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

* 알라디너 서재의 우클릭에 대한 섭섭함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어떤 일이 발생한 이유는 개인의 책임과 환경(여기서는 알라딘이라는 기업, 보편적으로는 사회)의 책임이 공존합니다.

 이번 마녀고양이 뉴스레터와 같은 경우도 ; 저처럼 감당하지 못할 주제는 아예 글을 올리지 않거나 아니면 글을 잘 못 써 뉴스레터에 채택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알라딘이 그와 같은 마케팅을 하지 않았어도 발생하지 않았겠죠.

 여기서 두 가지 관점이 적용됩니다. 첫 번째는 과학적 관점으로 양자의 책임이 몇 %로 나눌 수 있는가? 저는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알라딘을 뉴스레터 정책을 유지하고 (마녀고양이님은 탈퇴를 했겠죠.) 이후에 마녀고양이님과 같이 상처받는 빈도가 어느 정도인가 확인하는 것입니다. (알라딘이 정책을 바꿨으니 확인할 방법이 사라졌다.)

 두 번째 관점은 인문학적 관점인데 ; 마녀고양이님에게 99%의 책임이 있고, 기업에 1% 책임이 있다고 판별되었다고 가정을 합니다. 이 상황에서도 기업의 1%의 책임에 대한 먼저 물을 수도 있습니다.

 앞 페이퍼에 언급되었던 ‘광우병’을 예를 들겠습니다.
 예화 1) 정부의 책임자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미국 수입소를 사 먹었을 때, 광우병에 걸린 확률은 0.0,,,1%입니다. 거의 0%에 가깝죠. 우리는 미국소에 대한 정보를 드렸고, 사먹을지 말지의 선택을 여러분에게 드렸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미국소를 계속 수입할 것이고 광우병의 발생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광우병이 걱정되는 사람은 사 먹지 말라는 이야기다. vs 간단하게 말해서 악플이 걱정되는 사람은 인터넷에 글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위 글에 동의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승자독식의 경쟁체제도 비난할 이유가 없습니다. 승자가 되면 될 것 아닌가!

 과거 뉴스레터 발송에 대한 묵인이 이번 사건에 대한 마녀고양이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예화 2) 마녀고양이가 의사 마립간에게 미녀고양이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미녀고양이는 두 번이 중한 병을 앓았지만 마립간에 치료를 받고 잘 나았습니다. 마립간을 훌륭한 의사로 생각한 마녀고양이가 마녀강아지를 마립간에 소개시켜주었는데, 그만 치료받다가 사망하였습니다. 마녀고양이가 마립간에게 항의합니다.
 마립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미녀고양이를 잘 치료해 주었을 때, 마녀고양이님도 싫지만은 않았을 것이고 좋은 의사를 소개시켜주었다고 미녀고양이에게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행복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제 와서 상반 감정을 느끼는 것에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것이 수술동의서입니다. 사회에서 약관과 같은 것이죠. 여기에 보면 수술의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되어 있고, 본인이 자필서명으로 승낙했습니다. 의사에게 항의하는 사람 대부분은 논리적이지 못하죠.”

 예화 3) 어느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주인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박봉에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 당신은 정말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차후에 정규직 채용이 있을 때 당신을 채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달의 월급을 받았고 세 번째 월급을 받을 때, 급여가 근로기준법에도 못 미치는 급여인 것을 알고 주인에게 항의하면서 급여인상을 요구합니다. “성실한 사람인줄 알았더니 못 쓸 사람이구먼. 내가 칭찬하거나 정규직 채용을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할 때는 싫지 않아 하면서 오히려 깜짝 행복을 느끼더니. 다른 사람은 그 급여에도 일하기도 하고, 혹시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조심성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네. 그러니 일차적으로 책임은 본인에게 있네. 자네는 점을 쳐서 여기서 일하기로 결정했나?”

 문제점을 의식하고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것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도덕적인면을 비판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그것을 인식했다고 해서 문제제기 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알라딘에게 사과를 요청한 적 없습니다. 다만 불편 사항을 개선해달라고 요청 드렸을 뿐입니다.’ by 마녀고양이)

 어떤 의견에는 동인을 중요시하는 글도 있습니다.
 예화 4) 광주학생운동의 경우 시작의 동인動因은 일본 남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독립운동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독립운동이 전개되려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화가 났던 부분은 이 나라의 독립 부분이 아니라 일본학생의 한국인 여학생에 대한 희롱이었으니까요. 다만, 방향이 독립운동으로 잘못 나간 거죠. 우리는 화가 났다는 결과의 원인이 어디인지를 스스로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 송아지 먹으라는 우유를 사람이 마시며 살고, 사과나무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사과를 먹으며 살까?

 알라딘의 뉴스레터의 선택은 알라딘의 편향을 반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면서 자기 검열을 한다는 것이 편향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둘 사이에는 상보적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죠.

 문제의 핵심을 '뉴스레터의 발송과 노출빈도'로 볼 수도 있는데, ‘알라딘 고객 발송 메일에 링크되었고, 이를 타고 들어온 어떤 분이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을 남겼다.’ 말씀처럼 이것은 서재의 단순 노출과 뉴스레터를 발송한다는 것은 개방성이 다르다는 것의 증거로 생각합니다. 물론 시스템의 완벽한 개선이란 있을 수 없고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 마립간의 다짐 - CCTV를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도청을 의심했다.

 2005년쯤에 이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가정하면
 마녀고양이님이 페이퍼를 뉴스레터로 보내 댓글로 감정적인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때 아줌마 알라디너가 마녀고양이님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어느 알라디너( 알라딘 불매 운동 이후 활동을 중단하신 분)가 기업 알라딘에게 개선을 요구합니다. 이 상황을 보던 마립간이 ‘기업의 책임보다는 스스로가 조심해야 하지 않나’라는 페이퍼를 올립니다.
 아마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알라딘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알라딘 불매운동 후 opinion leader를 대거 탈퇴하였거나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겠죠.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누군가 ‘알라딘 불매운동’을 제기하다면, 그 사람은 정말 우스운 사람으로 취급받을 것입니다.

cf 마녀고양이님은 ‘호들갑’이란 단어를 쓰셨는데, 마녀고양님이 호들갑을 떨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녀고양이님 서재에 댓글을 남기면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이야 말고 ‘호들갑’이란 단어가 정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알라딘 서재 뉴스레터에 제 글이 나간 적이 있던가요? 이 정도의 글이면 무플서재에서 악플이라도 받는 서재를 탈바꿈할 수 있을까? 마립간이 마녀고양이 뉴스레터 사건을 등에 업고 어떻게 하든 떠 볼려고 발악을 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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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9-15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이나 다락방님도 각자 자기의 생각을 밝혔듯이 저도 제 생각을 제 서재에 남깁니다./두분은 본인에 서재에 글을 남겼으니,
<가짜논리> 22. ‘설명’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설명과 정당화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