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화장실에서 마쓰이 다다시의 <어린이와 그림책>을 읽다가 마음에 콕! 박힌 구절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부모가 안심하기 위해 사서는 안 된다.
독서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빨리 읽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독서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속독하는 사람을 부러워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틈에 상당한 분량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바로 이런 독서 형태를 비유하는 적절한 예라고 생각됩니다. 빨리 읽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속독도 하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아기 때부터 그림책을 사주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출판량이 많아 졌고, 글자를 배우는 연령이 어려졌고, 그에 따라 그림책을 읽어주는 대상 연령도 차츰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기를 위한 그림책으로 무엇이 적당한가요?'라고 서점에 질문하는 부모들이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똑똑하게 키우려고 아기때부터 그림책을 사서 읽어주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어느 틈엔가 물건에 의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물질주의 방향으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요.
아기의 지능과 마음을 성장시키는 것은, 팔다리를 움직이고 말을 하는 아기의 행동이지 그림책이라는 물건이 아닙니다. 물건을 제공하면 아이가 금방 똑똑해질 것 같아 안심하고 물건을 제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어쩐지 불안해지는 것은, 현대인이 빠지기 쉬운 공통의 심리상태인지 모릅니다. 확실히 물질은 부의 상징이지만 과연 그 물질들이 아이의 마음까지 풍성하게 해줄까요.
언제나 우리아이는 친구네 아이보다 장난감이 부족한 것 같아... 누구네 집에는 그림책이 한 벽 가득 있던데...하고 조바심을 내던 저를 질책하는 글 같네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습니다. 그림책이 몇 권이든, 얼마나 정성과 사랑을 담아 읽어주는가가 더 중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