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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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클어진 머리의 한 여인. 옷 없이 누워 있는 그 여인. 그리고 그녀를 감싸는 빨간 물결. 제 시선을 끌어요. 신비롭고, 강렬해요. 제가 만난 책, '소실점' 얼굴의 첫인상이에요. 그리고 그 책이 이야기해요.


 '그녀의 몸을 가린 옷은 없었다' -9쪽.


 이 책의 첫 목소리예요. 제게 송곳 같이 들어오네요. 대한민국의 대표 아나운서, 최선우. 그녀가 나체로 발견돼요. 시체로요. 장소는 교외에 있는 한 남자 집. 그 집의 주인은 미술 교사 서인하예요. 강력한 용의자가 되지요. 재벌가의 며느리, 외교관의 아내, 지성과 미모를 갖춘 인기 아나운서인 최선우의 죽음. 대한민국에 큰 파란을 일으키지요.


 '인간에 대한, 특히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이 없다면 노동 강도가 세기로 손꼽히는 검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주희 역시 이 같은 궁금증을 갖고 있는 검사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독특한 범죄자를 만날 기회는 흔치 않았다.' -53쪽.


 인간 내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사건을 맡은 강주희 검사. 서인하는 최선우가 섹스 파트너라고 해요. 그리고 그녀가 SM 성향이라고 하고요. 그런데, 최선우의 남편인 박무현은 그녀가 완벽한 여자라고 해요. 가지런하고, 우아한 여인. 그 자체라고 해요. 극과 극의 두 얼굴. 그 안의 진실이 하나하나 드러나요. 강간이냐 화간이냐, 살인이냐 자살이냐, 조작이냐 증거냐의 참모습을 알게 되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사랑해요."

 "네가 인식한 나는 나 자체가 아니라 너의 시각을 통과한 나이고, 그것은 나의 실존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154쪽.


 '"소실점, 을 아세요?"


 2차원의 평면에 원근법과 입체감이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기준이 되는 선을 연결하는 방법.' -287쪽.


 '"저는 최선우를 똑바로 보기 위해 매 순간 새로운 소실점을 찍고, 제 위치를 바꿔가며 그녀를 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있는 자리에서 결코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한 번 찍은 소실점에 변동 없이, 그 구도 안에 선우를 밀어 넣은 사람들은 보지 못했던 모습을, 저는 그래서 볼 수 있었고, 저는 그래서……." -288쪽.


 서인하의 증언이에요. 그는 최선우의 다른 얼굴을 보았다고 해요. 즉, 그녀의 가면 안의 얼굴을 봤다고 해요. 매 순간 새로운 소실점을 찍고, 위치를 바꿔가며 봤다고 해요. 그런데, 최선우의 가면은 너무 무거웠어요. '숨을 쉴 수 없다면서 왔습니다. 숨을 쉬고 싶다고.(280쪽)' 서인하에게 그녀가 숨을 쉬고 싶어 왔었다고 해요.


 '"제게는 선우를, 세상에 남은 선우의 이름을 살던 모습만큼 아름답게 지키는 일만 남았습니다." -286쪽.


  이것도 서인하의 증언이에요. 최선우의 이름을 지키기 위한 사랑! 숭고한 사랑! 그녀의 어두운 얼굴도 사랑했다고 하는 서인하! 또, 주기만 하는 사랑! 그럼에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제가 선우를 그렇게 볼 수 있는 사람이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288쪽)'라고 말하는 서인하! 


 이 소설에서 제가 본 인간 내면에 대한 물음은요. 가면과 사랑이에요. 그것도 무거운 가면과 주기만 하는 사랑이에요. 이 두 가지를 생각하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그려졌어요. 예수를 판 가룟 유다의 무거운 가면. 그리고 그 무거운 가면 안의 어두운 얼굴마저도 사랑한 예수! 역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장 39절).'고 하신 예수지요. 그 사랑으로 빛이 되셨어요. 그 예수에 있는 소실점으로 살아 있는 그림이 되고요. 이 소설에서도 최선우의 무거운 가면이 있어요. 그 최선우의 어두운 얼굴도 자신 같이 사랑한 서인하가 있고요. 그 사랑으로 최선우에게 빛이 돼요. 그 서인하에 있는 소실점으로 이 소설도 살게 되고요.


 이 소설의 지은이는요. '실미도', '공공의 적2' 등의 각본을 쓴 작가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이 소설, 한 편의 영화 같아요.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대화가 살아 있고요. 또, 마지막까지 제동 장치 없이 달려요. 그 속도! 힘 있네요. 살아 숨쉬는 속도 여행! 긴 여운도 남겨요. 그 여운 안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두 소설이 생각나네요. 바로, '용의자 X의 헌신'과 '백야행'이에요. 오랫동안 음미했어요.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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