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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로망 백서
박사.이명석 지음 / 북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겨울, 이지만 봄이 오는 것처럼 따뜻한 비가 내린다. 밖으로 나가면 조금 쌀쌀한 느낌이 나려나? 어쨌든지간에 봄이 느껴지는 듯한 빗소리가 좋은 날이다.
이런 날, 나는 사무실에 앉아 전자계산기를 두들기다 말고 잠시 졸다가 문득 깨어나 차 한잔을 마신다. 그리고 여행의 로망을 꿈꾼다. "난 지금 파리의 뒷골목을 헤매다 내리는 비에 잠시 카페에 들려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 중이야"
골목길에서 바라보는 거리 풍경은 참 재미있지. 갑자기 내린 비에 우산이 없어 뛰어가는 사람도 있고, 오랜만에 내린 비를 즐기듯 여유롭게 처벅처벅 빗물을 튕기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카페에 들어 앉아 내친김에 책을 읽는 사람도 있겠지.
이제 나는 거리 구경을 멈추고 나의 여행일기장을 꺼내든다. 찍었던 사진을 뜯어보며 혼자 킬킬대다 결국은 사진에 얽힌 여러가지 추억들을 떠올리며 몇가지 기억에 남길 사건을 끄적거리며 적어놓고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잠깐, 카페를 나서면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여기서 내 한낮의 몽상은 깨어난다. 한참 일을 하던 내 책상위에는 어느새 이면지가 널부러져 있고, 그 위에 한가득 내가 가고싶은 곳,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 남기고 올 추억에 대한 가상소설들이 적혀있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던거지?
아, 그래 여행에 대한 로망을 꿈꾸고 있는 중이었군.
나는 혼자서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을 꿈꾸지만, 결코 그랬던 적은 한번도 없다. 무계획적인데다가 소심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결코 혼자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론 외국으로의 여행은 언어조차 되지 않기때문에 더욱더 혼자 떠날수가 없다.
그래도 여행에 대한 로망은 버릴 수 없다.
십여년 전 세계여행을 꿈꿨을 때의 상황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여행에 대한 끝없는 낭만을 꿈꾸었기에 얼결에 가끔씩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결코 여행의 로망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다시 떠올리게 된다. 내가 꿈꾸었던 여행에 대한 로망을.
이 책은 여행이란 이런거야, 라는 걸 말해주지 않는다. 순 자기들 얘기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란 그런것 아닌가? 온전히 나 자신의 체험과 추억.
그 접점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추억을 존중하고 부러워하며 나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
그렇게 추억을 나누기 위해 또다시 여행의 로망을 꿈꾸고....
빗소리가 토닥토닥 경쾌한 오후, 낮게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명음반명연주를 들으며 나는 이렇게 여행의 로망을 꿈꾼다. 이것이 일년 삼백육십여일의 직장생활에 얽매인 나를 견뎌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