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3월 29일... 서울 지역 대학생들이 모여 등록금인상 반대 시위를 했던 그날
연세대 새내기 한 명이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전경에 맞아죽었더랬다.
노수석... 그의 이름 석 자와 3월 29일을 평생 기억하게 된 게 바로 오늘이다.
그날 나 역시 을지로 어느 골목에서 전경에게 두들겨 맞으며 이러다 죽겠다 생각했고,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동국대까지 도망친 뒤 '살았다'도 아니고 '안 죽었다'며 안도했다.
그러다 들은 그의 부고...

1991년 4월 26일에는 명지대 새내기가 등록금인상 반대 시위를 하다 맞아죽었다.
그의 이름은 강경대였고,
난 나와 같은 새내기가 경찰에 의해 맞아죽을 수 있는 나라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게
못 견디게 무섭고 견딜 수 없어서 처음으로 '데모'란 걸 나갔고,
그게 바로 연세대에서 열린 강경대 열사의 장례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세대 새내기가 맞아죽은 거다.
그때보다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91년에는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시위를 했다지만
96년에는 평화시위를 강조하기 위해 온몸에 쇠사슬을 묶은 맨몸결사대까지 세웠는데
그런데도 새내기가, 이제 겨우 스무살짜리가 또 경찰에 맞아죽은 거다.

그 날의 절망 이후 난 과연 앞으로 몇 발자국이나 내딛었을까.
지금도 한진중공업 고공크레인에는 김진숙씨가 있을텐데,
정대협 할머니들은 1000번째 수요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나는 지금 어디에 서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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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괜찮다고 괜찮다고
    from 제발 제발 2011-03-30 13:32 
    저도.. 3학년 5월에 처음으로 '데모'에 참여했어요.1991년 4월 26일,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7층 설계실에서 데모 구경하다가 급하게 사람들이 들것에 사람을 싣고 건물로 들어오는걸 봤어요. 들것에 실린 사람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구요. 머리를 다쳤나보네 그러고 있는데 얼마 안있어 다시 그 사람을 엠뷸란스에 싣고 나가는걸 봤죠. 오늘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 그러면서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는데, 버스가 연대앞을 지날때쯤 라디오 뉴스가 나오는
 
 
무해한모리군 2011-03-2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버님이 추모제에 오셔서 노수석 열사 이름으로 제정된 장학금 증서를 수여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친등록금의 나라의 저자 중 하나인 이수연 선배가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던 것이 그날 때문이었다고 말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냥 기사하나 가져와 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42980&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조선인 2011-03-2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수연이가 나온 기사는 봤어요. 정말 슬픈 나라이지요.

토토랑 2011-03-30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큰아이 유치원 숙제 날짜를 적다가.. 오늘이 3월 29일 인걸 알았지요..
그때 동국대에서 저두 부고를 들었답니다..
난중에 여름 방학중에.. 선배의 100제를 가게 되었지요.
한열선배네 집에도 가보고,
그날 밤에 수석선배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어머니가 차마 치우지 못해 그대로 책상이며 책이,사진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 방에서 둘이 잤답니다..
어느해인가는 추모제에 어머니 마음 아파서 안오시기도 하고 그랬었지요.
저도 참.. 지금 어디에 서있는건지..

조선인 2011-03-3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토랑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름은 이다지도 많은데, 그 어느 해인가도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