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핵심 측근이었던 김병준이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되자 (당연한 반응이지만) 그의 이력이 주된 관심이 됐다. 사실 지난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이 위기에 처해 김종인의 건너편 이력을 이용했듯이 자유한국당도 김병준의 그런 이력을 최대한 이용하고 싶을 것이다. 복마전 같은 이런 정치판 속에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김병준은 다음과 같은 친절한 발언([문답]김병준, 친노향해 노무현정신 왜곡말라여기도, 저기도 대한민국, 인터넷 머니투데이, 2018717)을 해줌으로써 그에 대한 이슈를 최대한 활용했다.

 

Q. 문재인대통령과 참여정부에서 같이 일하셨는데 지금 어찌 보면 대척점에 서게 됐다
A. 대척이라고 보지 말고 서로 좋은 경쟁관계라고 봐야한다.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Q. 일부 친노인사들이 노무현 대통령 입에 올리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A. 그건 노무현 정신 왜곡하는 거다. 노무현 정신은 여기도 대한민국 저기도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우선 '노무현 정신'이 뭘까? ‘지역주의 양비론 정신이다. 노무현은 우리 현대 정치사를 지배한 지역모순을 영남의 패권주의와 호남의 반영패투쟁의 관점에서 파악한 것이 아니라, 당시까지 한나라당을 찍어왔던 영남이나, 새천년민주당을 찍어온 호남이나 모두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선동에 잘못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래서 둘 다 잘못했다는 이 지역주의 양비론’으로 새천년민주당의 법통을 끊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영남에 지지를 호소했지만 거의 무시당했다.

 

그럼 노무현은 한나라당에 대한 정통성정당성은 인정했을까? 인정했다. '지역주의 양비론'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순간 한나라당을 부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호남이 그 특별한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개헌을 목적으로 하는 대연정을 위해 한나라당을 인정하자고 호소까지 했다. 다음이 그 주요 발언이다.

  

노무현은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한나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하자”(노무현, 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안: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프레시안, 2005728)고 주장했고, “국민들이 약 30% 가까운 지지를 보내고 있는 한나라당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이고 정책조율하고 합의하고 할 수 있는 파트너”(노대통령 권력 통째로 내놓는 것도 검토”(종합), 연합뉴스, 2005825)라고 말했으며, 말년엔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대산맥이 계속 유지돼 가야 한다”(노대통령 선거에 걸림돌 된다면 당 비판 감당, 연합뉴스, 2006827)고까지 주장했다.

 

이것이 김병준이 노무현 정신은 여기도 대한민국 저기도 대한민국이라고 말한 근거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노무현이 아무리 지역주의 양비론 정신으로 무장했다곤 하지만 김병준처럼 자유한국당으로 입당 혹은 합당을 기도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태는 오히려 민주정의당과 3당합당을 감행한 김영삼 정신에 더 가깝다.

 

그런데 노무현 정신김영삼 정신은 얼핏 큰 차이를 보임에도 핵심적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영남패권주의다. 2002, 노무현은 경선 승리 후 김영삼을 찾아가 그에게서 받은 시계를 보여주며 좋게 해석하면 3당합당 이전의 야당을 복원(신민주대연합)(-YS ‘80분 밀담내용 촉각, 인터넷 동아일보, 2002430)하려 했는데, 노무현의 이런 퇴행적 역사관은 자신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며 후단협 등장의 계기가 됐을 뿐이다. 오히려 김영삼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노무현이 제안한 부산시장 후보천거를 거절함으로써 영남패권주의적 역사의 퇴행을 거기서 끝냈다.

 

결국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주된 정치적 대립의 한 축은 뭔가? ‘노무현 정신’, 즉 지역주의 양비론 정신이고, 한나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인정하자는 정신이고,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배신했던 정신이며, 김병준이 아이러니하게 활용하고 있는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투항 정신이다.

 

호남은 왜 비난받()는가? 이런 노무현 정신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신과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호남 정신은 현대 정치사를 지역주의 양비론이 아닌 영남패권주의와 그 저항으로 봐야 한다는 정신이고, 광주학살을 감행한 전두환의 영남파시즘을 수행한 민주정의당(과 그 계승 정당)의 정당성정통성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절대 표를 줄 수 없다는 정신이고, 노무현의 열린우리당이 잘못됐다는 문재인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정신이고, 지금도 반영패투쟁을 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호남지역주의자들이라고 비난을 받는 정신이다.

 

진실은 뜻하지 않은 시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도 얼마든지 밝혀진다. 김병준이 자신의 권력욕을 합리화하기 위해 '노무현 정신'을 들먹임으로써 노무현을 신화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진실을 덮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줬다. 자유한국당이 원하는 해결책이 바로 노무현 정신’=‘양대산맥 정신으로 함께 가자는 것인지 모른다. 가히 노무현 정신의 역습이라 할 만하다.

 

매우 한탄스럽지만, 앞으로도 대한민국 정치는 영남패권주의 정신,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한 노무현의 지역주의 양비론 정신, 그리고 호남의 반영패 정신의 3각 투쟁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지역투쟁은 계급투쟁을 무력하게 할 만큼 강력하다. 심지어 허위의식 속에서 진실을 위장하고 싶은 드루킹족들의 준동과도 싸워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역사의 진실과 싸워서 승리한 영원한 권력은 없다!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 2018. 07. 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