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뭔지 모를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작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제게 대니얼 고틀립이 그런 작가입니다. 2007년 우연히 선물받아 읽게 된 『샘에게 보내는 편지』로 만난 대니얼 고틀립. 할아버지와 손자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듯한 표지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9년. 갓 입사했을 때 사수인 선배가 마무리 작업중이던 『마음에게 말걸기』로 대니얼 고틀립을 다시 만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Learning from the heart』라는 원제를 독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표지에 쓸 이미지를 찾으면서 책 한 권 만드는 일에 얼마나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이번에는 『가족의 목소리』의 담당편집자로 다시 한 번 대니얼 고틀립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대니얼 고틀립은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가 된 심리치료사입니다. 심리치료사의 글이라고 하면 심리학 전문용어가 등장한다거나 가족학이나 인간행동에 대한 통계가 제시되는 '전문적'인 글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틀립은 이런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자신의 명함에 새겨진 소개처럼 '사람Human'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고틀립은 전문가라는 이름만 앞세워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장애, 이혼, 잇단 가족들의 죽음, 사지마비 등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해본 인자한 이웃집 댄 할아버지로 다가와 고민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음 깊이 공감하며 그들이 나름대로 옳은 길을 찾을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 자기가 앞가림만 제대로 한다면 부모가 술에 손을 대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아이.   
  • 자식이 자기를 보살펴주길 원하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쉴 새 없이 안부전화로 자식에게 애정공세를 하는 부모. 
  •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을 되찾으려 끊임없이 과거에 미련을 갖는 사람.  
  • 첫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내가 자신에게 소홀해졌다고 생각하는 남편.  
  • 아이가 어떻게 행동을 하더라도 끊임없이 그를 비난하는 부모.   

 

  이 책 속에는 이렇게 가족 안에서 상처 받은 이들이 사연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뭔가 문제가 있는' 사연이 아니라 라디오에서, TV에서, 친구들에게서 접할 수 있는 낯익은 모습입니다.(사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연의 대부분도 고틀립이 20년 넘게 진행해온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가족의 목소리>에 소개된 것이라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이상적인 가족상을 그립니다. 부모님이 좀 더 자상했으면, 부부 사이가 좀더 돈독했으면, 친구 같은 부모자식간이 되었으면…. 저 또한 이 책을 만들며 동생에게 장애가 없어서 여느 자매처럼 지낼 수 있었더라면, 평범한 여느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신기루처럼 좇았던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이제는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나 혼자는 아니라고, 우리 모두는 특별한 존재라고 따뜻하게 상처 받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댄 할아버지. 그는 가족을 더 끈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솔직함'이라고 하며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가족에게 바라는 모습을 표현해보라고 권합니다. 부모님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교감하고, 아이에게 자신의 불안감을 털어놓기 등 우리 자신의 분노와 슬픔, 죄의식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댄 할아버지는 '말의 언어'가 아닌 '감정의 언어'로 전해줍니다.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진실하고 담백하게 가족 안에서 눈물 흘려본 우리를 위로해주는,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흘려들은 우리 가족의 '진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해주는, 댄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길 『가족의 목소리』. 그가 내민 손을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잡아주세요. 

 
덧붙이는 표지 이야기)

  『샘에게 보내는 편지』  『마음에게 말걸기』가 이미 많은 독자분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터라 표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비슷한 컨셉과 비슷한 색감으로 갈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고민하다가 "따뜻한 분위기"라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식의 목표(?)하에 미모의 디자이너와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이미지를 찾아 헤매다 만난 이정민 선생님의 <Isolation>. 보는 순간 '아, 이거다!' 하는 생각에 눈이 번쩍!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다워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어딘가 제각각인 듯한 분위기의 가족의 모습. 『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의 댄 할아버지와 샘을 담은 표지처럼, 『마음에게 말걸기』의 어딘가 상처 받은 듯한 여자아이의 모습처럼 책의 내용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 반해버렸답니다. 살짝 좁기는 하지만 그림 속 가족의 남는 쇼파에 슬쩍 저도 앉아 함께하고 싶어졌던 그림! :)

덧붙이는 이야기 하나 더)
앞서 짧게 이야기했지만 <가족의 목소리>는 대니얼 고틀립이 20년 넘게 진행해온 라디오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1985년부터 시작해 현재도 열혈 방송중!!) 지금도 여전히 필라델피아의 많은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족의 목소리>. 그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실 분들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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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9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