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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흘러간 여름이는 지나간 연인일 뿐.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으로. 새로운 연인 앞에서 책을 펴야 하는 것, 새 계절에 대한 예의다. 만나고 싶다.
1.《영년》
박흥용이다. 그것도 '국가'라는 화두를 들고 왔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지금-여기에는 국가가 없다. 아무리 국가가 지질할손, 국가기관을 움직여 댓글 따위로 공작을 하진 않는다. 국가의 탈을 쓴 기업이, 그것도 사회는 염두에 두지 않는 이익집단이 권력을 쥐고 흔들 뿐이다. '국가'라는 사회적 계약이 지켜지지 않는 시대, 우리는 지금 다시 국가를 사유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회적 계약을 재고해야 한다.《내 파란 세이버》로 처음 만났던 박흥용, 믿고 보는 이름이다.
2.《먹거리와 농업의 사회학》
먹거리를 맛과 먹는 문제로만 여기는 건, 가축이나 하는 짓이다. 먹거리에 대한 사유야말로 인간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유다. 먹어야 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대농식품체제는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떨어뜨려놨다. 그래야, 지배하기 쉬우니까. 아니나다를까, 우리는 풍부해진 먹거리 앞에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입과 혀를 속여서라도) 맛있으면 그만이고, (사진찍기에) 예쁘고 그럴듯하면 그만이었다. 그 결과, 식사 대신 사료를 먹게 됐다. 제대로 먹기 위해, 사료가 아닌 식사를 하기 위해, 먹거리의 사회학을 길어 올릴 때다.
3.《안나와디의 아이들》
어찌 이 책을 외면할 수 있을까. 절대적 가난(빈곤)은 지금 지구가 처한 가장 시급하고 명백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지만, 아무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가장 큰 문제다. 도시빈곤 르포트타주의 걸작이라는 이 책은 그것을 가슴 아프게 상기시킬 것이다. '팩트'라는 씨줄과 '문학적 감성'이라는 날줄로 엮은 이 책에서 가난과 불평등이 그들이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닌 세계화와 기업의 욕심으로 빚어낸 구조적 결과물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뭄바이라는 경제적으로 떠오르는 신흥도시는 그것을 함축적이고 압축하여 드러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바뀔 수 있을까.
4.《건축만담》
건축은 종합예술이다. 사람의 일상과 생활을 지배하는 중요한 오브제다. 사람은 건축을 만드나, 건축이 사람을 지배한다. 하지만 한국 대부분의 대도시에 건축이 없다. 돈이 되겠다싶어 쌓아올린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다. 미학이나 미적 감각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흉포함 그 자체다. 그것은 곧 우리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니 건축을 통해 삶을 성찰하거나 사유할 수가 없다. 다른 생각과 방식이 끼어들 틈이 없다. 《건축만담》이 필요한 이유이리라.
5.《불륜예찬》
제목이 먹고 들어간다. 옳고 그르고를 차치하자. 왜 우리는 불륜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그렇게 배워왔고 길들여졌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불륜이 왜 나빠? 섹스는 감추고 숨기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알려주고선, 슬쩍 뒷북 치는 게 더 나쁜 거 아냐? 차라리 뻔뻔하게 불륜예찬이라고 선언하는 책은 어떤 내용을 품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