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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다. 詩月.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詩적인 책 읽기다. 

쉽게 흔들리고 짧기만 한 이 계절, 그냥 흘려보내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삶을 詩로 만들 수 있는 방법, 이런 책을 읽으면 된다! 


 엄기호다. 망가진 학교에 대한 한탄 한 자락 더 보태려는 게 아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 학교 현장을 두려워해야 하는 교사의 존재라니, 우리는 왜 이런 지경에까지 도달했을까. 

우선 그들의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절망과 망함, 명확한 현실 인식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거짓 희망이나 미화가 없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러니 교육에 대한 가치와 가능성을 믿고 선생이 된 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 그러면서 절망의 끝을 확인하는 것. 엄기호는 교사들이 '타자'를 만나라고 권하는데, 그것, 참 문학적이다. 시적이다. 시인 프르날두 페소아는 말하지 않았던가. 

"산다는 것은 타인이 되는 일이다."      



더 좋은 삶, 더 좋은 세계란 무엇일까.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의당 만나야 할 질문이다. 그리고 답은 없다. 스스로 내야하는 문제지만, 다른 누군가의 통찰과 지성이 필요하다.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우르바시 바이드, 피터 퀑, 위노나 라듀크, 벨 훅스, 바버라 에런라이크, 매닝 매러블, 마이클 앨버트.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는,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지금-여기의 혁명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이 세계는 절망의 구덩이지만, 절망에서도 삶은 지속돼야 한다.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詩적 정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건축이 그 최강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이자 자본의 최첨단이 건축이다.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의 긴장과 자본과 예술 사이의 대립이 건축을 사유할 수밖에 없는 오브제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현대 건축의 3대 거장 가운데 라이트와 로에 두 사람을 다룬 책이라니 어찌 동하지 않을쏜가.  

잘 된 건축은 詩라고 감히 말하겠다. 현대 건축의 두 거장을 읽는 일은 한 편의 詩를 만나는 일이다. 詩월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 또 혁명이다. 

어쩔 수 없다. 詩월은 그렇다. 으스러진 혁명의 아이콘이 유령처럼 배회한다. 10월 9일의 체 게바라. 올해 46주기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왜 등장하게 됐는지를 사유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 혁명과 1948년의 혁명,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등을 통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당연히 혁명 이후의 삶과 세계가 장밋빛이었던 것은 아니다. 혁명의 쟁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명 이후다. 프랑스 혁명과 볼셰비키 혁명은 그것을 잘 대변해준다. 그러니 쓰러진 혁명 체 게바라를 그리는 일은 詩적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끊임없이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던 20세기 가장 완벽한 사람, 체 게바라를 위해 쿠바 커피를 내리고 싶다. 체 게바라는 그 자체로 詩였다. 



'그린'이라는 말에 섬뜩해할 필요는 없겠다. 그놈의 녹색성장 때문이다. 자연과 지구를 초토화하는 일에 '녹색'이라는 레떼르를 붙였던 전 정권의 개념 없음이 불러온 재앙 때문이다. 

그린 어바니즘, 생소한 타이틀인데, 도시와 환경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민하기 위한 개념이란다. 그것은 삶, 그것도 지속가능한 삶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도시의 역할과 책임을 다룬다. 도시와 시민은 서로 삼투압한다. 장소, 공동체, 생활양식 등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사유이자 실천이다. 궁금하다. 그린 어바니즘을 통해 우리는 도시에서의 삶을 詩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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