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머니 속의 귀뚜라미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6
레베카 커딜 지음, 에벌린 네스 그림, 이상희 옮김 / 사계절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꼬마 소년 제이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골짜기에 있는 낡은 농가에서 살고 있었다. 제이의 나이는 여섯 살. 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벽에 기대어 나뭇가지를 다듬고 있는 포스가 허클베리 핀을 연상시키는 악동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제이는 호기심 많고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지만 못 말리는 악동은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소떼를 데리러 목초지로 향하는 제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온통 관심을 끄는 것들 뿐이다.  

흙먼지에 찍히는 자기 발자국과 거미줄 사이에서 잠들어 있는 잿빛 거미, 연분홍 꽃에서 꿀을 팔고 있는 노랑 나비까지...  

(이 그림이 있는 옆 페이지의 마지막 줄에 오타가 있다. '펼쳤다간'>>>'펼쳤다가')



언덕 아래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시냇물. 발목에 부딪쳐 잔물결을 일으키는 맑은 물에 흙먼지가 깨끗하게 씻겨나간다. 

물을 표현한 색깔이 황토색이어서 맑은 느낌은 덜하지만, 잔잔한 물결이 주는 느낌은 실감난다.  

물 속에서 주운 납작한 돌멩이 하나. 뒤쪽에 고사리무늬가 찍혀 있다. 돌멩이도 제이의 호주머니 속으로 풍덩~ 

잿빛 거위 깃털도 제이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신세~  

콩꼬투리에서 떨어진 서늘한 콩도 제이의 호주머니를 비켜가지 않는다.



아삭아삭 사과를 먹으며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제이. 길 끝에 하얀 학교 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제이가 곧 입학할 학교일 테지. 

암소들이 먼저 앞서 걷고 제이도 그 뒤를 따른다. 길게 이어진 길의 원근감이 멋지다.  

많은 색을 쓰지도 않았고, 복잡한 그림도 아니건만, 이 단순하고 명쾌한 그림이 주는 여운과 감동이 깊다. 

아마도 판화기법을 쓴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깔끔하게 느껴지나보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된 귀뚜라미. 당장 내버리라고 하지 않고 귀뚜라미를 기를 집이 필요할 거라며 차 거르는 망을 주신 멋진 어머니. 

제이는 바지 호주머니에다가 차 망 손잡이를 꽂았다. 불쑥 튀어나온 귀뚜라미 집이 보이는가. 



귀뚜라미는 제이가 준비해준 저녁을 손도 대지 않다가, 제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야금야금 먹어치운다. 귀여운 녀석! 

밤이 깊었다. 주변이 캄캄해지자 귀뚜라미가 노래를 한다. 귀뚤! 귀뚤! 귀뚤! 

문득 미야자와 켄지의 첼로 켜는 고수가 떠올랐다. 나도 같이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 마음~ 



제이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귀뚜라미처럼 폴짝폴짝 뛰는 얼굴의 저 웃음이라니!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그 꼬맹이 임금같은 표정이 아닌가! 



며칠 뒤 제이는 드디어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주머니 속의 온갖 예비 보물들을 다 내려놓고 귀뚜라미 친구를 넣어 왔는데, 이 녀석이 어두운 주머니 속에서 자꾸 노래를 부르니 모두의 시선은 쏠리고, 난감한 제이는 저리 위축된 모습이다. 얼마나 애가 타고 긴장이 될까.  



선생님은 당연히 귀뚜라미를 밖에 내다 놓으라고 하신다.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제이. 

선생님의 뒷태와 포스만 생각하면 B사감과 러브레터를 떠올릴 법하건만, 이 선생님 정말 멋진 분이시다.  

제이가 귀뚜라미와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는 묘안을 제시하신 것!  

졸지에 제이는 수업의 주인공이 되었다. 귀뚜라미 친구도 더불어서. 

만약 나였다면, 일단 귀뚜라미가 무서워서 비명을 질렀을 테고, 반경 3미터 내로 다가오지 말라고 경계부터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고3 무렵 살던 집이 아주 낡고 벌레가 많았는데, 화장실 변기에 늘 귀뚜라미 한가족이 풍덩 빠져서 비키질 않았다. 볼일 볼 때 그 녀석들이 튀어오를까 봐 날마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물을 아무리 내려도 떠내려가지도 않던 왕귀뚜라미! 그때의 공포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책 속의 귀뚜라미처럼 절대 귀엽지 않았단 말이다... 

그래도 귀뚜라미 동요는 지금도 좋아한다. 귀뚜라미~ 귀뚤귀뚤. 찌으르 찌으르 찌르르르....



뭐 암튼! 그건 나의 경험일 뿐이고...  

귀뚜라미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학생과 교사,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다 함께 만족할 만한 묘책을 끌어내준 선생님의 지혜가, 무엇보다도 그 마음씀이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더불어 반성도...  

마지막 사진은 제이의 다음 번 수업 주제가 되겠다. 저게 뭘까? ^^

글도 그림도 모두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전혀 모르던 작가였는데 이 책을 내 눈에 번쩍 뜨이게 만들어준 광주 애인님께 감사를~ 

작가의 다른 책들이 더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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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6-16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광주애인은 요거로 포토리뷰 먹었지요.^^
사계절 마인드가 잘 나타난 좋은 책들이 많아요.

마노아 2010-06-16 09:34   좋아요 0 | URL
두루두루 효자 책이에요.^^
사계절의 책들이 참 좋아요. 여운이 깊어요~

같은하늘 2010-06-17 15:46   좋아요 0 | URL
어쩐지... 이거 어디서 보았는데 했다는...
그러고도 기억 못하는 이를 어쩌나...ㅜㅜ

마노아 2010-06-17 20:12   좋아요 0 | URL
프헤헤헷, 책 제목을 클릭하면 순오기님 리뷰가 뜰 테니 함 보셔요.
그럼 기억이 확 살아날 거예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