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라이프 -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쓰지 신이치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2월
구판절판


소박하고 느긋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역시 풍요로운 자연에 기반을 둔 '지속 가능한 친환경 경제'의 구상과 창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씩 뺄셈을 시작하여 서서히 줄여가는 길밖에는 없다. -17쪽

한쪽에 더 빨리 효율적으로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여기서 한쪽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양자택일의 시험에 빠져들 필요는 없다. 인생에는 그 두 가지 길이 모두 필요하니까.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인생을 A지점에서 B지점으로의 이동만으로 여기고, 산책 쪽은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즐길 때처럼, 목적과 수단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무엇이든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지니고 있는 것일까? 효율성, 생산성 같은 경제 척도로 이 귀중한 자유를 낭비라는 한마디로 정리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21쪽

노는 즐거움, 자신이 어딘가 목적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어 지금을 사는 자유, 그저 거기에 존재함으로써 얻는 기쁨을 인정하자. 그 역시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라 여기면서, 단순한 취미나 여가에 속하는 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으로서, 본질적인 시간의 사용 방식으로서 말이다. -22쪽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일은 무가치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그 자체로는 시간의 낭비일 뿐이다. 노동력의 재생산이나 오락 산업의 번영을 위한 것일 때라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용서받기 힘든 일. 그냥 걷기 위해서 걷는다거나 그저 빈둥거리고 싶다거나 또는 그저 멍하니 경치를 바라보는 일은 게으름뱅이나 하는 짓이다. 그저 살아가고 살아 있으니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도무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32~3쪽

두말할 것도 없이 음식과 주택 모두 우리 문화의 근간이다. 슬로 푸드가 먹는 행위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람과 자연 관계를 다시 보고, 먹는 행위의 의미를 재정립하려 애쓰고 있듯이, 슬로 디자인 또한 주거의 문제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재정립하여 제대로 된 공정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으로 '제대로 살기' 위한 하나의 시도인 셈이다. -35쪽

상대가 자연이든 사람이든,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게 하는 일에 점점 더 서툴러지고 있다. 요컨대 함께 살아가는 일에 점점 더 서툴러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왜냐하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는 지금 남을 사랑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기다림을 뺀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55쪽

하지만 인생이란 애당초 이러한 잡일의 집적이 아니던가. '할 수만 있다면 하지 않고 지나가고 싶다'고 여기는 일들이 실은 우리들이 '삶의 보람'이라 느낄 만한, 우리에게 깊은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의 흐름들은 아닐는지. -65쪽

지금 세계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의 대전환 속에서, 우리는 바구니 속에 던져 넣었던 것을 다시 하나하나 끄집어 내서 살펴보고 있다. '잡스러움'이야말로 그것들의 키워드인 셈이다. 생태계의 잡초, 숲속의 잡목, 농업과 먹거리의 잡곡처럼, 잡담, 잡역, 잡음, 잡화, 잡학, 잡지, 잡종, 잡념 등과 같은 일이나 사물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스산한 것이 될까. 조잡하고 잡다하고 번잡하고 복잡한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66쪽

소비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갖고 있으니 나도 명품 가방을 사야 한다'는 심리는 혼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근거하고 있다. 새로운 옷을 살 때의 기쁨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줄근해 보일지 모를 자신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다. 소비 행위는 타자와의 경쟁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79쪽

어찌 보면 현대사회가 바로 공포의 체제인 듯하다. 거기서는 돈으로 안심을 사들이고, 경쟁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일종의 '의자 빼앗기' 게임과도 비슷해서, '더 많이, 더 빨리'라고 외치며 늘 앞으로 고꾸라질 듯한 아슬아슬한 자세로 영원히 얻을 수 없는 안심을 뒤쫓고 있다. 그것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슬로다운'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공포의 연쇄로부터 걸어 나오는 일이다. 이 공포 시스템에서 플러그를 빼는 일이다. 공포라는 가파른 오르막 산을 내려와 거기로부터 몸을 돌리는 일이다. 힘들게 오른 산 너머에 안심이 기다리고 있을 리 없으므로. 그렇다면 안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찬찬히 살펴보면 안심의 씨앗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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