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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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솜씨는 역시 다르다. 어마어마한 흡인력으로 빨아들이는데, 엄청 속도감 있게 읽었다. 작년 한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이 작품이었던가. 무려 세권이나 되는데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저자의 공력에 새삼 감탄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배경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을 찍고 있는 인물 군상들을 보여준다. 지리적으로 아주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리 가깝지 않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렇게 책을 통해 엿보고는, 내가 모르고 있던 모습들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느새 중국이 이렇게까지!


확실히 중국은 놀라운 나라다.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메이드 인 차이나는 조롱과 함께 들먹인 이름이었는데, 이제 중국은 G2의 양축이 되어 세계 어디에서도 대국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G20 개막식에도 미국보다도 늦게 도착했던 중국 대표가 떠오른다. 그게 그들이 내세우는 오늘날의 위상이며 자존심인 게지. 


3권 분량의 책인데 내가 읽은 것은 아직 1권 분량인지라 여러 등장인물들이 소개되는 정도에서 그쳤다. 본격적인 진행은 2권에 들어가야 가능할 듯하다. 한국에서 쫓겨가다시피 해서 상해로 들어선 성형외과 의사 이야기도 궁금하고, 역사학도가 되기로 결정한 유학생의 중국인 여친의 집안도 궁금하다. 중국 사람 한국 사람 모두 무시하는 일본인 종합상사가 종국엔 큰 코 다치는지도 얼른 알고 싶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해도 감정이 생겨서 말이다...;;;;;


문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책 읽는 속도도 쭉쭉 빠진다. 그렇지만 문장을 곱씹으며 느끼게 되는 향기나 맛은 많이 부족했다. 그런 서정성은 작품의 성격과도 좀 안 어울리기도 하지만.


아직 2권과 3권을 주문하지 못했다. 리뷰 쓰고 책 주문하련다. 고고씽!

중국이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G2가 되었을 때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당사자인 중국도 어리뻥뻥했다니 다른 나라들이야 더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G2는 그만두고, 중국 1인당 GDP가 4천 불이 되려면 2040년쯤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었지요.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도, 일본도, 당사자 중국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년 2010년에 일본을 걷어차고 G2 자리를 차지한 겁니다. 참, 예상을 30년이나 앞당겨버렸으니 각 나라가 받은 충격이 어땠겠어요. 일본은 날벼락 맞아 기절해 버렸고, 미국은 야구방망이로 뒤통수 맞아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유럽 국가들은 라이트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맞아 비틀비틀하고, 우리 한국사람들은 무슨 소린지 감이 잘 안 잡혀 눈을 껌벅껌벅하고 있는 상태지요.

G2를 한마디로 하자면 ‘세계 공장’이었던 중국이 ‘세계 시장’으로 바뀌었다는 뜻이고, 세계의 소비시장이 된 구체적인 예는 많지만, 두 가지만 들겠습니다. 상용차를 포함한 모든 자동차의 수가 2억 대를 넘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고, 여성들의 명품 사냥이 브라질을 밀어내고 2위가 되었으며, 미국마저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여성들의 그 기세는 이미 성형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14억 중에서 절반이 여성이고, 7억 중에서 절반이 예뻐지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시장이 무궁무진하고 망망대해라는 것이 실감이 안 되십니까?
-17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하면 싼 인건비, 짝퉁, 불량식품 같은 것만 생각하지 초스피드의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모든 분야의 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선입관도 있고, 발전이나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심사도 작용하고 그런 거지요.
-32

중국 특유의 꽌시란 한자로 관계라고 썼고, 그 뜻은 ‘연줄, 뒷배, 네트워크’ 등이 뭉뚱그려진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고, 나라 망치는 학연, 지연, 혈연을 다 합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것이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 꽌시 때문에 중국에 처음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한동안 정글을 헤매며 허방을 딛고, 넘어지고,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61

일본은 아주 괴상스러운 나라야, 아시아에서 솔선해서 서양문화를 제일 먼저 받아들였는데 딴 나라들에 비해서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거의 변하지 않은 세 가지가 있었어. 예수교가 전혀 기세를 펴지 못해 확산되지 않았고, 커피가 녹차에 막혀 영 맥을 못 추었고, 코카콜라가 마구 광고를 해대도 고전을 면치 못했지. 그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서양에서는 일본의 3대 불가사의라고 불렀어. 옷이나 건물들이 거의 서양식으로 바뀐 것하고는 영 딴판이었으니까. 근데 말야, 몇 년 전부터 한 가지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젊은 사람들이 커다란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유행을 일으킨 거야. 그런데 더 문제는 중국이야. 4천 년이 넘는 중국차의 아성 앞에서 커피 제까짓 게 꼼짝 못할 줄 알았지. 헌데 중국차의 만리장성마저 커피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거야.(...) 10위안짜리 점심 먹고 30위안짜리 커피컵 들고 나서면서, 그게 아주 세련되고 멋지고, 첨단 문화인이 된 것처럼 으스대는 꼴들 하고는.
-66

중국에서는 흑인을 보기가 드물었다. 서양 대기업들은 중국 사람들이 유난히 흑인을 싫어한다는 걸 일찌감치 눈치챈 게 분명했다. 비즈니스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흑인들을 파견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리 없었던 것이다.
-99

중국인들은 8자를 광적으로 좋아하고, 그 맹신은 가히 신앙적이다. 그 이유는 돈과 직결되어 있었다. 중국말 파차이는 ‘돈을 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발음 ‘파’가 숫자 8의 발음 ‘빠’와 얼핏 혼동할 정도로 같이 들린다. 돈을 많이 많이 벌어 떼부자가 되고 싶은 중국사람들에게 8자는 곧 돈이라 믿는 행운의 숫자가 되었다. 그래서 8자는 빨간색보다도 더 위에 오르는 신앙의 대상으로 떠받들려졌다. 그들의 8자에 대한 집착과 열광은 생활 도처에 나타난다. 8자 들어가는 날은 무조건 길일이 되고, 그래서 8월 8일 오후 8시에 결혼식을 시작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축의금도 888위안을 내는 사람이 최고의 하객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믿지 못하겠으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보면 된다. 그 개막식 날짜와 시간은 어떠했는가.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성화가 타올랐다.(...) 아파트 분양 때 8자 들어가는 동들의 8층 8호에 엄청난 웃돈이 붙고, 자동차 번호 8888이 1억 원에 거래되는 나라가 중국이었다. 이러한 광풍은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된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 세월이 해를 거듭해갈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로 천대받는 숫자가 있었다. 4자였다. 그 발음 ‘쓰'와 죽을 사(死) 자 발음 ‘쓰’가 높낮이만 약간 다를 뿐 음은 똑같았던 것이다.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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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7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장의 글을 한권도 읽지 못한 1인입니다 ㅠ
죽기 전에 태백산맥이라도 읽고 싶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마노아 2014-07-01 13:30   좋아요 0 | URL
저도 대하소설은 아리랑만 읽었네요. 태백산맥은 사두고서 먼지만 쌓이고...;;;
댓글이 많이 늦었네요. 푸른기침님도 7월 첫날, 즐거이 시작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