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0일,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 랭보 한 잔

   
 

친구들이여, 이것은 하루 중 가장 유쾌하면서도 위험한 시간이다. 새날이 밝고 카페인이 퍼지면서 이 스파이스 걸(Spice Girl)에게는 스파이스, 즉 흥취를 돋울 시간이 아닌가. 아, 오늘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성취할 것인가! - 샤나 맥린 무어 

 
   

콩콩콩콩...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콩 볶기, 로스팅을 했다. 흠, 스멜스~ 귯! 사실, 이 콩. 그저께 정도엔 볶았어야 했다. 급한 다른 콩에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미안하다, 잔야. 탄자니아AA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자연에 맞춰 빚은 커피. 

아로마와 플레이버, 최상이다. 특별히 공을 들였으니까! 맞다. 평소 다루지 않는 커피다.  

왜? 무슨 일이야, 으응? 

소녀들이 오는 날이거든. 소녀(들)밴드. 3인조 밴드다. 나는 그녀들을 '소녀'라고 부른다. 이 소녀들, 참 좋아한다. 꺄르르르르르, 넘어간다. 덕분에 나도 웃는다. 서른 안팎의 그녀들에게 소녀라는 호칭은 마법의 주문이다.  

"어이, 소녀들~"하고 부를라치면, 그들은 어느덧 입가부터 소녀가 돼 있다. 소녀미소를 지으며, "응~ 변태노총각 아자씨~"라고 응답한다. 소녀들은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일이 절대 없다.  

이유? 간단하다. 아저씨는 원빈(급) 만의 것이라나. 흥, 췟, 핏. 원빈이 갑자기 대한민국 아저씨 기준을 높여놔서, 아무에게나 아저씨라고 부를 수 없다는 어이 없는 이유다. 이, FTA 같은 년들, 하고 버럭하고 싶어도, 너무 심한 욕이라 참는다. ㅋ  

최수영 작가는 그랬다. "적어도 서른 아홉은, 아직은 소녀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19 29 39》, p.323) 살다보니,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슬픈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슬프지 않다. 더 슬픈 건, 작년과 다른 내가 되지 못하는 것. 어제와 다른 내가 되지 못하는 것. 

그러니까, 이 소녀들은 '좀 아는 여자'들이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는지, 어떤 것에 감동하고 추하다고 생각하는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슬픈 것임을 안다. 스스로 힘을 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마음이 삭지 않는 이 소녀들은, 그래서 소녀임이 분명하다.  

재밌는 건, 이들은 우쿨렐레로 락 한다고 '깝죽댄다'. 아, 깝죽댄다는 표현이 거슬려도 어쩔 수 없다. 이 밴드 노래 제목 중의 하나다. '우리는 깝죽대는 깝죽이'. 지들 스스로 깝죽댄다고 하니까, 나도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ㅎ 

"아자씨, 우리 24일에 여기서 공연해도 돼? 많이 시끄럽게 안 할게."  

"하하, 시끄럽게 안 하는 게 말이 돼? 근데 왜,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11월24일. YB의 새 미니앨범이 나오는 날이란다. 흰수염고래. 소녀들에게 YB는 하늘이다. 좋아 죽는다. <나는 가수다>에서 YB가 명예졸업 직전에 탈락하자, 소녀들은 하늘이 무너진양 슬퍼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에이, 설마~) MB의 음모론까지 몰고 갔다. YB와 MB의 한끗차이가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라면서.  

그녀들은 이른바 '프로', 직업적인 밴드는 아니다. 일종의 직장인 밴드다. 나는 그들을 잉여밴드라고 부른다. 물론 한 명은 직업적인 뮤지션의 꿈을 계속 키워가고 있지만. 그들은 그냥 논다. 헬렐레대면서 즐겁다. 음악적인 평가는 별개로, 듣고 있자면 어깨랑 발이 들썩들썩한다. 그러니 소녀지! 

커피는 그녀들에게 검은 혈액이다. 자신들의 음악적 힘은 커피에서 나온다나. 특히 카페인. 미친년들 놀고 있네, 하고 (농담) 던지면 맞팔이다. 지롤, 변태아자씨도 그러면서.  

우리는 그렇게 노는 사이다. ^^ 그런 오늘, 소녀들을 위해 콩콩콩콩 볶는 건, 나의 화답이다. 뭐, 같이 놀자고, 좀 끼워달라고 하는 거지.  

그런데 왜 탄자니아를 볶았냐고? 

다 이유가 있다규! 탄자니아.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하얀 산'이라는 뜻의 킬리만자로를 품은 곳. 마사이어로 '끝없는 평원'을 의미하는 세렝게티. 탄자니아하면 떠오르는 그 풍경에 섞인 깔끔하고 부드러운 신맛과 풍부한 바디감. 너트향이 스며있고, 밸런스도 좋은 탄자니아 커피. 탄자니아AA. 

  

아는 사람은 안다.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본명 파로크 불사라 Farrokh Bulsara). 그룹 퀸(Queen)의 리드보컬. 그의 고향이 탄자니아다. 프레디는 탄자니아의 유명한 휴양지, 잔지바르 섬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총독부 소속 공무원으로 종교 때문에 잔지바르 섬으로 이사를 왔고, 1946년 프레디는 태어났다. 

프레디는 일곱살까지 이곳에 살았다. 인도로 유학을 갔던 그는, 1964년 가족 모두 영국으로 다시 갔고, 그는 가수가 됐다.  

소녀들은 어쩌다 한 번씩 퀸을 연주했다. 특히, We Are The Champions나 We Will Rock You 혹은 I Was Born To Love You.   

나름 리드보컬 네멋 왈. "아자씨, 퀸 진짜 쩔지? 프레디 머큐리처럼 섹시한 남자가 그렇게 일찍 죽은 건 너무 억울해. 하늘이 자기 옆에서 노래 듣자고 그렇게 일찍 데려간 걸거야. 귀는 밝아가지고."  

실제로 그렇지 않나! 4옥타브를 오가는 엄청난 가창력. 비브리토 없는 깔끔한 보이스. 특히 허스키 보이스로 4옥타브를 넘나드는 환상. 나의 화답은 이랬다.  

"하느님이 비틀즈에 약간 질려서 그렇게 일찍 데리고 간 거 아닐까? 아니면 하느님이 남자라면, 동성애자거나. 욕심쟁이, 쯧."  

 

프레디는 1991년 11월24일, 떠났다. AIDS로 인한 기관지 폐렴이었다. 45. 요절이었다. 그는 죽기 전날에야 AIDS임을 시인했다.  

뭐, 상관없다. 그것이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 최소한 내겐 그랬고, 소녀들에게도 그랬다. 죽기 전까지 그는 노래했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기억할 뿐이다.  

"아자씨, 프레디가 지금 살아있다면, 믹 재거보다 훨씬 더 섹시할텐데, 그치? 웃통 벗어던지고 그 허스키한 목소리로 살살 우릴 구슬릴텐데... 한국에도 한 번쯤 왔을 거고. 아까워!" 

"그래, 우리, 하루 날 잡아서 죽도록 퀸만 부르는 거야, 콜?"  

"콜" "나도 콜 쓰리~" 

나는 소녀들의 그말을 기억한다. 11월24일, 프레디 머큐리의 20주기. 그들이 레파토리를 준비해 올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는 나의 레파토리를 준비할 뿐이다. 탄자니아AA를 볶은 이유다. 

24일 하루만큼은 그래서, 밤9시의 커피에 다른 메뉴는 없다.  

오로지, 하쿠나 마타타.(설마... 무슨 뜻인지는 알지? <라이온 킹>에서 미어캣 티몬의 삶의 신조잖아!) 잔지바르 사람들은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흥얼거리는 것이 일상이란다.    

좆같은 한-미 FTA 체결로 꿀꿀하고 슬프고 분노가 차오르는 시절. 그래도 하쿠나 마타타! 외치시라. 잘 볶은 탄자니아AA가 대령한다. 소녀들의 퀸 메들리를 들으면서 하쿠나 마타타. 온통 하쿠나 마타타로 11월24일을 채우는 밤이다.

젠장, 하지만 한국(의 기득권)은 어쩔 수 없이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다. 

대다수 인민의 아픔과 고통, 슬픔에 면역결핍인. 혹은 한나라당 면역결핍 바이러스 (HIV, Hannara Immunodeficiency Virus)의 창궐이다. 이 바이러스에 양성반응을 보이면 정치적 AIDS(후천적 진실성 결핍증, Acquired Integrity Deficiency Syndrome)가 나타나거나, 지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똥오줌 못 가리는 정체성 결핍 증후군(AIDS: Acquired Identity Deficiency Syndrome)을 드러낸다. 

12월1일 '세계 AIDS의 날'을 앞두고, AIDS에 대한 편견은 줄이되, 또한 위로 받아야 할 99%의 인민들을 생각하며, 11월24일의 커피는 하쿠나 마타타. 소녀밴드도 함께. 이 자리에 못 오는 당신도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과 함께.   

 


프레디의 고향, 잔지바르의 바닷가엔 프레디 머큐리 카페가 있다고 한다. 푸르른 바다를 향해 탁 트인 카펜데, 그곳에서 보면, 푸른 바닷가와 이글거리는 태양이 작렬한다네. 그래서 저것들이야말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프레디 머큐리를 키운 것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단다. 

언젠가 그곳을 밟을 생각을 하며, 밤9시의 커피는 11월24일 탄자니아로, 고고씽! 

그러고 보니, 이 변태노총각 아자씨, 소녀밴드에게 신청곡 하나! (참고로 이 소녀밴드의 이름은 '깔맞춤 싱크로율'이다. ㅋ) 지금은 당최 찾아볼 수 없는 고시대 유물이지만, 고딩 시절, 여자로부터 처음 받은 카세트 녹음테이프. 그녀가 건네준 테이프에 녹음된 첫곡, 'Love Of My Life'. 내가 퀸을 만난 첫 번째 순간이었다. 

깔맞춤 싱크로율의 레파토리에 당연히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신청하련다. 하쿠나 마타나!  

인생을 채워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완전해질 수도, 완벽해질 수도 없지만, 사랑. 그것이 인생을 견디게 한다.  

안녕, 불세출의 프레디 씨. 탄자니아 커피는 참 고마워요. 당신을 만든 것에 이 커피도 있겠군요. ^^ 
   

   
 

나는 AIDS다. AIDS는 결코 나을수없는 불치의 병이기에
나의 음악과 나의 영혼이 묻혀 함께 이 세상 사라지기 전에
이 사실을 오늘에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팬들과 멤버들을 속여 정말 미안하다.

 끝없이 사랑과 죽음을 노래하고 싶었지만 나의 생은 유한한거 같다.
  내가 태어난 고향 잔지바르에서 지금 살고있는 런던의 생활까지
나는 나혼자의 생각만으로 살고 있었다 


 
   

늘 이기적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때문에 언제나 외로웠었다.
  나를 다른 백인들과 차별하는 영국인도 끝없이 나를 깎아 내리는 평론가들도 늘 지겨웠다.

이처럼 늘 나에겐 함께 해줄 이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과 존 그리고 테일러를 만난 것은
정말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만남이였다.

그리고 내가 검은 문을 열고 무대 밖으로 나가면 팬들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줬다
나는 무대에서는 늘 외롭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나의 음악보다도 나의 팬들을 사랑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소원이 있다면 팬들은 제발 나의 마지막 죽어가는 모습이 아닌
나의 음악에 대한열정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 노래하고 싶다.

- 프레디 머큐리의 유언 중 -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밤9시의 커피]사랑, AIDS도 막을 수 없는 그 무엇!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1-12-04 00:04 
          내 가슴과 당신의 가슴이 서로를 단단히 안고 있어요. 지금은 그 둘을 떼어놓을 수 없지요. 나의노래, 당신의 노래. 내가 가진 모든 빛과 그림자를 동원하여 나의뿌리가 깊이 들어가 당신을 발견합니다. 나의 꽃이 세상의 빛을 볼 날을 기다리는 그곳에서-이사벨 베어먼 버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