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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서울의 정치경제학: 서울과 삶, 서울의 삶

 

 

서울의 하루는 다른 곳의 하루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살아낼 수 있는 시간이다. 서울의 일 제곱킬로미터는 다른 곳의 일 제곱킬로미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어 그만큼 더 빠른 속도로 옮겨 다녀야 겨우 버텨낼 수 있는 공간이다. 압축 성장이 서울을 특별한 도시로 만들었다면, 그 특별함은 다시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특별한 생각과 행동, 실천을 가지게 함으로써 그들의 삶의 방식을 규정해나갈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서울의 장소들은 반드시 특정 공간일 필요도, 심지어는 서울에 있는 장소일 필요도 없다. 그것들은 구체적인 장소이자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미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장소들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서울에 관한 책이지만 서울에 관한 책만은 아니다. - 책날개 中(프롤로그 중 일부 확장변형)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우리나라는 국가 브랜드 슬로건으로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말을 썼다. 역동적이고 너무도 빠른 나라, 수도 서울은 특히 더 그렇다. 다른 수도나 메트로폴리탄도 그렇지만,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사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토박이 자체도 적은데다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본적과 아버지의 연고를 기준으로 단 한번도 살지 않았던 곳이었어도 고향으로 삼아왔기에 더욱 그렇다. 서울에 대한 책은 꾸준히 쏟아진다. 분야와 주제도 각양각색이다. 서울도서관처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서울 관련서의 출판을 지원하고 홍보하고 있기도 하다.

 

 

작동과 소진이라, 왠지 제목이 무척 서글프게 느껴졌다.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란 제목 뒤로 곧바로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라는 부제가 붙는, 사실상 한 덩어리이나 길이 때문에 임의로 본제와 부제로 나눈 듯한 책. 저자 소개를 확인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사회학 서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자는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류동민, 물론 정치경제학은 경제학 내 분과학문이 맞다. 그런데 이 책에서 수식이나 시장이론 같은 흔한 경제학적 기제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경제학보다는 정치학에 정치학보다는 사회학에 가까운 책이었다. 물론 이 학문들 모두 사회과학이라는 큰 틀로 묶이고, 역사적으로도 서로 밀접한 ‘동료 학문’이긴 하지만.

 

 

'반포'는 적어도 서울에서 살아온 사십 대 이상에게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름이다. 이렇듯 공간은 그 무엇이건 내용물이 채워지기를 다소곳하게 기다리는 텅 빈 그릇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담기는 다소곳하게 기다리는 텅 빈 그릇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담기는 내용물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실체인 셈이다. - p.16

 

동호대교를 따라 강북에서 강남으로 건너와서 지하철3호선을 따라 올라오면 양쪽으로 유명한 성형외과 거리가 펼쳐진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탓에 간자체 한자로 쓰인 간판은 얼핏 보면 차이나타운이라 해도 믿을 만한 정도다. 유학생들이 많이 모리는 대학 근처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단 근처에서 보는 ‘양꼬치’나 ‘환전’을 의미하는 한자와 성형외과 거리에서 보는 ‘정형(성형의 중국 식 표현)’이나 ‘미인’을 의미하는 한자는 그래서 마치 ‘맨숀’과 ‘○○팰리스’, ‘고시원’과 ‘오피스텔’ ‘헬스클럽’과 ‘피트니스’의 대비와도 흡사한 느낌을 준다. - p.92

 

공장에서 기계를 빨리 마모되도록 만듦으로써 새로운 기계로 바꾸려는 행동이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생각해보면, 땅값 상승으로 떠받쳐온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유인 구조가 얼마나 기형적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훨씬 더 철저하고 우아한 배제의 원리가 적용되는 공간과 비교해본다면 그 역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안전요원이 주민의 얼굴을 알고 있을 정도로 통제가 되는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들이나 의원 전용 출입구와 엘리베이터가 따로 잇던 국회의원회관 등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 p.112

 

1970년대 말 대기업 신입사원의 월급은 십만 원가량이었다. 그리고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삼심 평대의 분양가는 이천만 원 정도였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비율은 강남 아파트를 기준으로 할 때 대략 15에서 16이 되었던 셈이다. 그런데 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2014년 8월 현재 서울의 아파트 3.3제곱미터, 즉 한 평당 평균 가격은 1933만 3천 원이다. 대략 평당 이천만원으로 잡으면 삼십 평짜리 아파트 가격은 평균적으로 육억 원 정도 하는 셈이다. 대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을 삼천만 원으로 잡으면 약 이십 년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물론 이것은 서울시 전체 평균이므로 강남 지역에 있는 아파트라면 비율이 훨씬 높아서 20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지난 한 세대 동안 학력자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평등이 얼마나 심해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 p.186

 

테헤란로 근처 구역을 담당하는 서초경찰서 앞에는 땡볕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도에 간이의자까지 펼쳐놓은 채 집회 신고를 하러 온, 감히 무슨 일인지 말을 걸어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체격이 우람한 젊은이들의 긴 행렬이 눈에 띈다. 자동차 회사 앞 버스정류장에서 맞아떨어졌던 예측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는다. 차림새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내 서글픈, 그러나 그다지 틀리지도 않는 본능으로 판단하건대 대기업의 정사원, 말하자면 와이셔츠에 넥타이 메고 출근하여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이는 분명 아닐 이 젊은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제아무리 컴퓨터 네트워크가 발전해도 마지막 순간의 교류는 사람의 손을 통해 이루어지듯, 사회를 움직이는 신경망의 말단부에서 관계자와 비관계자 사이에 출입금지의 벽을 둘러치는 역할을 그렇게 아마도 비정규직일 젊은이들이 맡고 있다. - p.195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동상이 길목을 차지하고 있는 광화문 앞 광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어른거리는 국가주의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사실 서울 시내를 장식하는 상징적 조형물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만들 것인가는 매우 복합적인 정치경제학의 산물이다. (...) 과거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주로 억압적 국가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이제는 자본의 지배, 국가의 틀을 빌린 자본의 통제 혹은 자본의 언어로 말하는 국가권력에 맞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 시간 구조를 뼈대로 삼아 형성된 서울의 공간적 구조를 구별 짓기와 추격의 과정,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환상과 실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로 귀착된다. - p.219

 

 

저자 역시 서울 토박이는 아니다. 부산에서 출생했고 서울에서 살다가 지금은 대전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저자에게 서울은 매력적인 문제의식을 촉발하는 강력한 소재였다. 처음 이 책은 저자 개인의 기억의 궤적으로 서울을 톺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이 책 전체의 기저를 담당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적 의미로 확장하고 톺아본다. 광화문, 노량진, 반포, 구로공단, 목동, 강남 등 익숙한 서울의 공간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 저자는 집요하게 사유한다.

 

 

그런데 이러한 치열한 탐구의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저러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미묘하게 서울과 비서울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구체적으로 언급해보면 이 책은 서울을 담은 서울 얘기와 서울에서 확장하는 다른 대상에 대한 이야기와 탈서울의 일반적 관념론들이 뒤섞여 있다. 가까이서 보면 이질적인 뒤섞임이 크게 보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서울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읽다가 조금 당황스러움, 기막힘, 산만함을 느끼기도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야 센은 인도 출신이니만큼 빈곤과 기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그가 인도와 중국 등의 사례를 분석한 끝에 내린 결론은 민주주의가 발전한 곳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다. - p.86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예전 파리의 지하철역에 무임 승차를 막기 위해 쓰여 있던 문구라고 한다. 로맹 가리는 이 문구를 발기부전에 빠진 노인의 고뇌를 그린 소설 제목으로 갖다 썼다. 그 경지가 얼마나 절박한 경지인지, 도대체 소설로까지 형상화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으나, 백번 양보하더라도 주거 공간이나 일터에 붙어 있는 출입금지 경고문에 비하면 뼈에 사무칠 정도의 아픔과 서글픔이 아니리라 짐작한다. 오래전 어느 글에서 읽었다. 한국사회에서 예식장과 러브호텔은 똑같은 기호를 갖고 있다고. 두 장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마치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 듯 웬만해선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그것. 바로 섹스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곳이라는 점이다. ‘궁전’ ‘황실’ 따위의 이름에 동화 속 공주가 살 듯 한 성을 묘사한 외관이나 인테리어는 지난 세기 서울의 예식장이나 러브호텔에 즐겨 사용되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섹스 금지의 마법은 드디어 풀리고 남자와 여자의 성관계가 시작된다. 굳이 차이를 따진다면? 예식장이 합법과 축복의 장소로 상정되는 곳이라면, 러브호텔은 아마도 비합법적 관계 혹은 드러낼 수 없는 은밀함과 쑥스러움의 장소라는 것. 그러나 21세기 서울 어딘가에서 동화 속 세계를 묘사하는 외관과 인테리어를 한 예식장이나 모텔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그 지역이 이른바 변두리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이제 예식장은 레드 카펫이 깔린 칸느 영화제 개막식장의 입구로 그 은유를 바꾸었다. 이름도 영어나 유럽어를 차용하거나 변형함으로써 결혼식을 쉽게 떠올리지 않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궁전예식장’이 백설공주의 성을 키치스럽게 모방했다면 ‘더 라움’은 대중적인 이미지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전략을 취한다. 들어갈 수 있음과 없음의 차이.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보라’와 ‘어떻게든 따라가겠다’의 차이인 것이다. 안과 밖의 은유는 이렇든 그 ‘안’이 어떤 곳인가에 따라 위계로서 성립한다. 안과 밖의 은유, 그 위계의 은유가 작동하는 공간의 한편에서는 배제의 논리가, 그 반대편에서는 모방과 추격의 논리가 작용한다. 그리고 두 논리에 공통된 것은, 물신의 논리다. - p.175

 

대학 근처 네거리 뒷골목의 천변을 따라 ‘불나비’나 ‘로즈’ 따위의 이름에 유치한 조명을 갖춘 술집들, 우리가 ‘세느 강변’이라 불렀던 곳을 지나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세느 강변에는 술시중을 들 뿐 아니라 아마 성매매도 가능했을 ‘매미’라고 불리던 여종업원들이 있었다.

“매미가 왜 매미인 줄 아냐?”

“……”

“팔 매, 아름다울 미. 그러니까 아름다움을 파는 사람이란 뜻이거든. 꽤 운치 있는 이름 아니냐?”

늘 자신만만하던 친구가 들려준 얘기였다. 어느 날 그는 ‘세느 강변’에서 술을 마셨다. 식용 알코올을 증류한 뒤 첨가물을 섞은 조악한 양주였을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매미’는 아이 우유 값이 필요하다며 친구에게 돈을 달라며 졸라댔다. 앳된 대학생 손님이 엉큼하게도 그녀의 가슴을 움켜쥔 순간 문득 뿌연 액체가 흘러나왔고, 그는 그 순간 갑자기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지폐 몇 장을 던지듯 뿌려놓고 달려 나왔다. - p.211

 

 

저자는 서울을 ‘우리의 삶을 운영하는 OS(운영체제)’라고 본다. 그리고 서울이 가진 주 정체성으로 물신과 배제, 추격과 모방, 능력주의 등을 언급한다. 이런 시선이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경제학자’가 쓴 사회학서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한편 이 책에선 세 가지 ‘도구로써의 서울’ 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소비, 주거, 여가, 노동, 종교, 대학, 사교육 등 우리 삶을 이해하는 수단으로써의 서울이다. 두 번째는 케인즈, 마르크스, 피케티 등과 연결되는 학문 이론의 사례로써의 서울이다. 마지막으로는 재개발, 양극화, 지대 등을 통해 한국을 바라보는 거울로써의 서울이다.

 

 

적당한 재미도 있고 어려운 구석도 전혀 없어 대부분의 이들이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요즘 일반교양서에서 많이 보이고 있는 ‘에세이 같은’ 교양서 중 하나이다. 다만 읽기는 가벼웠으나 독후감이 영 상쾌하지 않다. 저자가 선택한 자본주의적 프레임들은 하나 같이 자본주의적 삶의 비애와 연결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저자가 실컷 늘어놓은 서울의 정치경제학이 가리키는 것은 ‘삶’이었다. 서울과 삶, 서울의 삶. 다만 그것이 반쪽 같은 구석은 있다. 살아가는 건 늘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늘 슬프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서울을 알고 서울을 살아가는 이에게 거울 놀이하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거울 자체는 일면을 비추지면, 거울을 쥔 자가 움직이면 여러 면을 볼 수 있지 않은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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