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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슬픔이여 안녕의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50, 마약 복용 혐의로 선 법정에서 사강은 그렇게 당당했다. 굳이 그의 화려한 이력이나 사생활을 들추지 않더라도, 그 말은 타당했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의 사유를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과연, 마약(복용)은 범죄인가. 마약이 술이나 담배보다 나빠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마약이 나쁜 것인가, 인간이 나쁜 것인가.

 

청년 논객이라고 불리는 박가분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를 들추면서 일베의 사상이라고 내세운 것이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이른바 혐오의 문화이다. 나와 다른, 혹은 비슷한 병맛들끼리 혐오를 통해 뭉친다. 타인에 대한 공격(혐오)를 통해 공동체 아닌 공동체를 이룬다. 그들끼리 재밌다. 이른바 까 대는재미다. 일베의 사상이라고 박가분이 정의한 것은 사강의 말을 변용했는데, 문제는 중요한 전제가 빠졌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박가분이 일베를 세계의 한 일부로 인정한 것에 충분히 동감하겠다. 일베가 이루고 있는 세계는 지금 무시할 수 없는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베의 사상이 일베를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옹호한다는 주장은 오버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일베는 생각하지 마!’라며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을 들고 나온 것치고는 어설프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일베의 사상에 대해 사상적 고찰을 했다지만, 책을 읽은 감상은 안 하느니보다 못하다! 일베에게 나름의 사상이 있고, 그것의 유래를 봐야 일베를 극복할 수 있다는 그의 취지는 생뚱맞다. 왜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일베에 대한 기본 태도와 연관 지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일베 사이트에 들어가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그들의 행태가 기사로 나올 때 읽기도 하지만, 일베를 극복하거나 정화해야 할 무엇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서 바라보고,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로 여긴다. 일베만 뚝 분리해서 떼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것 역시 세상을 인식하기 위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일베가 내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잡아뗄 생각도 없다. 직접적이 아니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일베(의 생각과 행동)가 내 삶의 어느 한 틈에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베가 쓰는 용어사전이나 일례를 모아놓은 것 같은 - 그것이 일베를 좀 더 잘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었다손 치더라도 - 글쓰기는 도통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저자의 의도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 불편함이 사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헛된 것이라고 본다. 일베의 사상론을 드러내기 위한 그의 글쓰기는 그렇게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미시마 유키오 등 일본 극우파의 것을 일베에 대입시키는데, 어울리지 않는다. 일베의 행동이 일관되게 극우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서다. 극우파가 분명한 목적을 위해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면, 일베는 명확한 목적보다 재미를 위해 움직인다. 일베의 무의식적인 사상을 재구성하고 기원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외국의 낯선 사상가를 비롯해 여러 사상적인 분석틀을 동원했다는데 그냥 끼워 맞춘 것 같다.

 

더불어 일베의 반복된 어떤 행동에 대해 사회적 논란과 처벌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상적 의지없이 이해할 수 없다는데, 글쎄올시다. 사상적 의지라기보다 그것을 재미로 여기는, 혹은 자신에게 가해질 피해를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사회적 논란과 처벌 따위를 생각하기에 그들은 지나치게 순정(?)하다. 되레 논란을 즐길지도 모른다. 노출증 환자가 아니라고도 말하지만, 일베의 많은 유저는 일정부분 관심병(!)’ 증세를 가진 듯도 하다.

 

차라리 사상이라는 접근보다 - 이 말에 거부감을 지닌 사람도 꽤 많은 듯한데 - ‘현상에 대한 분석이라고 썼다면 어떨까. 아쉬워서다. ‘사상이라는 타이틀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 때문이다. 일베가 구체적인 정치 프로그램이나 의제 없이 상대를 상처주고 비꼬는 방식을 지속하는 데 사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심지어 그것을 미학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과도하다. 일베가 2002년 시작된 촛불의 사상을 계승한다며, ‘촛불을 들었던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썼다는데, 글쎄,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자의 의도가 일베라는 현상을 깊이 파고들어 우리의 성찰과 사유를 북돋기 위함, 혹은 행동을 촉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글쓰기의 방법이나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예가 효과적인 것 같진 않다. 책을 통해 스스로 계몽주의자이길 자처하는, 아니면 그것을 갈망하는 무의식을 엿본다. 그가 말하는 진보좌파도 모호하다. 한국에서는 진보도 좌파도, 우파도 보수 모두 애매모호함을 품은 언어이다. 본디의 뜻과 다르게 활용된다. 좋게 말하면 한국적인 방식으로 소화되고 있다. 그러니, 부디 그 말부터 정의하고 전개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았을까.

 

나는 일베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정한다. 현실과 접점을 찾기도 한다지만, 일베는 여전히 가상의 공동체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나 박가분이 일베를 과대 포장한다는 인상 또한 받는다. 그는 현실의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자율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좀 더 근본적인 사상에서 우파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그것도 스스로 모두 평등한 병맛이 됨으로써. 박가분의 말을 풀자면, 일베의 사상은 아나키즘에 기인한다는 얘기이다. 모두가 우스운 인간임에 걸맞게 행동하는데서 재미를 찾는 일베 유저들에게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자율적인 공동체를 향한 갈망이 있을까. 행여 무의식에서라도 말이다.

 

, 저자는 일베의 사상을 끄집어내기 위해 너무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닐까. 일베는 새롭지도 않고, 우파다운 말과 행동도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은 그런 이들의 요란스러운 현상에 편승한 기획은 아닐까, 의심도 들게 만든다. 박가분의 재능을 아쉬운 곳에 소진한 것 같다는 얘기다. 물론 그는 다음에 더 좋은 글과 책을 쓸 것이다. 그것, 믿어 의심치 않는다. 늘 좋은 책과 콘텐츠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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