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혼해서 남편의 사고가 있기까지 5년 동안,
윤은 자식 하나 못 낳는 며느리라고 자신을 핍박하는 시어머니에게 심지어
'년'자 붙은 욕설까지 들어가며 살았다.
그러나 윤은 다소곳한 며느리였다.
남편의 사고가 있은 뒤에도 적어도 반년 정도는, 여전히.
그런 윤에 대해서 동네에서는 칭찬이 자자했고 섣부르게 동사무소나 구청에
열부, 효부가 났다는 말을 들이미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윤은 시어머니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싸움질을 해대기 시작했고,
이년 저년 욕을 하는 시어머니에게 맞대거리로 반말을 놓았다.
열부, 효부 칭찬하던 동네 사람들이 어떤 눈으로 어떻게 구경을
하고 있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한 남자의 불행을 사이에 둔 늙은 여인과 젊은 여인은,
오직 그때에만 불행에 빠진 한 남자하고는 아무 상관 없이,
어떻든 자신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몸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악스러운 시어머니만 아니었다면 윤은 벌써 오래전에,
남편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렸던 2년 반 전에 벌써, 그들의 곁을 떠나버렸을 것이다.
윤은 아직 젊었고, 아이 하나 딸리지 않은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 일고 있는 온갖 불온한 욕망을,
시어머니와의 싸움으로만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텔의 객실을 홀로 청소하다가, 김 빠진 맥주를 홀짝홀짝 들이키고,
더렵혀진 침대 위에 누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는 순간,
그녀는 다시 누군가의 시선 속에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그녀를 집요하게,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때때로 그 시선을 향해 홀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하루라도 빨리 숨을 놓으라고,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하루에 스무 번도 더 빌었어.
정화수 떠놓고 빌 데가 있었으면 그렇게라도 했을 거야.
당신 편하고 나 편하고 당신 늙은 어머니도 편하라고....
다, 다들 좋은 건 당신 죽는 거밖에 없다고...
그런데 당신의 쓸모없는 몸뚱어리는 나날이 살이 찌고,
욕창으로 문드러진 등에도 살이 오르고..
그런 당신을 보면 마치 버러지 같았어.
그러니, 당신 내 손가락 대신 내 목을 물어뜯어.
물고는 절대 놓지 마, 당신.
당신이 내 손을 물었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살아 있는 몸일 때는 한 번도 하지 않던 그런 짓..
살아 있는 몸일 때는 내 목이라도 조를 수 있을 것처럼 튼튼하던 당신 팔목,
내 아랫배를 걷어차 한순간에 죽일 수도 있을 것처럼 억세던 당신 다리..
그러나 당신은 늘 유순하고 다정했어. 그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억센 손이 내 몸을 만질 때, 내 몸이 얼마나 자지러지게 떨렸던지..
아이도 만들지 못하는 쓸모없는 몸인데도, 당신은 늘 나를 탐하고..
나는 그런 당신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러나 사랑이란 게 다 뭐야.
그렇게 사랑했던 당신을, 당신의 몸을 나는 이제 살찐 버러지처럼 바라보네.
사랑? 그딴 거 개나 물어가라고 그래.
나는 살아있는 몸이었던 당신을 이젠 잊었으니 사랑도 잊은 거야.
그러니 내가 당신을 아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 사랑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마.
당신, 그러면 안돼.
내가 당신을 떠나지 못하는 건 미움 때문이야. 환멸과 분노 때문이야.
나는 당신이 내게 보여준 생의 놀라운 변화들이 무서워.
자꾸 온 길로만 되돌아가게 돼. 그러나 왔던 길조차 절벽이네.
그 절벽을 넘으면, 보일까...
당신 사랑했던 기억이..
당신이 내게 주었던, 생의 기쁜 순간들이.. 보일까, 여보.
모텔에 러브체어가 들어오던 날,
그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기 위해 모텔의 전 직원들이 다 트럭 앞으로 몰려들었다.
윤도 청소복을 입은 채로, 다른 청소원들의 사이에 끼어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의자처럼 생겼으나 의자라고는 할 수 없는 그 기묘하게 생긴 조형물이 첫 번째
상자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저기서 뭘 어쩌라는 거야. 도대체?
누군가 탄성을 내지르듯이 말하자 트럭의 젊은 기사가 씨익 웃으며 설명서가 다 있어요,
라고 대꾸했다.
사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란과 웃음소리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고 엄숙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해, 또다시 적지 않은 돈을 끌어 쓴 모양이었다.
사실 그 지역 안에서 그것을 설치하지 않은 러브호텔은 거의 없었다.
콘돔을 무료로 구비해 놓거나 생화든 조화든 꽃병을 들여놓지 않은
러브호텔이 없는 것처럼.
그러나 사장은, 그 뒤늦은 물건이 알프스를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했다.
그는 물건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받침대와 등받이를 탁탁 두드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가 그 물건 위에 올라앉기까지 했을 때 사람들은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를 딱 멈추고, 공연히 시선을 먼 데 쪽으로 옮겼다.
그 겸연쩍은 침묵 속에서, 오직 한 여자만이 참지 못한 채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 그럼 사랑은 어디에서 하라는 거야? 차 안에서만 해?
차 없는 놈들은 물레방앗간에서 하고?
하필이면 그 순간에 사장의 말이 다시 떠올랐고,
그 말과 함께 사장의 엉거주춤한 모습이 겹쳐지면서 윤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다아오른 사장이 그 물건 위에서 기묘하고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그녀를 노려볼 때까지도 그녀는 끝내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5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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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타이핑 하면서는 묘하게 가슴이 뭉클 하네요..
수 개월전에 한번 읽은 적이 있는 소설인데도,
간과한 부분이 있어서 오늘 다시 타이핑 하면서 '윤'의 마음이 잠시 되어 보았다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