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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에 친한 친구와 '설정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라는 것이었죠. 당시 우리는 관악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일단 어떻게든 관악산을 넘어서 반대편으로 몸을 피한 뒤, 어떻게든 가족이 있는 부산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피난민으로 생활하면서 내 목숨을 부지할 확률은 거의 희박할 것 같으니 어떻게든 적십자나 군간호사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전장 한복판에 있으나 피난 행렬에 끼나 목숨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라면, 적어도 내가 가진 재주를 쓰면서 사는 게 좋기도 하거니와, 적어도 그런 병원 시설에 있으면 조금은 화를 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말은 반쯤은 농으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지는 역사는 마치 살아있는 양, 크게 솟구치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분명 그런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 그 시대,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일진대, 반대로 그 흐름은 너무 강해서 도리어 그 속의 사람들이 그 흐름에 휘말려버리곤 합니다. 마치 하나하나의 작은 물줄기들은 제각기 제 방향대로 흐르는 듯 하지만 결국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가듯 말입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그러한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졌던 조선 말기의 시대에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굳이 주인공을 꼽자면 이신통과 서일수겠다마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깊이 남는 사람은 연옥일 것입니다. 이신통의 소식을 수소문하며 짧은 인연을 잊지 못하고 평생 그의 뒤를 따르는 연옥의 이야기는 이 책의 프레임에 해당하며, 분량으로 치자면 작지만, 제게는 이 연옥의 이야기야말로 이 책을 계속해서 읽게 만든 동력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연옥과 같은 여인네이기 때문에 더 이입해서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찌 그와 함께 살았던 날을 하루씩 쪼개어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으랴. 나중에 그가 곁에 없게 되었을 때, 가뭄의 고로쇠나무가 제 몸에 담았던 물기를 한 방울씩 내어 저 먼 가지 끝의 작은 잎새까지 적시는 것처럼, 기억을 아끼면서 오래도록 돌이키게 될 줄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p.88

 

 저는 이기적입니다. 제가 바라는 건 많지 않습니다. 그저 내 한 몸 평안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투닥거리기도 하고 속살거리기도 하며 살을 맞대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 정도입니다. 어떤 여자가 이런 삶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만약 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화를 입게 된다 한들, 아마 저는 제 남자가 처자식 다 버리고 뛰쳐나가 정의를 부르짖기보다는 비겁하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제 옆에 머물러있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전 연옥의 일생이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연옥의 평생동안 이신통이 그녀의 곁에 머문 것은 손으로 헤아려 볼 정도로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그저 그리움으로 곱씹으며 평생 그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의 나날로 느껴집니다. 당장 일주일만 그와 떨어져 있어도 그리움이 이렇게나 커지는데, 평생이라니요. 차라리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집에서 저와 같이 살면서는 안 되나요? 그 일이 천지도 일이라면 이제 조선 팔도에서 다 망해먹은 일을 당신이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요, 다너러도 입도하라면 같이 하십시다. 당신 말하던 스승이 누구이며,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모르오나 내가 그를 찾아갈 테요. 찾아가서 집사람을 내치고 도를 닦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따질테요.'라고 애원하는 마음이 더 와닿더군요. 그래서 아이를 사산하고나서까지도 그를 원망하기보다는 그리워하며 그를 따라다니는 연옥의 모습에 한탄을 하기도 하고 차라리 재취를 하여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며, 연옥이 만난 사람들의 입에서 줄줄 풀려나오는 이신통의 과거사나 동향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혀를 차며 '쯧쯧, 그래봐야 처자식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는 못난 것...'이라는 소리가 더 먼저 나왔습니다. 저는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가족의 눈에서 피눈물 뽑아내는 인간은 곱게 보지 못하겠기에 이신통의 행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연옥에게도 그렇고, 아무리 부모가 정한 혼사라고 해도 조강지처에게서 딸까지 보았으면서도 소식 한 번 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는 영 돼먹지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의 2/3가 다 되도록도 책을 몇 번이나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존경을 받고 의지가 되면 뭣하나요. 자기 가정 하나 돌보지 못하는 인간인데요.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지금 고생을 옛말하듯 하면서 오순도순 사십시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묻고 있었다. 언제요, 그런 날이 언제 오는데요?
그러나 입 밖으로는 간신이 이렇게 말해버린다.

저에게는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 p.444

 


  하지만 연옥이 이신통의 자취를 더듬어가며 그를 점차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그를 만난 이후에 도리어 자신의 그리움이 커져 그를 잡게 될까봐 스스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탄을 하면서도 내심 그녀를 이해할 듯도 했고, 연옥의 마음을 통해 이신통을 이해할 듯도 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신통인들 그렇게 사랑하던 이의 곁을 떠나고 싶었겠으며, 아무리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결의를 했다고 한들, 그 마음이 돌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까지 자신을 따라온 그 마음을 외면하기 쉬웠을까요. 또한 아무리 자신을 괴롭히기만 한 상대라고 한들 자신의 이복 형을 (사실상) 제 손으로 죽이는 마음이 아무렇지 않았을까요. 이 모든 일을 그저 '혼란의 시대였으니...'라는 말로 끝내버리자니, 차마 그럴 수도 없더군요. 임오군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어떻게든 처자식을 먹여보려고 하던 군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갑자기 부당해고를 당하고 농성을 하게 되는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더군요.

  그래요. 우리가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우리에게 분명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가족들이 늘어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식을 버리고 도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꼬드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때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그 때나 지금이나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저는 어쩐지 한없이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가슴이 메이기도 해서 하릴없이 책장을 쓸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써보기도 하며 아린 마음을 풀어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와서 지금의 고생을 옛 말하듯 오순도순 살 날이 올까요. 그게 언제 쯤일까요. 언제나 그런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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