌 사람은 반드시 흑인, 아시아계, 스페인계 등등으로 묘사되어 불쾌감을 주듯이 말이다. 꼭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사랑에 호모섹슈얼과 헤테로섹슈얼이 문제가 되어 장르처럼 나뉘어져야 하는 걸까? 책을 덮으며 그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아무리 그 시대의 그 문화를 연구한 작가라고 해도 말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11-17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6-11-1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아는 후배한테 생일선물로 졸라 받아두었는데, 어제.ㅋㅋㅋ
만두님 리뷰 보니까 잘 한 일인 것 같네요..^^ 추.천.

stonehead 2006-11-18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의 초반부에 강한 임펙트가 부족하다는 의미이군요.
사실
요즘 독자들 그리 인내심이 없지요.
그걸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 창작은 자유로운 정신이 참으로 중요하지요.
그 정신을 어떤 패턴으로 구속해 버리면 좋은 글이 나올 수가 없지요.^-^

물만두 2006-11-1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지금은 좀 얇은 책을 읽고 있어요^^;;;
비연님 아마 님 취향에는 맞으실 것 같아요^^
스톤해드님 제가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강조됐어야 하는데 잘못 썼네요. 다른 독자분들이 있으니까요^^;;;

비로그인 2006-11-18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 1장이 고비군요. 전 언제쯤 읽기 시작할지;;

물만두 2006-11-18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왈츠님 제 생각에요^^;;;

BRINY 2006-11-1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장 고비는 넘겼는데, 역시 바로 멈춰버리고 말았어요.ㅠ.ㅠ 계속 읽어야하는데...

물만두 2006-11-1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니님 1장 넘기고 나면 좀 낫고 2장 넘어가면 꽤 속도가 붙다가 다시 마지막에서 좀 떨어집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