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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930-2010
헤르만 악셀 일러스트 / ODbooks(오디북스) / 2010년 4월
절판
1930년에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회 월드컵부터 지난 2006년 독일에서 열린 제18회 월드컵까지 모두 아우른 이 책은 일러스트의 향연으로 무엇보다도 눈이 즐거운 책이다. 각 선수들의 특징을 묘사해내는 캐리커처나 각 대회의 주요사항을 포착하는 시선은 재미있으면서 독특하고, 주요 경기의 골 장면이나 특정 선수의 플레이를 재현해낸 일러스트는 치밀하면서도 재기가 넘친다. 책의 어떤 페이지를 펼치든 월드컵의 특별한 순간이 펼쳐지면서 독자가 월드컵의 묘미를 만끽하도록 만든다.
월드컵의 첫 대회는 우루과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우루과이로 향하는 각국의 여정이 만만치 않았고, 그 긴 여정과 치열한 승부의 끝에는 월드컵 창시자인 줄 리메의 이름을 딴 줄리메 컵이 기다리고 있었다.
1954년 월드컵은 스위스에서 열렸다. 당시 독일이 헝가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사건은 '베른의 기적'으로 회자되는데, 여기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이 바로 베른에 내린 비와 최초로 나사식 뽕을 장착한 아디다스의 축구화였다. 독일은 조별예선에서 그들에게 대패를 안겼던 헝가리에 3대2로 승리를 거두었다.
1966년 월드컵을 자국에서 치렀던 잉글랜드는 드디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축구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을 살렸다. 자국을 위한 몇몇 특혜 문제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들은 우승을 할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 한편,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른 게 바로 이 대회이기도 했다.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연이어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 두 대회를 거치는 동안 크루이프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다. 물론, 1978년 대회의 경우 크루이프는 대회에 불참했지만, 그가 네덜란드 축구에, 그리고 세계 축구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토탈 풋볼'로 대변되는 새로운 전술의 선구자였으며, 또한 '크루이프 턴'의 창시자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월드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손으로 골을 성공시키는 비신사적인 짓을 저질렀지만, 곧바로 세기의 골로 꼽히는 환상적인 골을 성공시킴으로써 그의 능력을 입증해 보였다. 결국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우승을 차지했고, 핸드볼 파울 논란은 '신의 손'으로 남았다.
지난 2002년 FIFA의 인터넷 투표를 통해 '세기의 골'로 선정되었다는 마라도나의 골을 헤르만 악셀은 위와 같이 묘사해 놓고 있다. 여러 차례 본 골 장면이지만, 이렇게 보니 또 색다르면서 재미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했던 카메룬의 로저 밀러는 38세의 나이로 4골을 기록하면서 카메룬의 8강행의 1등 공신이 되었고, 그의 세레머니는 축구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42세의 나이로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했는데, 더욱 놀랍게도 또 다시 골을 기록하며 월드컵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선명히 새겼다.
브라질이 우승했지만, 그보다는 이탈리아 로베르토 바조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기억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물론, 당시에 실축을 했던 건 바조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공을 허공으로 날린 건 꽤나 강렬했고, 무엇보다도 토너먼트에서 놀라운 활약을 선보인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몇 번을 되풀이해봐도 감동적이고 놀라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안정환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넣은 골든골 장면이다. 그림의 오른쪽 편을 보면 이탈리아의 왼쪽 풀백 코코가 붕대를 감고 있는 게 눈에 띄는데, 그 묘사 하나만으로도 악셀이 얼마나 충실하게 그림을 그렸는지를 알 수 있다. 단, 골대 뒤편 걸개의 글씨는 차마 한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우승팀은 이탈리아였지만, 이 대회의 주인공은 단연코 지네딘 지단이다. 지단은 이 대회 직전에 이미 은퇴를 밝혔기에 이 대회는 지단이 마지막으로 축구 인생을 마무리하는 무대였고, 과연 그는 이 대회를 끝으로 그라운드 위를 떠났다. 물론, 그의 '박치기'는 영웅의 퇴장 장면으로 삼기에 그리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마지막까지 인상적이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관련해서, 이 책은 본선 32개국의 주요선수 한 명씩의 캐리커처를 수록해 놓고 있다. 당연히 한국의 선수는 박지성.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한 국가의 선수로는 아르헨티나의 메시와 나이지리아의 카누 그리고 그리스의 카라구니스가 선정되었다. 캐리커처의 얼굴 크기로만 따지면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실하다.
지난 월드컵의 역사를 모두 다루는 이 책은, 기실 그렇게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치 넘치는 일러스트가 이 책의 내용을 특별하게 바꾸어 놓았다. 글로 묘사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그림 덕택에 생동감을 찾았고, 특히 각 대회의 특징들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그림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수록된 500여 컷 중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었고, 그래서 책을 들여다 보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게다가 도판의 크기는 시원시원해서 소장의 가치도 한껏 높여준다. 한 마디로 단언컨대, 가히 축구팬들의 보물이 될 만한 책이다.
덧.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이 책에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선수들의 이름 표기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선수들의 이름 표기는 영어식 발음을 토대로 하는데, 그로 인해 실제 우리가 아는 선수의 이름 표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가령, 월드컵 역사상 한 대회 최다골의 주인공인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이 폰태인으로, 네덜란드 선수인 레이카르트가 리지카드로, 그리고 독일 선수인 게르트 뮬러와 루디 펠러가 각각 거드 뮬러와 루디 볼러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잉글랜드 선수인 리네커는 라인커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다양한 국적을 지닌 선수들의 이름을 일관되고 정확하게 표기하기란 어렵지만, 약간의 감수만 거쳤더라도 좀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