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 위의 수학자
강석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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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야구와 농구는 물론이고 미식축구와 마라톤과 복싱 등, 스포츠라면 딱히 종목을 가리지 않고 두루 섭렵한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스포츠의 순간 순간들을 독자에게 아낌없이 펼쳐 놓는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이 현현한 1986년 월드컵의 순간과 최동원이 불멸의 투구를 선보였던 1984년 한국시리즈의 순간, '농구 천재' 허재가 다시 부활한 94-95 농구대잔치 결승전의 순간과 박시헌이 부끄럽지만 안타까운 금메달을 따냈던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경기의 순간 등, 저자는 독자들도 기억할 만한 순간이나 혹은 독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놀라운 기억력으로 복원해내며, 그 순간의 감동과 위대함과 슬픔과 분노와 부끄러움과 안타까움과 추함 등의 감정들을 함께 되살려 낸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감정들이 넘쳐났던 스포츠의 순간들을 통해 스포츠의 세계를 예찬하는 한편, 그 속에서 우리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가치들을 은근슬쩍 일러준다. 내용이 짧게 끊겨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지만 대신 속도감 있게 읽히고, 기본적으로 흥미로운 책이다.

* ps.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특히 대중의 무책임한 기대를 비판한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이 대목은 최근 2009 로마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박태환에게 쏟아진 비판과 충고(?)에 대한 준엄한 반론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여긴다. 그와 관련된 부분을 인용해 놓는다.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의 츠브라야는 예상을 뒤엎고 동메달을 목에 거는 이변을 연출했다.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서구 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열등감을 감추지 못했던 일본이 한 마라톤 선수의 동메달로 어깨를 쭉 펼 수 있게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여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수확해낸 것이 츠브라야에게는 비극이었다. 일본 매스컴은 도쿄 올림픽이 끝나기도 전에 '멕시코 올림픽의 금메달을 향하여' 따위의 전형적인 기사를 연일 터뜨리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츠브라야는 자신의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본 국민들의 기대를 어깨에 얹고 그 나름으로는 그 기대를 실현시켜보려고 몸부림치다가 결국에는 할복 자살이라는 극한적인 방식으로 그가 도저히 그러한 일을 이루어낼 수 없음을 일본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짧은 생애를 끝맺고 말았다. 나는 위와 같은 일은 한 인간에 대한 대중의 무책임한 린치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p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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