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 칠레, 볼리비아, 쿠바, 아르헨티나, 페루 여행 필독서
허소라 지음 / 하모니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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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책들은 제목이 너무 좋아서 서점에서 자주 걸음을 멈추게 된다. 한 번의 퇴사 열 번의 남미. 이 책도 그랬다. 근데 왜인지 나에게는 자꾸만 한 번의 남미 열 번의 퇴사로 기억이 남아서 저자가 열 번의 퇴사 끝에 드디어 남미로 떠나게 된 것인가! 나도 열 번쯤 퇴사를 하면 남미에 갈 엄두가 날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건 다 내 착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책을 펼치고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세계 여행이라는 타이틀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주변의 누군가가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와 너도 꼭 한 번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고 입이 닳도록 말해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어디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사진을 꺼내서 아무리 자랑을 해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자꾸 좋았다고 가보라고 말하는 여행지는 반감을 느끼고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선물을 받았던 소설 겸 에세이가 담긴 여행책을 읽게 되었고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게 되었다. 워낙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라서 막바지 두 페이지 가득 담겨있던 이과수 폭포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우는 원포토와 함께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그것, 이과수 폭포 앞에서 울게 될 날 때문에 남미는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고 어느덧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 중인 여행지가 바로 남미인데 퇴사를 하고 훌쩍 남미로 떠난 그녀의 결단이 부러웠다. 퇴직은 있었지만 나는 대기업을 다니지 않아서인지 퇴직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 삼아본다.


언제부터인지 매체들도, 도서들도, 하물며 주변 사람들도 남미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덕분에 방에 앉아서 남미를 마주하게 되는 일이 참 많아졌다. 남미의 열정을 누구보다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볼 수 있었다. 내가 꼭 가고 싶었던 이과수 폭포도 맑은 날, 흐린 날, 그저 그런 날까지도 모두 구경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여행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좋았던 것은 뻔한 남미 사진이 아니라서, 감정으로 호소하는 글이 아니라서 좋았다. 여행의 힘든 여정과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여행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좋았다. 남미를 여행한다면 꼭 필요한 정보들을 빼먹지 않고 적어주는 책이라서, 만약 남미로 떠나게 되면 가볍게 이 책과 함께 하고 싶을 정도로 든든한 여행의 동반자가 될 것 같아서 좋았다. 페이지 중간중간 가득 채운 사진은 특히 더 좋아 그 페이지에서 자주 넋을 놓았다.

이 책에는 칠레, 볼리비아, 쿠바, 아르헨티나, 페루를 여행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칠레 ,볼리비아는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읽게 된 것이라 재밌는 정보를 얻게 되어 좋았고 쿠바는 예능 때문에 익숙한 지명과 눈에 익은 장소가 나와 마치 다녀온 냥 읽게 되어 재밌었다. 가장 관심있는 아르헨티나는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웠고, 페루 역시 아는 지역과 이야기가 나오면 맞아, OO의 SNS에서 봤어! 하며 반가워 했다. 이제는 그만 공부하고 너도 남미로 얼른 떠나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소리치는 것을 조용히 모르는 척했지만 어쩌면 더이상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일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곤 한다. 특히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미에서는 낯선 것들 투성이에 둘러싸여, 일상에 존재하던 ‘나‘를 내던질 수 있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쿠바 아바나의 말레꼰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페루의 알지도 못하는 라틴 클럽에 가서 미친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평소에 시도하지 못했던 과감한 패션을 시도하기도 하고! 여태까지의 네모 반듯한 나를 벗어나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찰흙처럼, 여행자로 살아내는 나만의 시간들, 떨림을 간직한 일. 여행. - P112

"걷는 것만 생각해. 남은 거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 P126

여행을 하다 보면 언어를 뛰어넘는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사랑, 음악, 예술, 아름다운 것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답답할 때도 있을지언정, 언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에 나의 감정을 온전히 열어버리는 것이다. - P132

나는 침묵이 사랑의 필수 요소라는 점에 동의한다. 언어는 너무나 많은 것을 파괴한다.
그럼 점에서 여행도 사랑도,
가끔은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 P133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런 거 없다. 그래도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빛나는 순간들이, 나를 이루는 또 하나의 빛나는 파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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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김지영 지음 / 푸른향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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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방한 '트래블러'를 보면서 형형색색으로 꾸며진 쿠바의 예쁨에 반하고, 지금도 방송 중인 '스페인 하숙'을 보면서 혼자 묵묵히 걷게 되는 순례길을 상상하기도 했다. 쿠바에 가보고 싶다, 스페인을 가고 싶다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면서도 사실 떠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혼자 먼 길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혼자 떠나온 길 위에서 전혀 걱정과 두려움 없이 걸을 자신도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주눅 들어 오롯이 풍경과 마주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좀처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책을 펼쳐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두가지 마음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생기지 않는 용기를 대신하여 대리만족하기 좋을 것 같아서, 두번째는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같은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의 여행은 어땠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제목이 너무 좋아서 괜히 읽기 전부터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를 소리내어 여러번 읽었다. 그것이 용기를 만들어내는 주문이라도 되는 냥.

근데 막상 책을 펼치니 나의 첫번째 마음이 와장창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행복해지기 위해 현실을 내던지고 비행기에 오른 그녀의 여행은 상상처럼 반짝이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실패와 그로인한 좌절 앞에서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역시 혼자는 무섭잖아!!! 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일이었다면, 하고 상상하다 이내 그만두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짊어진 나의 전부보다 닥쳐온 현실이 더 무겁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도망치고 도망쳐도 어쩜 이렇게 삶은 무겁기만 한걸까. 비약이 과해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자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더니 어떻게 된거야! 그녀를 붙잡고 따져묻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버거움이, 힘듦이 눈 앞의 예쁨을 자주 잊게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책을 덮고 무거워진 마음에 올려다본 하늘은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날이었다. 그게 또 위로가 된다.


김영하 작가님이 '여행의 이유'에서 그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의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라고.

같은 맥락으로 나는 실패하고 좌절하는 그녀의 여행 이야기가 무거워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음에도 소소한 이야기에 웃고 다정한 한마디에 코끝이 찡했다. 제 3자의 입장에서도 짠하고 찡하고 감정의 변화로 바쁜데 여행의 중심에 있었을 그녀의 감정은 얼마나 오르내렸을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인가 중반부터는 여행의 동지가 되어 함께 걷고 함께 화를 내고 함께 당황스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초반에 따져묻고 싶었던 마음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에게도 화살이 돌아갔다. 완벽하지 않아서, 원하는 것은 늘 내게 오지 않아서, 그럼에도 너를 만나서 다행인, 그런 여행이라 좋았다.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마음이 꼭 나 같아서 눈물이 났다.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가시돋힌 말을 쏟아내던 그 끝에도, 외로움을 자처하고 떠난 여행에서 도무지 외롭지가 않아 글을 한 자도 쓰지 못하고 돌아오던 여행에도 그가 있었다. 아무 것도 자신이 없던 내게 따뜻하고 다정한 그가 나타나 모든 것이 괜찮아진 덕분일지 예쁜 것만 보면 그가 떠올랐다. 그래서 외롭지가 않았다. 무서움과 두려움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그 때문에 용기가 생길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쁜 것은 어차피 다 너인데 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와 떠난 후의 나는 분명히 다른 존재일테다. 여행 후에 여전히 같은 삶을 살아도 나는 이미 달라졌다고 믿는다.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것들이 나를 조금 더 멀리 뛰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여행이 좋았던 나빴던 상관없이 말이다. 설사 꿈처럼 기억이 아득할지라도.

다시 우물 안으로 돌아왔다고 끝맺은 그녀의 이야기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 혼자 상상을 한다. 그녀의 우물 안은 얼마나 더 넓어졌을까 하고.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내고, 위험하고 두려운 모든 상황을 버텨내고 절대로 답이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을 풀어나가며, 나는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일을 배웠다. - P64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은 나이‘가 아니라 ‘좀 더 잃을 게 많은 나이‘일 뿐이다. 나는 추억과 행복 같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얻는 대신, 돈과 직장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잃었다. 나는 그것이 괜찮다. 그래도 괜찮은 나이다. 더 잃어도 난 괜찮다. - P111

"세계일주를 할 거야! 돈이 다 떨어지면 돌아올 거고,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다 가볼 거야!"

이렇게 말한 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자 꿈은 현실이 되었다. 내 모든 걸 걸었더니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부터 나는 꿈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 P143

어떤 세상인지 모르는 곳보다 어떤 세상인지 잘 아는 곳이 더 두려웠다.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새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 예상 가능하고 그 예상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을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끔찍하고 무서웠다. - P155

내가 누군가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을 결정하는 주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지게 되자 나는 자유로워졌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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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간호사 - 좌충우돌 병원 일상 공감툰
류민지 지음 / 랄라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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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살면서 병원에 갔던 일들을 떠올려 봤다. 나는 사실 입원을 한 적도 없고 응급실에 간 적도 없으며 그 흔한(?) 깁스도 해보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편이었다. 눈이 나빠서 안과를 간다거나 감기에 자주 걸려 내과나 이빈후과를 가기는 했지만, 그것도 동네의 작은 병원을 순회하였기 때문에 내 기억 속의 '간호사'라는 직업은 안내데스크 직원과도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접수를 해주고 이름을 불러주고 주사를 놔주고 수납을 도와주는 간호사 언니들의 삶을 떠올리며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상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에 내게 있는 간호사에 대한 기억을 끌어올려보자면 숱하게 만들어진 의학 드라마 속 주인공 의사들을 서포트해주는 간호사정도일까. 그정도로 내 삶에 간호사란 비중이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별 기대없이 책을 펼쳐든 것도 사실이다. 웹툰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좀더 관심이 가기도 했고...

이 책은 간호사를 꿈꾸며 반복되는 실습과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진짜' 간호사가 되어 일을 시작한 간호사의 삶부터 7년동안 일을 하며 일어나는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내가 드라마 속에서 봤던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게 포장된 삶은 아니어도 쉴 틈없이 응급실로 밀려드는 환자들과 잠시 짬을 내어 배를 채우려다 호출에 달려가는 숨막히는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삶이 언제는 드라마같았나 쓴 웃음을 삼키며 읽기도 하고 다른 분야의 직업군이어도 매너없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건 똑같구나 공감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재미난 에피소드에는 꺄르르 웃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간호사라는 직업에 단단히 오해하고 있던 나는 반성했다.



중간중간 주석으로 병원에서 간호사와 의사가 쓰는 용어들이나 은어를 정리해두었는데, 의학 드라마를 열심히 본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드라마를 허투로 본 것은 아니구나 안심했다고 한다.....ㅋㅋㅋㅋㅋ










우리 삶이 드라마처럼 예쁘게 포장되지는 않아도 드라마틱한 일은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 힘듦을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짧은 말이나 마음이 담긴 물건만으로도 눈물이 핑글-



세상의 모든 간호사분들 화이팅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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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요 고양이 - 세상의 모든 고양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에세이
손명주 지음 / 하모니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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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동생이 학교 앞에서 사온 500원짜리 병아리 한 마리를 키운 적이 있다. 동생이랑 나는 그 작고 예쁜 병아리를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물을 갈아주고 사료를 주었다. 작은 생명체를 어쩌지 못해 집으로 지어준 박스 앞에 쪼그려 앉아 움직이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뛰어왔고 눈뜨기 무섭게 병아리 앞으로 모여앉았다. 그러나 학교 앞 병아리의 숙명인 듯 박스 안 병아리의 생명은 오래가지 못했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비실거리던 병아리는 우리의 손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어린 나이의 동생과 나는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오래 함께 하지 못한 서운함과 우리의 어루만짐이 해가 된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마음이 뒤섞여 많이 울었다. 동생의 손을 잡고 병아리를 데리고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면서도 울고 병아리가 우리를 떠나고도 몇날 며칠을 울었다. 겨우 일주일 함께 한 것으로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울었다. 내 삶에서 만난 첫 이별이었다.

남매가 며칠을 울어서인지 그 뒤로도 우리집은 철저하게 동물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10년을 함께 살았던 개구리를 빼고) 몇 년을 설득하다 그만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어느새인가 그런 삶을 받아들이게 됐다. 반려동물 키우는 지인들이 부러웠지만 그 부러움이 집으로 데려오는 마음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고양이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 에세이를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만났던 많은 동물들에 대하여 생각해봤다.

펫숍의 고양이나 강아지를 창문 밖에서 귀여워 하고, 가족과 산책을 나온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길냥이나 길멍멍이를 만나면 마구 말을 걸었다. 먹을 것을 건네거나 생수를 건네기도 했고 호의적인 아이들을 만나면 곁을 내어주며 온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 새침한 아이와는 거리를 두고 눈인사를 나눴고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도 놀라서 도망가는 아이를 황망히 바라본 날도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내가 키우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사라진 책임감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모두를 그저 예쁘게만 바라보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런 마음이 그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펫숍에서 팔리지 않던 고양이 마리와 춥고 배고픈 길고양이 똥키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만나는 고양이들의 이야기였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고양이. 예쁜 고양이만 추구하는 소비자.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고양이. 그들과 공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운이 좋게도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 따뜻함을 만났던 마리와 똥키는 행복했을테다. 모든 고양이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고양이들이 행복하기를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고양이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마리와 똥키의 이야기는 모두 경계심에서 애정으로 변하는데 그 과정이 애틋하여 마음이 찡했다. 상처받은 사람과 사람 사이도 회복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는 상처받은 동물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고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감히 상상이 안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조금 알 것도 같다.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방법이라던가,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는 일이라던가 하는 것 말이다.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가득 채워 놓고 낙나 사료랑 물그릇뿐이야. 사료가 떨어질 때쯤이면 돌아올까? 그럼 내가 다 먹어 치워 버릴까? 아! 근데 사료가 너무 많아. 물도 너무 많아. 기다리다 지친 내 심장이 저 물그릇보다 먼저 마를 것 같아. - P38

엄마는 나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짜증을 내. 그러다가 곧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무릎 위에서 졸고 있는 나를 쓰다듬지. 금방 그렇게 좋아할 거면서. 그렇게 우리는 티격태격 체온을 나누며 매일 행복해 하고 있어. - P42

엄마 아빠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대. 자신들의 다리를 베고 누운 내 털의 감촉이 너무 좋대.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있는 고양이의 나른함이 너무 좋대. 고양이와 함께 먹고 자고 노는 그 시간이 제일로 행복하대. - P84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버렸어. 아니, 그 사람들이 주는 사료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버렸어. 아니, 뒤뜰에 내리는 햇살의 따스함에 길들여져 버렸어. 아니, 아무도 나를 위협하지 않는 편안함에 길들여져 버렸어. - P101

어쩌면,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에게 안락함이란 길 위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건지도 몰라. - P127

날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뒤뜰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그리고 뒤뜰이 앞으로도 다른 길고양이들이 드나드는 곳이면 좋겠어. 사료 한 움큼, 물 한 그릇이 항상 놓여 있는 뒤뜰이면 좋겠어. 작은 따뜻함이 모이고 모여서 세상의 온기가 되는 거니까. - P150

혹, 마리 이야기가 펫숍에서 동물을 사는 행위가 정당하다는 것으로 전해 질까봐 두렵다. 마리는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교배되고 생산되었다. 또한 비윤리적인 환경에서 자랐으며, 그걸 산 나의 행위 역시 두말할 것 없이 비윤리적이었다. 나 때문에 그 펫숍의 주인은 수익을 올렸고, 그것은 비윤리적인 동물산업의 성장에 일조하는 행위다.

하지만 철장에 전시되어 있던 마리는 아파 보였고, 그건 끝내 판매되지 못할 거라는 뜻이었다. 펫숍은 고양이의 생산단가보다 비싼 치료비를 지출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그때 거기 있던 마리에게 필요한 건, 자기를 철장에 가둔 동물산업에 맞서는 한 사람의 신념이 아니었으니까. 마리에게 필요한 건, 자기를 향해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었으니까.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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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를 위한 출판백서 - 기획출판부터 독립출판까지, 내 책 출간의 모든 것
권준우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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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출판에도 유행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와 판매 실적에 따라 출판사마다 너도나도 비슷한 책들을 찍어낸다. 그러니 독자는 점점 더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 이집 저집 따져보고 어떤 책이 더 유익할지, 나에게 필요한 책은 무엇일지 고민해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독립 출판으로 인하여 등단을 해야만, 유명한 작가가 되어야만 책을 내야 하는 시대도 지났고, 출판사를 통해서만 책을 내야 하는 시대도 지났다. 그러니 요즘의 출판계의 유행은 당연히 글쓰기와 출판에 대한 것이겠다. 진짜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글쓰기, 출판 책들의 홍수에 허우적대다가 이내 빠져버리기 일쑤인 날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나의 글이 담겼다며 소개했던 책마저 글쓰기 책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나 같은 사람에게는 글쓰기, 출판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이내 질려서 도망쳤다. 어쩐지 유행에 뒤처지는 건 싫은데 유행에 따라가는 건 더더욱 싫은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랄까. 그런 마음을 극복하고 당당히 출판백서라고 쓰인 책을 집어 들게 한 이 책에서 나를 이끈 문장은 뒷면에 있다.

'내 원고는 왜 항상 거절당할까?'

답은 사실 간단하다. 원고가 별로이거나 원고가 별로이거나 원고가 별로이거나.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과연 어떤 식으로 풀어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하여 누군가 물으면 <글을 쓴다 → 교정한다 → 편집한다 → 인쇄한다> 정도로 대답하겠다. 그 안의 자세한 내용이야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고 덧붙이며. 이 책이 좋았던 것은 그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 부분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는 점이다. 어떤 글을 써야 좋을지,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기획출판, 자비출판, 셀프출판의 차이는 무엇인지, 인쇄 방식의 차이점 같은 것을 세세하게 적어두었다. 이 부분에서는 이런 책을 참고하면 더 좋다고 덧붙여 추천한 책 목록들도 도움이 된다. 그런 친절한 책이라 좋았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뽐내듯 자랑하며 적은 글이 아니라 쉽게 풀어서 알기 쉽게 적어내린 글이라 좋았다. 때론 정신 바싹 차리게 팩트를 날리기도 하고 위로와 공감을 주기도 했다.

작가가 글만 잘 쓰면 책이야 알아서 잘 팔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마침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본 덕분에 책 한 권을 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는지 알게 되었는데, 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편집과 디자인, 마케팅과 홍보가 판매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글로 읽으니 새삼 놀라웠다. 돈만 있으면 출판도, 홍보도 가능하다는 사실에 좋은 책이 아니어도 만들어지는 베스트셀러 가능하겠구나, 하는 사실에 조금 충격도 받았다.

그러니까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예전에 조금 유명한 출판사에서 곧 출간 예정인 유명한 인디 가수의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때 프린트된 원고를 먼저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글이 너무 별로여서 나를 포함한 서평을 부탁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책 출간을 고려해달라고 했었다.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이런 책이 나온다니! 하고 격분하면서 말렸는데 결국 원고는 책이 되어 판매를 시작했고 수정을 바랐던 부분이 전혀 전달되지 않은 냥 무시되어 출간한 사실에 다들 2차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당시에는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책도 출간할 수밖에 없었던 출판사가 가여워졌다.




시행착오도 없이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근데 그런 일이 가능한 곳이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 역시 묻고 싶다. 이 책은 시행착오 없이 책을 내는 방법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었던 저자가 독자에게 조금은 길을 안내해 주는 길잡이 책이 되어줘서 좋았다. 막연했던 책 출판에 대하여 방향성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서 좋은 책이었다.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부터 스스로 출판하는 방법까지 차근차근 단계별로 알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글은 왜 쓰는 것일까? 쓰고 싶으니까 쓰는 것이다. 치밀한 계획이나 거창한 목적이 없어도 좋다. 그저 쓰고 싶다는 열정 하나면 된다. 글을 쓰는 데 이유 같은 걸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쓰면 되는 것이다. - P17

책은 글의 집합체가 아니다. - P19

거시적인 글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미시적인 묘사는 일부의 정보에 정서를 담는 행위다. 거시적인 상황을 미시적으로 파고들 때 글은 생생해진다. - P36

셀프출판의 발전으로 인해 제대로 교정교열도 되지 않은 수준 낮은 글이 책으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한데, 자신의 양심을 걸고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어 파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P56

이 출판사는 내 원고에 관심이 없다.‘라는 팩트.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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