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이야기 그리고 또다른 상상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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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소설집, 발 이야기 그리고 또다른 상상, 문학동네


1. 아홉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첫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이라 할 수 있는 『발 이야기』를 비롯해 여러 편에서 전 세계의 소외된 자들 예를 들어 식민지 여성, 전쟁포로, 난민들을 호명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한다. ‘노예무역’ ‘다이아몬드’ ‘전쟁’이 가리키는 인간의 탐욕과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바닥에 깔려있다. 이러한 목소리와 메시지를 얼마나 소설적으로 잘 묘사하고 형상화해낼 것인지가 소설의 우수성을 가늠하는 잣대일 것인데, 르 클레지오는 그것을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장소, 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로 생생하게 표현해내고 있어서 읽는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야마 나무」에서는 주인공 마리가 친구 에스메를 이끌고 피난의 과정에서 어릴 적 자신을 길러주었던 할머니의 품 같은 나무속에서 생활하는데, 그 상상력과 생명에 관한 의지가 너무나 잘 표현되어있어 감동스러웠다.


* 발 이야기


- 그녀의 두 발이 거부한다. 벌어진 발가락들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단단히 붙어 있다. 시멘트 가장자리를 놓지 않을 것이다. 발가락들은 유진의 몸 한가운데서 전율을 퍼뜨리고, 다리를 쇠기둥으로 변모시키고, 등골의 인대를 긴장시키고 머리를 뒤로 젖히게 한다! 발가락들은 세이렌의 노래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살아 있으며, 죽고 싶지 않다! 52-53쪽





* 야마 나무



- 여행의 종착지는 바로 여기, 마리의 집이다. 마리는 여러 날 전부터 이곳을 꿈꿔왔다. 어쩌면 수녀들이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도착해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이곳은 인간들의 광기는 들어올 수 없고, 권력을 향한 탐욕이나 피에 굶주린 갈증, 다이아몬드를 향한 욕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170쪽



● L.E.L, 마지막 날들



“검은 바위 위 난파선처럼 자리잡은 이 불타오르는 잔인한 백색의 요새” (184쪽)




* 우리 거미들의 삶

- 우리는 오히려 침묵의 족속이어서 혀 없이 입이 다리와 둥근 등에 박혀 있어 이것저것 설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252쪽

- 우리는 잠의 수호자이며 그것이 바로 지상에서의 우리 역할이다. (중략) 이렇듯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다. 공기는 우리 것이고 우리는 그걸 입으로 잡아다가 다리 사이에 붙들어둔다.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린다. 연약하고 작은 짐승들은 우리가 만든 고치의 보호 아래 잠들고, 밤은 시시각각 우리가 내놓는 실로 고치를 짜고 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거미줄을 친다. 밤에도 거미줄을 친다. 하늘은 우리가 엮은 그물로 덮여 있다. 그것은 숲을 이루고 한 오라기의 흐릿한 거미줄이 생명을 빨아들인다. 우리는 침묵을 짠다.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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