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이의 꿈 전시회를 다녀왔다. 다녀온지 조금 지났지만 이제사 정리해 본다.
서촌갤러리는 예전에 언니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한정거장 정도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이날은 몇 가지 계획이 있었다. 먼저 중국집 '중국'에 가서 점심을 먹는 거였다. 화교가 운영하는 중화요리 전문점인데, 하루에 딱 100인 분만 판다. 모두가 곱배기를 먹으면 50명으로 영업 끝내는 그런 집이라고, 탁피디의 여행 수다에서 들었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맛은 일품이라기에, 게다가 내가 아는 동네라서 언니와 조카들과 함께 작정하고 다녀왔다. 하지만 내가 간 날은 하필 여름 휴가 기간..ㅜ.ㅜ
(이 사진 안에 나의 동행인이 다 담겼구나!)
이 중국집 '중국'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우당 이회영 기념관이 있다. 전날 아해들에게 단기 속성으로 독립운동가들 책을 읽히고 나온 참이었다. 이회영 기념관 사진은 나중에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패쓰~
많이 더웠고 많이 배고팠기에 근처 수타면 중국집에서 맛도 없고 양도 적지만 가격은 비싼 점심을 먹고, 서촌 갤러리로 향했다.
1층에서 2층 올라가는 계단에 걸려 있던 사진이다. 이렇게 싱그러운 아이들이었다.ㅜ.ㅜ
난파된 교실
나희덕
아이들은 수학여행중이었다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조립을 기다리는 나사들처럼 부품들처럼
주황색 구명복을 서로 입혀주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공장의 유니폼이라는 것도 모르고
물로 된 감옥에서 입게 될 수의라는 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의 말을 기다렸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 주었더라면
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여행중이었다
파도에 둥둥 떠다니는 이름표와 가방들,
산산조각 난 교실의 부유물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배를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한낱 무명의 목숨에 불과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몇 만 원짜리 승객이나 짐짝에 불과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지만
싸늘한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닥에 잠겨 있으면서도
끝까지 손을 풀지 않았던 아이들,
구명복의 끈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아이들은 수학여행중이었다
죽음을 배우기 위해 떠난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 65쪽
여동생과 자신을 그린 그림이다. 이 모든 그림들을 고이 보관해 오신 부모님의 정성이 뜨겁고, 그래서 눈시울은 더 뜨거워진다.
화인(火印)
도종환
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드득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 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쪽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지켜본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 67쪽
고만고만한 나이에 모두가 그렸을 법한 고만고만한 그림이었다. 그래도 부모 눈에는 대견했고 예쁘고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왜 아니 그랬겠는가. 그렇게 애정으로 간직해온 그림들은 이제 유품이 되었다. 이조차도 없는 유족들은 이렇게 추억할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을 한없이 부러워하게 되었다. 죽어 나온 시신을 찾은 부모를 부러워해야 하는,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처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4월 16일 이후
박찬세
선원을 선원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선장을 선장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사장을 사장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해경을 해경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장관을 장관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총리를 총리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배를 배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바다를 바다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파도를 파도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너희들을
꽃 같은 너희들의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되었다 - 77쪽
세월호 최후의 선장 박지영
백무산
최초에 명령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가만있으라, 지시에 따르라, 이 명령은
배가 출항하기 오래전부터 내려져 있었다
선장은 함부로 명령을 내리지 말라, 재난대책본부도
명령에 따르라, 가만있으라, 지시에 따르라
배가 다 기운 뒤에도 기다려야 하는 명령이 있다
목까지 물이 차올라도 명령을 기다리라
모든 운항 규정은 이윤의 지시에 따르라
침몰의 배후에는 나태와 부패와 음모가 있고
명령의 배후에는 은폐와 조작의 검은 손이 있다
이 나라는 명령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걸 기억하라
열정도 진정성도 없는 비열한 정부, 입신출세와
대박 챙길 일밖에 아무 관심도 없는 자들의 국가,
선장은 단순잡부 계약직, 장관은 단순노무 비정규직
그들이 내릴 줄 아는 명령은 단 한 가지뿐
가만있으라, 명령에 따르라
저 환장하도록 눈이 부신 4월 바다를 보면서
아이들은 성적 걱정이나 했을까
지시를 어기고 멋대로 뛰쳐나간 너희들 반성문 써야 할 거야
물이 목에 차올라오는데, 이러면 입시는 어떻게 되는 거지, 걱정했을까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서해훼리호가 침몰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지하철이 불타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는 안개처럼 흩어지고, 슬픔은 장마처럼 지나가고
아, 세상은 또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재난 따윈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저들
촛불시위와 행진과 민주주의가 더 큰 재난이라 여기는
저들이 명령을 하는 동안은, 결코
뒤집어라, 뒤집힌 저 배를 뒤집어라
뒤집어라, 뒤집힌 세상을 뒤집어야 살린다
탐욕으로 뒤집힌 세상, 부패와 음모와 기만으로 뒤집힌 세상
이게 아닌데, 이럴 순 없어, 뒤집지 못한 우리들
가슴을 치며 지켜만 봐야 하다니, 회한의 눈물을 삼키며
우리가 너희들을 다 죽이는구나, 뒤집어라,
폭력과 약탈로 뒤집힌 세상을 뒤집어야 살린다
이렇게 내버려둘 순 없어 저 죽음을 뒤집어라
뒤집지 않고서는 살리지 못해 저 죽음의 세력을 뒤집어라
뒤집힌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그들
돌아앉아 돈이나 세고 있는 그들
자살 행렬은 내 알 바 아니다 약속을 뒤집고
경제 민주화에서 뛰어내려 저만 살겠다고 달아난 그들
이미 구원받은 사람만 구원하는 정치
아이들과 약자들을 외면하고 가진 자들과
힘 있고 능력 있는 자들만 구출하는 구원파 정부
자기 패거리만 구원하고 나머지는 연옥에 밀어 넣는
구원파 정당들, 새나라구원당들
아, 뒤집히고 나서야 보이다니
저들과 우리는 한배를 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배를 타지 않은 자를 선장으로 뽑다니!
뒤집어라, 그들의 명령과 지시를
그리고 저 고귀한 지시를 따르라, 승객을 버리고
선장과 노련한 선원들이 첫 구조선으로 달아난 그 시각
선원은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다! 구명조끼를 벗어 주고
한명이라도 더 구하려다 끝내 오르지 못한 스물두 살
4월을 품은 여자 박지영, 그가 최후의 선장이다
그 푸르른 정신을 따르라, 뒤집어진 걸 바로 세우게 하는
죽음을 뒤집는 4월의 명령을! - 83쪽
단란했던 저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근처까지라도 가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중국 관광객도 다가가서 얼마든지 사진을 찍어가는 청와대까지, 세월호 유족은 경찰들의 제지로 접근하지 못한다. 아득하게 보이는 소중했던 저 시간만큼 멀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송경동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다
자본과 권력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규적 일자리를 덜어내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을 주입했다
그렇게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노동자 세월호에 태워진 이들이 900만 명이다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안전'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어야 할 곳들을 덜어내고
그곳에 '무한 이윤'이라는 탐욕을 채워 넣었다
이런 자본의 재해 속에서
오늘도 하루 일곱 명씩 산재라는 이름으로
착실히 침몰하고 있다
생계 비관이라는 이름으로
그간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알아서 죄초해가야 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지하 선실에 가두어진
이 참혹한 세월의 너른 갑판 위에서
자본만이 무한히 안전하고 배부른 세상이었다
그들의 안전만을 위한 구조 변경은
언제나 법으로 보장되었다
무한한 자본의 안전을 위해
정리해고 비정규직화가 법제화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모든 안전의 업무가
평화의 업무가 평등의 업무가 외주화되었다
경영상의 위기 시 선장인 자본가들의 탈출은 언제나 합법이었고
함께 살자는 모든 노동자들의 구조 신호는 외면당했고
불법으로 매도되고 탄압당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자본의 이동은 언제나 자유로운 합법이었고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만 전가되었다
그런 자본의 무한한 축적을 위해
세상 전체가 기울고 있고 침몰해가고 있다
그 잔혹한 생존의 난바다 속에서
사람들의 생목숨이 수장당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돌려 말하지 마라
이 구조 전체가 단죄받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 처참한 세월호에서 다시 그들만 탈출하려는
이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위험한 세월호의
선장으로 기관장으로 갑판원으로 조타수로 나서야 한다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평형수로 에어포켓으로
다이빙벨로 긴급히 나서야 한다
이 세월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이 자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 89쪽
별이 되어라
이선식
느닷없이 날아든 이 청천벽력은 무엇인가.
꽃들을 싣고 봄 바다로 나갔던 배가
탐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가슴속에 키워오던 무궁무진한 사랑을 보여줄 시간도 없이
어린 꽃들의 꿈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저 무지막지한 폭력은 무엇인가.
하얗게 질린 꽃들의 마지막 절규가
공기 방울로 떠오르는 순간에도
밥그릇의 크기를 가늠하던 저 어처구니없는 시대의 불온
도착한 구조대가 형식만을 구조하는 동안
영원한 침묵이 되어 꽃들이 떠올랐다.
드러나는 탐욕의 거미줄
얽히고설킨 저 암흑의 거미줄을 모른 체한다면
이 땅에서 봄을 영원히 지워버리겠다는 침묵
시간의 밀봉성을 믿고 기억이 연소될 때까지만 기다리면
결국 슬픔도 관심도 뿔뿔이 흩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의 파고에 완강하게 저항하는 무거운 침묵들을 보라
이 어처구니없는 참혹을 잊는 순간 또 다른 참혹이 오나니
하늘을 속인 저 전대미문의 배반을 잊지 말자.
파란 대문과 전봇대와 낡은 자전거가 있던 익숙한 골목도
먼발치 어여쁜 소년 소녀를 기다리던 정류장도
가지마다 빼곡하게 꽃망울이 맺히던 교정도 다 그대로인데
모두들 어디로 갔느냐.
억울하게 지워진 희망들아
이 언어도단이 밝혀질 때까지는
그 무슨 목표 달성도 복지 사회도 어떤 허울 좋은 구호도
대한민국이란 이름 위에 정당화될 수 없단다.
잠재적 빛이었던 아이들아
끝내 돌아오지 못한 우리의 내일이었던 영혼들아
이 불온한 세상을 밝히는 별,
별이 되어라!
거역할 줄 모르던 환한 얼굴들아, 순박한 이름들아 - 123쪽
예슬이는 구두 디자이너가 꿈이었다. 아이의 습작 노트를 가지고 실제 디자이너가 구두를 만들었다. 자신의 상상속 구두가 실물이 되어 세상에 선을 보였는데, 정작 그 창조자는 이 작품을 보지 못한다. 하늘 나라에서, 내려보고 있을까.
무거워 보이긴 하는데, 뒤축이 아주 단단한 재질로 되어 있어서 높은 굽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화면에는 김장훈과 이보미 양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거위의 꿈'이 반복해서 흘러나왔고, 예슬이의 육성도 같이 나왔다. 왜 구두가 좋은지 또박또박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야무진 목소리... 이리 꿈많은 아이들이, 또 많은 꿈을 꾸었을 희생자들이 처참하게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건 단지 304개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한 세계의, 한 우주의 침몰이었다.
이 닭대가리들아!
최종천
세월호 참사 후에 무슨 이런 나라가 있냐고,
도대체가 한심한 나라라고, 나라 원망하는 소리가 들린다.
크게 한스러운 나라 대한민국의 백성들아
이 닭대가리들아 들어라
그러니까 너희가 나라 원망을 하는 그 배경에는
나라는 곧 대통령이나 어떤 책임자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야 나라를 원망할 수는 없다.
단언컨대, 이 닭대가리들아 들어라!
나라니 국가니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산천이나
금수강산을 흐르는 물이나 공기가 아니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 백성이 나라이며 국가다
고로, 백성은 바꿀 수 없으나
군주는 바꿀 수 있다고 노자인지 맹자인지 공자인지
아니면 예수인지 마르크스인지 하는 분이 말했다.
그러므로 나라를 대통령이나 아니면 어떤 누구라고 생각하고
그를 원망하다 보면 우리는 반성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어쩌다가 대마도 그 좋은 섬이 일본의 수중에 들어갔을까?
반성이 없으면 개념이 서지 않는다. 영토라는 개념이 없기에
어영부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마도를 일본에 주어버린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 지경이 된 것이냐?
나라를 대통령이나 어떤 개인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우리는 그에게 복종하게 된 것은 아닌가?
거기에는 무엇보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있다.
오! 우리는 반공의 포로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노예다.
반공을 잘만 하면 국회에 나가거나 출세를 하거나
최소한은 편하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그를, 개인을 갈아 치우지 못했다.
이 닭대가리들아, 나라는 바로 너 자신, 백성이다.
그러니 주체성을 회복하라,
그를 원망만 하지 말고 갈아 치워라,
그가 눈물을 보일지라도 믿지 마라,
우리 조선인은 아주 유별나게도
정에 약한 존재다.
하느님 맙소사! 우리의 주 정서가 정과 한이다.
20세기 대명천지에 정과 한으로는 되는 것이 없다.
그들이 아직은 애도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느냐,
가만히 있어야 안전하다고 하지 않느냐.
이제 슬퍼하지 말고 분노할 일이다.
슬픔의 보자기로 닭대가리를 감싸주면 조용해진다.
곧 목이 비틀리고 깃털이 뽑히고 그들의 밥상에 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닭대가리들아 국가와 나라는 너 자신임을 알라.
하다못해 어떤 물건도 디자인이 구식이고 유지비가 더 많이 들어가면
즉시 바꾸는데, 그가 대통령이든 누구든
갈아 치우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곧 나라요 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예가 되어버린 지금 최고의 가치는 돈과 권력
돈과 권력은 대한민국의 절대적 원칙이다.
반공이 국시의 제일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제일의 국시다.
반공이란 돈과 권력을 사수하는 방패다.
분단이 돈과 권력을 유지해주는데
저들이 통일에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분단의 상황에서 근원적인 자유는 발견할 수가 없고
개인의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곧 돈과 권력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세월호의 참사는 돈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해갔다. 처음에는 가로로 길게
몸을 뒤척이며 누웠다가 서서히 엎어진 다음에
선미가 먼저 바다 밑으로 아주 서서히 가라앉았다.
우리는 화면에서 공기를 토해내며 물을 마시며
호소하는 세월호 선체의 몸부림을 무려
두어 시간 동안이나 보고 있었다. 이미 여덟 시 이전부터
배는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가 공기를 토해내며 물을 마시며 서서히 침몰한 직후
희망이 제조되었다. 선체 안에 에어포켓이 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과학적인 듯한 그 말에 미련을 두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배가 공기를 토해내고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도
백성은 애써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러나 갇힌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돈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살아서 구조된다면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벌 수가 없다.
그러나 죽어서 건져내면 위험한 바닷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돈이 되는 것이다.
즉시 바다에 들어가겠다는 민간 잠수부들을 막았다고 한다.
명분과 실리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서 건져 올려질 때
그것은 선체 안에 에어포켓이 없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
그러나 에어포켓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없을 것이라는 말은 없었다. 에어포켓은 돈을 벌기 위해 조작된 것이다.
보라 그들이 이렇게 백성을 속이고 기만한다.
국가가 그들이라고 생각하는 한에는
우리는 에어포켓이 있다는 그들의 말을 믿게 된다.
대한민국에 에어포켓은 없다.
이 닭대가리들아! 나라나 국가는 바로 백성, 우리 자신이다.
고장 나서 못 쓰게 된 기계나 떨어진 신발을 바꾸듯이
단호하게 그를 갈아 치워라!
그리하여 진정한 백성이 되라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는 단 하나
노예들만 있지 백성이 없다는 것이다. -167쪽
남자 친구와 함께 입고 싶었다던 디자인도 옷으로 제작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소재의 치마였는데, 예슬이의 디자인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구두와 달리 옷은 실물이 디자인보다 덜 예뻐보였음...
누군가 물었다
허수경
택시 기사가 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빵집 아가씨가 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치과 의사가 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집 앞을 쓸다가 마주친 이웃이 물었다,
당신의 고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나도 모른다, 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바닷속에 있어요
엄마들이 울고 아빠들이 울고
삼촌 친구 짝사랑하던 소녀가 울고
잠수부가 울고
다 우는데 아무도 몰라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원한 실종을 완성할 일이
제 고향에서 일어났는지도 몰라요
택시 기사 빵집 아가씨 치과 의사 이웃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독일 어느 마을에 사는 작은 동양 여인의 고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은 모른다고 말하는 나를
바라보면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이건 무의식 뒤 모든 배반의 손들이 합작해서 판
무덤은 아니었을까요
그 앞에 서서 우는 사람들의 영혼마저
말려버리는 사막의 황폐함은 아니었나요
이십 년 동안 독일에 살면서
망설이면서도 포기한 적 없던
내 얼굴의 고향은 서러웠다
길게 울었다 눈앞에 없는
바다 앞에서
고향의 수박등이 흔들렸다. -179쪽
나도 어릴 적에 날마다 공책에 이런 집 구조도를 그렸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집, 내가 갖고 싶은 내 방. 우리 집에 있었으면 하는 가구들을 배치해 놓고 상상하며 즐거워 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리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 상상하고 그리는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알아버려서였을까? 아니면 고등학생이 되니 공부하기 바빠서였을까.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시
휘민
잔인한 계절에는 유월에도 눈이 내린다
새하얀 눈은 책갈피 사이에도 소복이 쌓여
이 계절의 독서는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그날
수학여행을 떠난 너희들은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너희들이 손가락 부러져라 닫힌 철문을 긁고 있을 때
승객을 버린 선장은 제일 먼저 구조되어 젖은 돈을 말렸다
엄마들이 번호표를 들고 항구에서 너희들을 기다릴 때
공무원들은 사망자 명단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뒤늦게 대책본부를 방문한 그들의 보스는
무릎 꿇고 절규하는 모정을 외면한 채 책임자 색출만 지시했고
해경은 구조를 기다리는 뜨거운 목숨들을 주검으로 인양했다
누군가는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고
누군가는 없는 죄도 만들려 안달이었다
그사이 사고는 참사가 되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모두가 아픈데 그들만 아프지 않았다
우리가 이성을 욕망하는 순간에도 세월은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었다
실종자 수는 그대로 사망자 수가 되었고 탑승자 수는 자주 번복되었다
그사이 너희들은 학생증을 목에 건 채
서로의 몸을 끈으로 묶은 채 뭍으로 건져 올려졌다
자식에게 나이키 신발을 사줄 수 없었던 부모는
달이 바뀌어도 남도의 낯선 항구를 떠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가슴에 노란 리본을 매달고 미안함에 울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데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아무리 울부짖어도
한번 고꾸라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에서 멈춘 채 야만의 시간을 표류하고 있었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두운 바닷속에
후득후득 차가운 눈발이 들이친다
우리가 넘기려 했던 책장에도 시린 눈꽃이 떨어진다
우리의 생가슴을 열어 소금 결정이 된 너희들을 뿌린다
쉼표조차 함부로 쓸 수 없는 시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시
그것이 바로 너희들이기에 -188쪽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들이 남긴 흔적들이 갤러리 곳곳에 적혀 있고, 붙여 있고,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잊지 않겠다고, 꼭 기억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목소리들이었다. 잊지 말자. 제발 잊지 말자.
발문
이제,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김윤태(문학평론가)
패전 후 전범 재판에서 일본의 군인과 정치가들 대부분은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사실 전쟁 중에 내려졌던 모든 명령은 천황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전승국인 미국은 천황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전쟁의 책임을 지는 자가 없었다. 누군가 이를 가리켜 ‘무책임의 체계’라고 했듯이, 이는 전쟁의 책임을 일부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전 국민이 그 책임을 평등하게 지고 반성하자고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형국이 된 셈이다.
(...)
이제 정부에서는 수습을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내놓은 카드가 해경 해체다. 또 책임지지도 못한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고 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국가개조론’까지 들고 나온다.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재난 자본주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참으로 끔찍하다. 재난의 절망 위에 꽃피는 자본의 음험한 욕망이라니! 이것은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 아니겠는가. - 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