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꿈들
박기범 지음, 김종숙 그림 / 낮은산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의 높은 사람들이

아주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유, 해방, 민주주의 하면서

몹시도 그럴싸한 말들을 하는데,

얼굴이 어찌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정의의 용사다!"

 

드디어 우리가 할 일을 찾았다.

저 나라 사람들을 해방시켜 줄 거야.

저 나라 독재자를 물리치고,

저 나라 사람들에게 자유를 줄 거야.

 

힘 센 나라의 그 정의쟁이들은 자신들이 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켜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독재자를 물리치기 위해 착한 전쟁을 수행하는 거라고 힘주어 얘기합니다.

이 가난한 나라에 사실은 어마어마한 땅속 자원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건 공공연한 비밀인 걸요.

 

"거기엔 악당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방송국 사람들과 신문기자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 나라에서

가장 아프고 병든 사람들,

가장 억울하게 쫓겨나고 빼앗긴 사람들,

가장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부모를 잃고 먹을 것을 구하는 아이들......

 

똑같은 화면을 자꾸자꾸 내보냈습니다.

혹시라도 못 보고 지나칠까 봐 또 내보내고,

본 사람들은 한 번 더 보라고 또 내보내고.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똑같은 장면에 말만 바꾸어 몇 번이고 내보냈습니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싶은 장면만 열심히 내보내는 모습은 저 나라만의 일이 아니지요.

 

 

 

 

비록 독재자가 있는 나라이지만, 이 나라의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삶을 성실하게, 아름답게 꾸려가고 있었답니다.

한번도 운동화를 신어보지 못했지만 축구 선수가 꿈인 알라위.

밑으로 동생이 여섯이나 있는 이 아이는 아빠를 도와 기름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폭격은 꿈많은 소년의 다리에 폭탄의 파편을 심어버렸습니다.

 

 

 

전쟁의 피해 당사자만 꿈을 잃은 건 아닙니다.

이 전쟁에 참여한 마이클 일병은 초등 교사 임명 직전에 이 전쟁에 자원했습니다.

자신이 떠나온 나라만큼 소중한 이곳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소명을 갖고 말입니다.

이 전쟁이 그 아이들에게 해방을 줄 거라고 믿었던 거지요.

그들의 정치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 전쟁은 위대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리 생각했을 겁니다.

전쟁을 지켜보는 이웃 나라들도 그랬을 겁니다.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에게, 대다수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은, 미군은 구원이지 않았습니까. 영원한 우방에 지치지 않는 외사랑! 지금도 그걸 신앙처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요.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우리는 얼마나 비싼 도움의 대가를 치르고 있던가요.

 

아프리카를 떠올려 봅니다. 가진 게 많아서 가난한 대륙 아프리카. 이라크에 석유가 없었다면 또 어땠을까요?

 

영화 '그랜토리노'가 떠오릅니다.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군인 할아버지 역을 클린트이스트우드가 맡았지요. 그는 자신이 죽였던 소년병을 평생토록 잊지 못합니다. 신앙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의 피를 묻힌 자신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스스로 여기지요.

 

이 책에도 그런 군인들이 나옵니다.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참여했지만 누군가는 마지 못해 오기도 했습니다. 어떻든간에 그들이 생각했던 전쟁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닐 겁니다. 그들로 하여금 총을 쏘게 하고, 그리하여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죽이게 한 그 명령권자는 머나먼 곳에서 이 참상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산기를 두드리겠지요.

 

어느덧 이 나라는 저쪽 군복을 입은 사람들 뜻대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관청 직원도 다시 뽑았고, 이 나라 군대와 경찰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쪽 군대에서 결정했고, 저쪽 군대에서 내거는 규칙대로였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나 보다.

 

과연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그 전까지 이 나라를 마음껏 쥐고 흔들던 독재자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달라진 거라곤 이 나라 독재자 자리를 저 나라 군인들이 대신학 있다는 것뿐.

독재자 밑에 붙어 있던 이들이 보이지 않는 대신,

저 나라 군인들 밑으로 들어간 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

길에는 엄마 잃은 아이들과 집을 잃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멈추지 않는 폭발과 총소리.

 

전쟁이 끝났다고, 이긴 전쟁이라고, 정의를 바로 세웠다고 저들은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 정의롭다는 전쟁의 끝에 이곳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던가요?

 

평화가 총칼로 쉽사리 불러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던가요.

수십 년 뒤면 다다를 수 있었던 길을 이 전쟁으로 인해 수백 년 뒤에나 다다를까 말까한 지경에 이르게 한 게 아니던가요?

마치, 우리의 통일을 보는 기분이군요.

 

 

 

이곳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꿈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거기, 그리고 이곳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