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피포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더풀>과 <공중그네>로 내게 즐거움을 한껏 선사해줬던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라라피포>. 갓 나왔을 때부터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인데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가 신착도서 서가에 꽂힌 것을 발견하고 냅다 집어든 책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전작에서 보여준 유머와 엽기적 사고방식은 이 책에서도 유효하다. 그렇지만 이 전에 그의 작품에서 만나본 사람들은 마음의 고민을 가지고 그것을 풀지 못해 끙끙거리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외형적인 모습부터 시원찮다.

  명문대 출신이지만 대인공포증때문에 변변찮은 직업도 없는 남자, 그는 한동안 윗층 남자가 내는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와 여자가 내는 신음소리때문에 갑자기 잊고 지낸 섹스를 떠올리고 자위를 했고, 심지어 윗층의 소리를 좀 더 자세히 듣고자 빡빡한 재정상태에도 불구하고 도청기까지 사는 모습을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뚱뚱해서 여성적인 매력은 전혀 없어보이는 여자는 알고보니 남자를 끌어들여 음란 DVD를 촬영하고 있고, 머리가 반쯤 벗겨져서 한 풀꺾인 모습인 관능소설 작가는 취재를 한답시고 여고생을 탐닉한다. 소심해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남자는 이리저리 휘둘리고 심지어 남의 부탁으로 방화까지 저지른다. 게다가 하루하루 누워서 빈둥대며 무료한 생활을 보내던 한 40대 주부는 길에서 우연히 에로물 배우로 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그들은 누가봐도 뭔가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전작 <공중그네>에서 만나본 주인공들은 자신의 그런 삶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시도(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이라부에게 찾아가는 것)를 하고 있다면, 이 책 속에서 주인공들은 그저 열심히 되는대로 타인의 육체를 탐닉하고, 쾌락에 빠져만 있을 뿐 현실을 벗어나려는 의지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설사 조짐이 보였다고 해도 금새 꺼져버리는 불꽃같은 조짐이었을 뿐.  

  솔직히 말하면 <공중그네>에서 유쾌한 웃음을 생각하고 이 책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아마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책도 이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지만.) 둘의 구성(여러명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라라피포>속에는 이라부같이 문제점을 해결하게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변화하고 싶어도 그들에겐 변화가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게만 여겨진다. 이라부의 도움으로 사회와 다시 어울려서 살았던 사람들과는 달리 이 책 속에 사람들은 사회 밖에서 떠도는 사람들이다. 물과 기름처럼.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생각해봤을 때 이 사회라는 굴레안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또 몇이나 될까. 결국 그들은 사회 밖에서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들은 그렇게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지 않을까. 명문대를 나와 여기저기 원서는 찔러넣지만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사람, 권태로운 일상에 마냥 따분해 하는 사람, 성생활에 대한 불만으로 삶 자체가 불만인 사람, 만사를 삐딱하게만 보려는 사람 등등. 이 사회 안에는 <라라피포> 속에 등장한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나비의 날개짓으로 허리케인을 불러올 가능성이 생기는 것처럼 이 책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자포자기하고 변화를 어려워한다면 우리도 결국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모습을 한심해하면서 살아갈 지도 모르겠다. 작은 변화가 몇 년 뒤의 모습을 확 바꿔놓을 수 있지 않을까. <라라피포> 속의 주인공들이 <공중그네>의 주인공들처럼 '변화'했다면 그들에겐 어떤 미래가 다가왔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