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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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만큼 오해를 많이 받고 편견의 대상으로 살아온 상대가 또 있을까 싶다. 나 역시 바로 그 편견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이상(사실 이 책 포함해서 기생충 관련 책 네권 째이지만!) 그런 편견은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생충만도 못한!-이라는 욕을 별로 해본 적은 없지만(보통 '벌레'를 더 많이 예로 든다.) 그래도 누군가 이런 표현을 쓴다면 그게 아닌데! 라며 함께 안타까워해줄 정도는 될 것 같다. 기생충 전도사~ 기생충 지킴이? 아무튼 우리의 기생충 박사님 덕분에~


기생충은 같이 공존하면서 ‘이만큼만 주면 여기서 잘 살겠다’ 이런 거고, 바이러스는 ‘우리가 널 다 먹겠다’ 이렇게 기본이 안 되어 있는 미개하고 진화상에서도 밑바닥에 있는 애들이죠. 기생충이 정말 착하다는 증거가 오랫동안 약을 먹어왔는데도 전혀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회충약만 해도 벌써 30년 정도 먹어왔어요. 그런데도 회충은 지금도 회충약 한 알에 죽습니다. 이런 애들이 없죠. -95쪽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와 서민 교수님의 인터뷰 집이다.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간 서민으로부터 학자 서민, 방송인 서민, 가족으로서의 서민, 또 좌파 지식인으로서의 서민 등등, 그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특유의 유쾌한 자기비하식 겸손 유머와, 반어법을 활용한 반전 유머가 가득하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이야기도 무겁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이룬 분이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쳤던 많은 시행착오와 굴욕(?) 시절 이야기들이 참으로 편안하게 읽힌다. 컬투의 베란다쇼로 이름을 많이 알렸는데, 정작 나는 그 방송을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방송에서 잡은 캐릭터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정규방송 TV를 거의 보지 못해서 베란다쇼도 사실 몰랐는데, 책 나왔을 때 강연회 갔다가 뒷풀이를 함께 하고, 그 다음에 집에 가서 방송을 한 번 보았다. 교수라고, 혹은 의사라고, 아니면 유명하다고 으시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진작에 알았지만, 글에서 보여주는 본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방송에 나오니 그게 참 신기했다. 솔직하신 분이구나, 싶었다. 게다가 해맑기까지 하심!


치기도 하고, 경기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로저 페더러라는 선수를 좋아하거든요. 한 선수를 너무 좋아하는 것도 힘든 것 같아요. 페더러가 질 때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으니까요. 나이 드니까 남의 팬 하기가 더 힘들어요. 페더러가 빨리 은퇴했으면 좋겠는데, 안 하네요.(웃음) -270쪽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강조를 많이 했다. 본인의 인생 전환점을 준 것도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고나서였다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이건 의사한테도 예외는 아님을 잘 설명해 주었다.


스토리를 잘 짜려면, 제가 항상 제자들한테 하는 이야기인데,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 특히 소설을 많이 읽어야 된다고 합니다. 저도 소설을 많이 읽었더니 논문, 특히 고찰 부분을 잘 쓰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소설은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기본 요건인 거죠.

 

지 : 물리학자 중에서 파인만 같은 사람돌 글을 잘 쓰고, 아인슈타인도 굉장한 문장가였지 않습니까?

서 : 그렇죠.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쥐라기 공원』이 있잖아요. 크라이튼이 하버드 의대를 나왔는데요. 아이디어도 대단히 독특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훌륭한 소설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문장 덕입니다. 이 사람이 책을 읽어온 내공이 담겨 있는 거죠. 존 그리샴도 그렇고요. 과학자나 변호사가 우리나라에서는 글하고는 정말 관계가 없는 사람 같은데요. 이런 사람들이 글을 너무 잘 쓴다는 말이죠. 우리도 직종에 관계없이 모두 글쓰기 교육을 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 소설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111쪽 


예로 들어준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졌다. 전직 간호사 출신으로서 그 경험을 잘 살려 글에 녹여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런 다양한 분야를 거친 작가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쥐라기 공원 같은 책이 나오도록~


인성이라는 것, 인문학이라는 것은 사실은 학교에서 배운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학교는 토익 800이 안 되면 본과 진급이 안 돼요. 사실 토익이 의사랑 얼마나 관계가 있겠어요? 그것보다는 예과 2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고 그 시험에 통과해야 본과로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의료 인문학 교실을 만드는 것보다 좋지 않겠어요? -154쪽


문득 든 생각인데,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도 인문학을 먼저 배워야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검사 출신, 변호사 출신, 교수 출신 등등 학벌 쨍쨍한 정치인들이 참 많은데, 그들의 행동거지 하는 말들을 보면 지성인이라는 생각이 안 들 때가 많아서 말이다. 공감 능력은 그야말로 바닥을 기기도 하고... 이런 직종의 사람 뿐아니라 사실 전 국민적으로 필요한 공부이기는 하다. 쩝...


개를 굉장히 좋아하는 부부인데,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 이들 부부가 느낀 슬픔은 가족 하나를 잃은 슬픔이었다. 그걸 공감해주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을 이야기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마찬가지로 강아지가 죽고 나서 많이 아파했던 친구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함이 들었다. 국민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인의 무딘 감정을 나무랐는데, 그런 식의 공감 부재가 분명 우리에게 많을 것이다. 나는 평소 내가 몰랐던 것을 많이 알려주는, 정보가 담겨 있으면서 감동적인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바로 그 범주에 들어가 있다. 기생충과 우리나라 의료보건 현실, 갑상선암과 과잉 진료에 대한 이야기 등도 모두 귀기울여 들을 이야기였다. 지난 번에 재밌게 읽은 '기생충 열전'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더 마음에 든다. 거기에는 성실하게 책을 읽고 필요로하는 질문을 만들고, 이야기를 끌어낸 지승호 인터뷰어의 공로도 크다. 


갑상선암에 대해서는 굳이 저뿐 아니라 유럽의 저명 학술지에서도 과잉 진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회 내부적으로도 그렇게 결론이 났고요. 2~3밀리미터짜리를 뭐하러 떼내나, 빨리 자라는 암이 있고, 천천히 자라는 암이 있습니다. 갑상선암이 사람을 위협하려면 최소한 300년 정도 걸려요. 그것도 짧게 잡아서. -198쪽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딱 저랬다. 두달 간격으로 갑상선 초음파 보자고 하고 아주 작다고 하면서 계속 약 먹으라고 하고, 마찬가지로 피검사도 두달에 한 번 하는데 철분제 계속 먹으라고 했다. 그러다가 조금 더 먼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모두 정상 범주이니 크게 신경쓸 정도 아니라며 영양가 골고루 섭취하는 정도로 주의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후 첫번째 병원은 안 가고 있다. 이것도 낮은 의료 수가가 한 몫 한 거겠지만 너무 했소!


다른 직업도 그렇겠지만,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가 치료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하잖아요. 플라세보 효과도 그래서 생기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 때 마취약이 떨어져서 군의관이 식염수를 가지고 마취를 했더니 마취가 되더랍니다. 정말 놀랍죠? 그게 다 의사를 믿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신뢰가 없으면, 신뢰가 없기 때문에 나을 병도 안 낫는 현상이 생기지 않나 싶어요. -236쪽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가득한데, 그래도 믿고 기대하게 되는 기생충 학자 하나를 알고 있는 것과 믿고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인터뷰어가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 독서였다.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하고, 지성미를 느끼게 하는 정보도 있고,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유머도 가득하니 이 정도만 잘 차려진 성찬이 아닌가. 


덧글) 표지의 기생충 이름은 뭘까? 저번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생각이 안 남. 기생충 이름은 기억하기 힘드네요. 그저 회충 요충만 기억에 남을 뿐... 그 녀석들도 생김새는 사실 기억나지 않음. 공부가 부족했어. ^^

잘사는 나라들이 항상 개발을 해놓고 나서 환경을 지키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사다리 걷어차기와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DDT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죠. DDT가 환경에 특별히 해로운가, 아무리 해롭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거죠. 게다가 DDT가 그렇게 환경을 파괴하는 약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제한적으로 다시 쓰고 있다는데, 그때 DDT를 금지시킴으로써 말라리아가 박멸 직전까지 갔거든요. 유일하게 말라리아를 박멸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115쪽

지 : 숙주의 몸에서 알 듯 모를 듯 기생하면서 숙주를 해치지 않는 것이 기생충의 정의 중 하나인 것 같은데요. 말라리아는 숙주를 죽게 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 왜 그런 것 같아요?
서 : 모기가 종숙주고, 사람은 중간숙주기 때문에 그런 거죠. 중간숙주는 잠시 머무는 숙주고, 종숙주는 기생충이 그 안에서 출산도 하고 남은 여생을 보내야 할 숙주니, 대접이 다를 수밖에요.
-116쪽

의과대학이라면 기생충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게 맞다고 봐요. 루게릭병이라고 있는데요, 그게 빈도가 10만 명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굉장히 드문 질환입니다. 그런 병에 대해서는 배우면서 백만 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는 기생충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지 : 루게릭병은 영화 소재로 쓰이기도 했잖아요.
서 : 드라마에서 불치의 기생충에 걸린 사람을 해주면 좋겠는데요. 불치의 기생충이 없는 게 문제라는 거죠. 기생충에 걸린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해도 약 한 알이면 낫기 때문에 드라마에 쓸 수가 없어요.(웃음)
-130쪽

의학 관련 논문은 앞부분을 ‘초록’이라고 하잖아요. 초록 중에서도 결론만 읽으면 되는 건데요. 그걸 읽으려면 중학교 정도의 영어 실력이면 가능합니다. 저는 이런 걸 중고등학교 때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의학 사이트에 가서 논문 읽는 방법에 대해서. 1시간 정도면 투자하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광고성 기사나 사이비 책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약간의 검색 기술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이러면 자기가 아플 때도 도움이 되죠. 무조건 의사한테 ‘알아서 고쳐주시오’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부를 하면서 답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172쪽

미국에 쉰 정도 된 독신녀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베트남에서 아이를 하나 입양했는데, 입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이가 아팠어요. 의사는 면역결핍이라고 우기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려고 하는데, 이 여자가 혼자 공부를 해서 의사보다 많이 알게 된 거예요. 의사는 애초의 진단을 고집하고 여자는 아니라고 싸웠는데요, 결국 그 여자분 말이 맞았어요. 단순한 영양 결핍. 지금은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데요. 그러려면 인터넷에 일반인이 올리는 글을 읽지 말고 의학 논문 사이트에 가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실력 정도면. 초록 몇 줄만 읽으면 되는 거니까.
-173쪽

전 우리나라 재벌들이 제빵이나 치킨 같은 것에 끼어들기보다는 제약 사업에 좀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반도체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약인데, 제대로 하나만 개발하면 엄청난 국익을 창출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장하준 교수는 재벌 체제를 일정 부분 옹호했어요. 제대로 된 제약 회사가 되려면 수많은 투자가 필요하니까요.
-178쪽

CT를 찍을 일이 있어서 찍어야지, 건강검진을 위해서 CT를 찍는 것은 과잉이라는 거죠. 특히 심장 CT를 찍는 것은 더더욱 말도 안 되는데요. 우리나라 건강검진 중에서 가격이 비싼 검진이 있어요. 정밀검진이라고 하는데, 정밀검진은 알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알게 해주는 불필요한 검진이에요. 내 폐에 사마귀가 나 있다, 이런 것을 알아서 뭐하겠어요. 알면 괜히 이상하게 숨이 더 가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안 좋잖아요. 아무 문제 안 일으킬 일인데.
-199쪽

의사들의 문제가 그거잖아요. 주변에 의사 친구 말고는 다른 친구가 없고, 다 의사끼리만 놀고. 의사끼리 모여서 우리는 잘났고 너네는 못났다, 이런 특권 의식이 굳어지다 보니 소통이 안 되는 거죠. 의사들끼리는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다른 애들이 보면 ‘놀고 있네’ 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고, 이게 점점 쌓이면 엄청난 괴리가 발생하는데요. 그걸 극복하려면 책을 읽거나 아니면 일반인들 하고 많이 대화를 하고 그래야 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286쪽

지 : 없어져야 될 대표적인 편견이 어떤 게 있나요?
서 : 기생충이 해를 많이 준다는 것이 제일 큰 편견이고요. 두 번째로 기생충은 징그럽다, 이것도 약간 편견이 있는 거고요. 하나하나 보면 귀여운 구석도 있는데요. 물론 징그러운 것도 있죠. 저도 회충은 징그럽다고 생각하지만 안 그런 것도 많은데, 기생충은 다 징그럽다고 생각하잖아요. 마지막으로 기생충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포감이 제일 큰 편견인 거죠.
-303쪽

사람들이 진보적 정치인에 대해서는 잣대를 엄중하게 들이대는 것 같아요. 사실 보수 쪽 보면 일관성은커녕, 최소한의 논리도 갖추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행세하고 있는 반면에, 진보 쪽은 같은 편의 정치인에게도 지나치게 요구를 많이 하고, 한 번 찍히면 끝이잖아요. 다시는 용서를 안 해주더라고요. 그렇게까지 해서 우리 편의 싹을 죽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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