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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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않은 채 건설되었다. 청산 못한 정도가 아니라 친일파를 척결하려던 반민특위가 오히려 친일경찰의 공격을 받아 해산당했고, 친일잔재 청산을 부르짖던 소장파 의원들은 남로당 프락치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했다. 모두 1949년 6월의 뜨거운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p.19쪽

이식된 근대하를 거치는 과정에서 적어도 형식적으로 상당한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들은 우리 민중이 정당한 투쟁을 거쳐 쟁취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48년부터 시행된 보통선거제도이다. 서구에서 보통선거권의 역사는 그야말로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여성참정권의 경우 이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을 18세기 말에 처음 시작한 프랑스의 메리쿠르는 '미친년'소리를 듣다가 정말로 미쳐버렸고,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고 말하다가 의정단상에 오르기 전에 단두대에 올라야 했다. 여성참정권이 프랑스에서 1946년에야 보장된 것을 본다면 우리의 남녀평등 보통선거가 1948년에 실시된 것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알 수 있다. 1952년에 실시되었던 지방자치제도도 이승만 정권이 국회를 약화시키고 지방 토호들에게 족보에 기록할 벼슬자리를 주어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실시한 것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p.22쪽

임시정부는 독립운동 진영의 폭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가장 오른쪽에 자리잡은 보수적인 세력이었다. 그런 임시정부이지만,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이나 헌법은 국가보안법이 지배해온 대한민국에서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임시정부는 토지혁명을 통해 '문란한 사유제도' 대신 토지국유화를 실현하고, 대생산기관 역시 국유로 한다는 것을 '건국강령'을 통해 천명하였으며, 임시정부의 헌법인 '임시헌장'(1944)은 파업의 자유를 '인민'의 자유와 권리의 하나로 보장하였다. 토지국유화, 중요 산업과 대생산기관의 국유화, 파업의 자유 등의 정책은 1980년대 급진 좌경 용공으로 탄압받았던 재야단체들이나 1950년대의 진보당에서 오늘날의 민주노동당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 이후 이남에 출현한 어떤 진보정당의 정강정책보다 급진적인 것이었다. -p.41-42쪽

임시정부는 중국땅에서 거의 전적으로 중국 정부의 재정지원 아래 광복군을 조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군대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중국 쪽에 넘어간 것을 치욕으로 알았으며, 끈질긴 노력의 결과 마침내 이를 되찾았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객군'인 미군이 안방을 차지한 채 새로운 천 년을 맞았다. 1980년대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문제가 집중적인 성토의 대상이 될 때까지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으로부터 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회수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인 바가 없다. 반미감정이 고조되자 미국은 마지못해 한국군에 대한 평시작전지휘권을 한국 정부에 되돌려주었지만, 실제로 군대의 작전이 실행되는 시기인 전시의 작전지휘권은 여전히 '객군'인 미군이 거머쥐고 있다.-p.45쪽

다른 인종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우리는 모든 외국인에 대해서 배타적이고 적대적이지는 않다. 미국인 등 백인종에 대해서 우리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반면, 동남아나 아프리카 출신들, 그리고 같은 황인종인 중국인에 대해서는 못살고 더럽고 게으르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이런 편견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민족에게 보인 편견의 재판인 동시에 인종 간에 위계질서를 매기려 한 일제의 인종관의 잔재이기도 하다.-p.65쪽

우리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완화하는 운동 과정에서 해외의 벗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이제 우리는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우리가 든 촛불이 효순이와 미선이의 넋만을 비추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에도, 아프가니스탄에도 수많은 효순이와 미선이가 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민족자주가, 우리가 되찾고야 말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어찌 한반도의 남녘에만 국한될 것인가? 미국의 오만은 국경이 없다. 그래서 우리의 분노도 국경이 없다. 미국의 오만에 상처받은 사람들, 우리는 모두 하나다. 촛불의 힘으로, 아무도 감히 경험해보지 못한 평화의 힘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고 있다.-p.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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