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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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왕 루이 14세(이아생트 리고, 1701,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아가야, 너는 위대한 왕이 될 것이다. 건축에 빠졌던 나의 취향을 닮지 마라. 전쟁을 좋아하는 것도 닮지 마라. 반대로 이웃나라와 화친하도록 노력해라. 신의 은혜에 보답해라. 신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지 말거라. 백성으로 하여금 신을 경배하게 해라. 늘 좋은 충고를 따르도록 해라. 백성의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해라. 애통하게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구나.”
태왕왕 루이 14세(1638-1715)가 영면을 앞두고 다섯 살짜리 후계자에게 남긴 유언이다. 자신의 통치 전반에 대한 반성과 함께 후계자에게 주는 진솔한 당부가 담겨 있다.
루이 14세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영광에 대한 그의 지나친 집착에서 비롯되었다. -51쪽

고작 다섯살짜리 후계자에게 남기기에는 지나치게 심각하고 무거운 이야기이다. 그만큼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뼈에 사무쳤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려서 임금이 된 루이 14세의 재위 기간은 조선의 인조, 효종, 현종, 숙종까지 겹친다. 절제의 미가 있었던 조선의 궁궐을 떠올리면 화려한 베르사유궁은 무척 대조적이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그림 속 루이 14세는 아래쪽을 내려다 보고 있고, 그 바람에 그림을 보는 이들은 그를 우러러 보게 되어 있다. 모델과 관객 사이의 우열 관계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다.
매끈한 루이 14세의 다리를 보니 영화 '왕의 춤'이 떠오른다. 앞부분 보다가 잠들었는데 다시 도전해야겠다.^^

 

 

자파의 페스트 병원을 방문한 나폴레옹(앙투안 장 그로, 1804,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 원정 당시 나폴레옹의 부대는 페스트로 인해 병사들이 쓰러지는 곤경을 겪었다. 시리아의 자파에 있던 모스크를 병원으로 개조한 뒤 거기에 환자들을 수용했는데, 그림은 바로 그 병원을 찾은 나폴레옹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이 인상적인 것은 화가가 나폴레옹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렸다는 것이다. -85쪽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기 직전에 공개되었다. 미술사적 평가와 별개로 이 그림이 얼마나 세심하게 전략적으로 쓰였는지를 알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견되는 나폴레옹의 등장이라니... 한편으로는 아찔하고, 한편으로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자크 루이 다비드, 1805-1807,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 그림 역시 나폴레옹의 홍보 전략이 빛을 발하는 그림이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황제의 대관식에서 나폴레옹은 교황이 관을 씌워주는 관례를 거부하고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에 관을 씌웠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황제라는 듯이 말이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다비드는 애초에 이 장면을 나폴레옹이 직접 자기 머리에 관을 씌우는 모습으로 그리려 했으나, 구성상으로 또 기록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을 썼던 황제가 그것을 벗어 다시 황후에게 씌우려는 장면으로 구성을 바꿨는데, 문제는 황제를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화가는 조제핀에게 황제를 설득해줄 것을 요청했고 자신이 황제와 더불어 그림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 조제핀은 이 일에 적극 나서 마침내 지금의 그림이 탄생했다. -93쪽

화가도 나폴레옹만큼이나 영리했다. ^^
번호를 소개하겠다.
1. 나폴레옹 황제
2. 조제핀 황후
3. 어머니 마리아
4. 형 조제프
5. 동생 루이
6. 여동생들 카롤린, 폴린, 엘리사
7. 조카 루이 나폴레옹
8. 샤를 프랑수아 르브룅
9. 장 자크 레기 드 캉바세레스
10. 루이 알렉상드르 벨티에
11. 탈레랑
12. 뮈라
13. 교황 피우스 7세(비오 7세)
14. 화가 다비드
15. '카이사르의 유령'으로 불리는 인물

각각의 인물들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일리야 레핀, 1885,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좋아하는 일리야 레핀의 그림이다. 제 손으로 아들을 죽인 이반 뇌제의 충격어린 눈빛이 강렬하다. 사건은 사소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며느리인 태자비가 입고 있던 옷이 차르가 보기에 정숙하지 않았다. 임신 중이던 태자비는 몸을 움직이기에 좀더 편한 옷을 입고 있다가 갑자기 행차한 시아버지를 맞으러 나갔다가 진노한 차르에게 걷어차이고 말았다. 놀란 태자가 아버지를 말리려다가 더욱 격분한 차르의 지팡이에 관자놀이를 맞고 닷새 뒤 사망한 것이다. 태자비도 유산 끝에 곧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유능하고 강력한 통치자이기도 했지만 피로 점철된 그의 인생은 그를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군주의 한사람으로도 만들었다. 그의 생은 영광 뒤에 겹쳐진 고독과 자기 혐오, 그리고 외로움으로 뒤덮였을 것만 같다. 그림 속 저 표정처럼...

 

사형수들에게 독약을 시험하는 클레오파트라(알렉상드르 카바넬,1887,개인 소장)
클레오파트라의 연회(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1742-1743년경,파리,코냐크 제 박물관)

그리스인의 피를 이어 받은 라지드 왕가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는 전형적인 이집트인의 인종적 특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라지드 왕가 사람들은 이집트어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일상에서 그리스어를 쓰고 그리스 풍의 옷을 입고 그리스 식으로 살았다. 다만 클레오파트라는 민간 이집트어를 배워 말할 줄 알았고 이집트의 종교와 전통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두 개의 그림 중 첫번째 그림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두번째 그림은 제목을 보지 않고는 좀처럼 클레오파트라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그림은 거금을 들여 정찬을 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클레오파트라가 식초 항아리에 자신의 값비싼 진주귀고리를 집어 넣고는 녹여서 마신 일화를 담은 것이다. 안토니우스가 그녀의 대범함에 놀랐음은 당연하다.

그나저나, 그 진주 귀고리.... 아깝네...^^

 

 

퐁파두르 부인(모리스 켕탱 드 라투르, 1755, 파리, 루브르 박물관)
퐁파두르 부인(프랑수아 부셰, 1756,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똑같은 모델을 비슷한 구도로 그렸지만 두번째 부셰의 작품이 더 마음에 든다.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로 이미 홀딱 반했기 때문일 것이다.(이 책 최근에 개정판 나왔다!)

교양과 지성미로 통하는 퐁파두르 부인인 만큼 주변 소품들도 그런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책과 악보, 악기, 그림에 지구본까지...

과거 유럽에서는 퐁파두르 부인처럼 왕이나 귀족, 권력자의 정부가 된 사람을 코티잔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일반적인 정부와 달랐고 창부들과도 구별된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높은 지위의 후원자들과 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그 관계가 사회적으로 공인된 이들이었다.

고급 코티잔이 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용모뿐 아니라 교양과 재능, 품성, 센스, 위트를 두루 갖춰야 했다. 따라서 높은 지위의 후원자에게 선택될 때 그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은 결국 그녀가 어떻게 양육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고급 코티잔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유부녀인 경우도 많았는데, 어차피 코티잔이 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이익을 따라 한 남자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므로, 심지어 자기 남편의 신분 상승 혹은 지위 상승을 위해서도 다른 남자의 코티잔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바라는 이득을 얻으면 상호 양해하에 후원자와 깨끗이 헤어졌다. 후원자들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코티잔에게 헤어질 때 이처럼 원하는 보상을 해주거나, 다른 유력한 후원자를 소개하거나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곤 했다.
이처럼 유럽에서 코티잔 문화가 발달한 것은 정략결혼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권력자들이나 귀족의 경우 가문과 혈통, 재산을 잇기 위해 정략적으로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만족을 이렇듯 혼외의 파트너에게 찾게 된 것이다. 이것이 궁정문화와 귀족문화에 녹아들어 공식화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코티잔이었다. -169쪽

아아아, 두번째 드레스 참 예쁘다. 곱구나....!

 

 

일출(프랑수아 부셰, 1753, 런던, 월리스 컬렉션)
일몰(프랑수아 부셰, 1752, 런던, 월리스 컬렉션)

두 장의 그림을 함께 보아야 제맛인 작품이다. 태양의 신 아폴로가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바다의 요정들을 떠나는 장면과 돌아와 그들의 환영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아폴로는 루이 15세를 상징하고, 테티스 여신은 퐁파두르 부인을 상징한다. 해가 바다에서 떠오르고 바다로 돌아가는 영원한 숙명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정부'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 부족한, 두 사람의 우정을 담은 인생의 여정이 느껴진다.

 

운명의 여신에게 퐁파두르 부인의 목숨을 연장해달라고 호소하는 예술들(카를 방로, 1764, 포틀랜드 미술관)

퐁파두르 부인은 1764년 43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부인의 죽음은 루이 15세 뿐아니라 프랑스의 예술가들도 슬프게 만들었다. 그만큼 그녀가 예술계에 보낸 후원과 지원이 큰 격려가 되었던 것이다. 너무 이른 그녀의 퇴장에 대한 슬픔을 카를 방로는 이렇게 멋진 그림으로 표현했다. 운명의 여신이 가위를 들어 부인의 명줄을 끊으려 하자 아폴로와 주위의 조각, 회화, 건축, 음악이 간절한 자세로 그러지 말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한 시대 문화예술의 토3대를 다진 이에게 보내는 감사이자 그 업적에 대한 극진한 찬사가 아닐 수 없다. 불후의 명곡에서 임태경이 패티김에게 보냈던 경의가 떠오른다.

 

하렘의 빛(프레더릭 레이턴 경, 1880년경, 개인 소장)
노예시장(장 레옹 제롬, 1871, 신시내티 미술관)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기원전 26세기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쿠푸는 피라미드를 세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딸에게 몸을 팔게 했다고 한다. 기원전 18세기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창부를 포함한 여성의 상속권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법조문에 등장하는 창부에 관한 언급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하겠다. 기원전 7세기 바빌로니아에서는 부유한 시민들의 주요 수입원 가운데 하나가 여자노예를 통한 윤락사업이었다. -171쪽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여인의 모습이 무척 관능적이다.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취한 듯 몽롱한 얼굴이다. 눈부신 느낌으로 처리한 빛도 그 미모를 더욱 빛나게 한다.

두번째 그림에는 비참한 제 모습에 절망에 빠진 노예와, 자신의 관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거의 모델 포스로 서 있는 여인을 함께 볼 수 있다. 노예시장에 매물로 나온 노예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자신이 팔리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노예는 상인의 기분에 따라 강간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 나니 여인의 도발적인 포즈가 쉽게 이해가 간다. 제국주의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 서구 앞의 동양은 마치 이 여인같은 재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울컥하게 만든다. 

 

흑사병(아르놀트 뵈클린, 1898, 바젤 미술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죽음이 있는 자화상(아르놀트 뵈클린, 1872, 베를린, 국립 고전 미술관)

흑사병에 대한 유럽인들의 오랜 공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림이다.

흑사병이 심하게 돈 14세기에는 심지어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 제물로 사라지기도 했다. 1348년 평균수명이 25세였던 영국인들은 1376년 평균수명이 17세로 내려갔다. 그 공포스러운 현실 앞에서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지옥의 목구멍까지 들여다본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관습과 문화를 그대로 유지해갈 수 없었다. -213쪽

같은 사람이 그렸는데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똑같이 죽음이 지배하는 그림이긴 하지만...
전염병으로 자녀를 잃은 화가의 우울함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에게 영감을 준 존재는 뮤즈가 아니라 이처럼 죽음이었다. 화가의 귓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죽음이라니, 섬뜩하면서 어쩐지 시적이다.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죽음을 한 사람의 배우로 표현한 부분이 떠오른다.

작곡가 말러는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아 '교향곡 4번, G장조'의 스케르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 속 죽음의 느낌을 음악에서 그대로 살리기 위해 말러는 바이올린 솔로이스트로 하여금 바이올린을 부적절하게 튜닝해 연주하도록 했다고 한다.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사치를 조심하라(얀 스테인, 1663, 빈 미술사 박물관)

 

제목이 아주 적나라하다. 어수선해 보이는 집에서 한 여인이 졸고 있꼬, 그 사이에 집안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다. 식탁 위의 음식은 개가 먹어치우고 있고, 아기는 값비싼 목걸이를 갖고 놀고 있다. 집안에서 돼지가 활개를 치고 다니고 손님으로 온 이들도 어지럽게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부유한 집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막 살면 순식간에 쫄딱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직접적으로 보여준 그림이라 하겠다. ^^

 

마라의 죽음(자크 루이 다비드, 1791, 브뤼셀, 벨기에 왕립 미술관)

 

김영하의 책에서 이 그림을 표지로 쓴 것을 봤던 것 같은데 제목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읽었던 게 아니라 그 책의 표지를 보고 친구가 이 그림 아냐고 질문을 했던 것으로 묶여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그림은 익숙하다. ^^ 고대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그림을 많이 그린 다비드는 프랑스 대혁명 당대를 살면서 해당 시대의 역사화도 그렸다. 그림의 주인공 마라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당의 주요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피부가 좋지 않았던 그는 욕조에서 업무를 볼 때가 많았는데, 업무 중에 지롱드당 지지자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당했다. 마라와 다비드의 이름이 오른쪽 아래쪽에 선명하게 보인다. 이 그림을 보니 오래 전에 읽은 김혜린 작가의 '테르미도르'가 떠오른다.^^

 

'역사의 미술관'은 역사와 '미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영리하게 잡은 책이다. 그림 속의 역사와 역사 속의 그림이 잘 만났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조명하는 역사적 흐름을 잡아주는 것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그 덕분에 책 한권을 읽었는데 통사로서의 역사책도 보고 미술책도 보고 풍속사로서의 면면을 본 충족감이 든다. 이제껏 읽은 이주헌 씨의 책 중에서 만족도가 가장 컸다. 모처럼 맛있게, 그리고 영양가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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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1 0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1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족 2012-06-0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퐁파두르 부인이, 그 닥터 후 에피소드의 그 우주선 이름이었던 기억이 -_-;;;

마노아 2012-06-01 16:14   좋아요 0 | URL
닥터 후를 보지 못해서 전혀 모르는 얘기인데, 아무튼 우주선 이름이란 말이죠?
전 율리시스 만화에서 오디세이 우주선이 떠올라요.^^

별족 2012-06-01 16:29   좋아요 0 | URL
저도 어쩌다 본 건데 그 때. 퐁파두르 부인은 누굴까,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마노아 2012-06-02 10:39   좋아요 0 | URL
베르사이유의 장미 때문에 뒤바리 부인이 더 먼저 떠오르긴 했는데 아무래도 퐁파두르 부인이 더 유명하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