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에 길을 묻다 - 장원재의 한국 축구 산업화 제안 SERI 연구에세이 73
장원재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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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K리그'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최종전을 장식했던 이 카드섹션의 문구는,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고서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았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거리 곳곳을 채웠던 수많은 팬들은 월드컵이 끝남과 함께 일상으로 복귀했고, 그 일상에 K리그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또 다시 맞이한 남아공 월드컵. 태생적인 속성상 충성스런 팬들을 보유하지 못해 텅비기 일쑤인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는 스크린에 펼쳐진 대표팀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처럼 수만의 관중이 몰렸고, 전국의 거리 곳곳에도 다시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축구를 향한 조촐하고 썰렁하던 응원은 순식간에 다시 장엄하고도 열정적인 응원으로 바뀌어 버렸다.

물론,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축구팬은 아니고, 또한 그들이 모두 축구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님은 자명하다. 국가 대항전이라는 월드컵의 특성상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이들은 그저 '대한민국'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표팀을 응원하기도 하고, 더욱이 그것이 지구촌 축제라는 점에서 기꺼이 동참하여 즐기기를 원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함께 같은 장소에서 같은 화면을 보며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응원한 신명났던 경험이 사람들을 더욱 불러 모으는 원동력으로 기능한다. 사람들이 바라고 응원하는 건 축구 그 이상의 것이고, 이것은 K리그에서는 얻을 수 없는, 단지 월드컵에서나 가능한 것들이라고 종종 사람들은 단정하곤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K리그와 월드컵이 같은 '축구'를 전제로 하는 것이 명백한 이상, 그러한 섣부른 단정에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꽉 찬 관중석과 열정적인 응원, 팀이 이기고 짐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리는 환희와 슬픔, 상대에 대한 적대적 반응과 경기에 대한 순수한 찬탄, 기실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바로 축구를 묘사하는 '모든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같은 유럽의 일부 축구리그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요컨대, 축구를 향한 열정적인 응원과 열광은 결코 월드컵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K리그의 과제는 분명해지고, 아울러 유럽리그 중에서도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모델로 하여 K리그 발전의 길을 모색하는 이 책의 작업도 의의를 지닌다.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인 축구. 산업화에 따라 하나의 상품으로 기능하는 축구. 이러한 축구를 좀 더 예쁘고 매력적으로 포장하고 거기에 '드라마'라는 소스를 더하여 축구팬들을 만족시키고, 나아가 축구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잠재적인 '구매자'에게도 어필해야 한다는 건, 월드컵에서 펼쳐졌던 축구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한 당연한 수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에 고작 한 달뿐인 그 특별한 환희를 일상으로 끌어오려는 노력이 한국축구의 당면과제이자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가 잘 '알고만' 있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선순환'의 구조를 마련하여 열정을 '일상화'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알지만, 막상 그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면 여기저기서 난관과 맞닥뜨리게 마련이다. 마냥 유럽의 열정적인 리그를 모델로 하고자 하여도 많은 해법들이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기에 섣불리 시도하기가 만만치 않다. 가령, 대기업에 기생하는 형태인 현 '기업' 프로팀은 시민을 기반으로 자생하는 '지역' 프로팀으로 가는 것이 백 번 옳겠지만, 매년 적지 않은 적자를 감수하는 각 팀들이 기업의 품에서 벗어나는 순간 재정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몇년 전 거의 모든 내셔널리그 팀들이 K리그로의 승격이 불가하다고 밝힌 데서 보듯, 승강제는 강등하는 팀과 승격하는 팀 모두에게 현실적으로 '부담'이기만 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 책의 제안도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은 없고, 더욱이 '현실적'이라고 하기에도 사실 무리가 있다. 동남아의 선수를 영입해 K리그의 시장을 아시아로 확대하자거나, 대학팀들을 리그로 끌어들여서 K리그와 N리그를 각각 16-16 혹은 그 이상의 숫자로 편제하자는 제안들은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동남아의 선수들이 K리그에서 선호되는 남미와 동유럽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란 회의적이고, 또 16-16 이란 편제는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 그것이 곧 K리그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와는 제반환경이 사뭇 이질적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거의 유일한 모델로 삼은 것도 '현실적인 취사선택'의 범위를 좁히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언급한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논의들은 그 시도 자체로 반가운 내용임에는 틀림이 없다. 비록 이 책이 한국축구가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내용 자체도 소략한 편이지만, 적어도 월드컵의 열광만을 기대하며 가능성이 희박한 월드컵 단독 개최를 위해 눈먼 돈을 쓰려는 한국축구협회나 혹은 단발성 이벤트에 대한 환호만을 기대하며 K리그의 일정까지도 바꿔주며 유럽의 유명팀과의 친선경기를 환영하는 프로축구연맹에 비하면, 이 책의 제안은 차라리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이라고 할 법도 하다. 무엇보다도 4년마다 온탕과 냉탕을 왕복하는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노력만큼은 박수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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