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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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공부잘한다는 칭찬을 꽤 듣고 자랐다. 공부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었고 잘 하는 것은 더더욱 없어서, 예체능시간에는 맨뒤로 처지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공부를 잘 한다는 이유로 미움은 덜 받으며 자랐던 것 같다.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하지만 나는 내가 공부외의 지점에서는 굉장히 모자란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그건 나이가 들어 대학을 가고, 직장에 들어가고 가정을 꾸린 후에 더욱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공부 잘한다고 들었던 칭찬, 공부를 잘하니 공부외에 다른 건 못해도 된다는 어른들의 보호가 나라는 사람에게 결코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음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물론 그나마도 공부라는 걸 잘했던 덕에 먹고사는 지금은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런데 내가 자라던 때와 세상이 꽤나 바뀌었다는 증거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현재에도 공부가 여전히 다른 많은 것들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 내 주변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한 열혈 부모들의 노력은 점점 더해지면 더했지 덜해지지는 않고 있다. 유치원때부터 학원을 대여섯개씩 보내고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가 학원숙제를 하느라 하루 30분도 자유롭게 놀 시간이 없다는데, 애들이 참 안됐지만 미래를 위해선 어쩔 수 없잖아라고 말하는 주변의 많은 부모들을 보면 이 사회가 정말 단단히 미쳐 돌아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안할수가 없다.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집어들게 된 것이 이 책이다. 사회학자 엄기호 선생과 정신과 의사인 하지현 선생의 대담을 기록한 이 책은 공부로 중독된 이 사회의 문제점, 그 원인을 사회학과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대담을 나누어 보고 그 해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있다.

 

20대 전에는 대학가는데 모든 것을 올인(희생)하고, 그 다음엔 고시공부나 학위경쟁을 벌이느라 공부를 하면서 진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유예하는 청년들(과 그 부모들)이 너무나 많은 이 세상. 객관적으로 봤을때 전혀 비합리적인 이 공부중독 사회에서 깨어나 합리적인 삶을 살자는게 요지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헬조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조장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그래서 나도 중간에 삶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불안. 그 불안이 제거되지 않는 한 이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할 것 같다. 뭘하든, 남들보다 잘살고 잘나지는 못해도, 굶어죽지는 않는 사회시스템만 있다면 99%의 보통 사람들(누구는 개돼지라 부르더라)이 모두 똑같은 걱정과 불안을 안고 한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그중 90% 이상은 가봐야 또 다른 헬로 연결된 통로로 갈 뿐인데도.) 헬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내 아이들이 20대가 되기 전에 이런 헬에서 빠져나오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많길 바라며, 이런 세상이 너무 싫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내 자식은 공부를 시키고 싶은 많은 착하고 평범한(?) 부모들에게 이책을 추천해본다.

 

특히 이 말을.

"내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나의 건강함, 내가 독립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지, 내 자식의 좋은 학력과 좋은 직업은 아닙니다."

 

공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있고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게 있는데,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영역들이 점점 좁아지고 있으니 진짜 삶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삶이라는 것은 어차피 잡종인 것이고 누군가와의 마주침인데 그 마주침을 다 위험이라고 하고 제거해놓은 상태가 되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공부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 보니까 이제는 살면서 터득해야 하는 것에도 매뉴얼이 등장하고. (125-126)

이런 상황에서 더 합리적인 생각은 어차피 길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먼 미래는 생각하지 말자, 바로 앞에 닥친 일들을 하나하나 잘 처리해나가는 것으로 내 삶의 방법을 바꾸자, 그게 더 옳은게 아닌가 싶어요(131)

다행스럽게도 분위기는 무르익었다고 봐요. 중산층이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이 게임에 넣을 판돈이 모자란다는 현실과 인풋 대비 아웃풋이 턱없이 맞지 않을 정도로 인풋 요구량이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고, 아웃풋마저 매우 미비한 확률 게임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이 게임 내지는 이 게임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고 여기서 벗어나야 살 수 있겠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날 그날이 꽤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봅니다.(157)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력간 임금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거예요. 두 번째로 특성화고등학교와 같인 직업훈련 중심의 학교가 더 활성화되어야 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직업교육을 선택한 사람들이 공부에 대한 계기가 주어지면 인생의 어느 때이건 공부하고 싶을 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합니다.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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