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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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소설, 윤미연 옮김, 허기의 간주곡, 문학동네


1. 유년의 ‘에텔’이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스무 살의 여성과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고 요약하기에는 그물이 너무 성기다. 시간적 배경 외에 ‘에텔’ 집안의 고향인 모리셔스와 주 거주지인 파리, 피난지는 브르타뉴, 니스를 상기해야 하고 화목하지 못했던 부모, 친구지만 거리가 있었던 ‘제니아’, 어머니의 삼촌인 종조부 ‘솔리망’도 소환해야 한다.


2.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Dunkirk)》가 떠올랐다. 영화가 영국군이 덩케르크에서 본토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군과 민간인들의 애국심과 인류애, 인간의 본성을 그리는 전쟁형 휴머니즘 영화라면 이 소설은 국가적 차원이 아닌 한 개인(넓게는 한 집안)이 겪는 휴머니즘형 리얼리즘 소설이다. 물론 화자의 직접적인 비판이 아닌 소설적인 테두리 안에서다.


소설에서 몇 부분 예를 들어, ‘메르엘 케비르 사태’(1940년 프랑스 해군의 전력이 독일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처칠이 알제리의 메르 엘 케비르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스 대서양함대를 공격하고 영국 영토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에 대해 무장해제를 단행한 사건, 201쪽), 됭케르크에 고립되자 싸우기를 포기했던 영국인들(234쪽)에서 언급되어 있다. 그밖에도 영국이 곡창지대인 인도 뱅골 지방에서 쌀 수탈에 나서는 바람에 발생한 기아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현재의 중동-이스라엘 분쟁도 영국에 책임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 6.25 전쟁에 역사까지 겹쳐져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만은 없었다.


3.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수많은 장소와 인물들(파리의 거리, 팔려간 노예들의 기록장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가 있던 곳)을 호명한다.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 호명해 주는 것이 독자의 몫이자 남은 자들의 책무다.


* 메모
- 남자는 ‘아우스바이스(증명서)’를 정성스레 작성했다. 그러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증오스러운 서명을 위협적으로 들이대는 그 잔혹한 맹금류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낫을 모아놓은 것 같은 갈고리 십자가가 풍기는 위압감을 완화하려는 듯, 왼쪽으로 기울어진 예쁜 글씨로 종이 좌측 하단에 감탄부호가 달린 단어 하나를 덧붙였다.

플뤼흐틀링에!

그래서, 순진하게도 에텔은 그가 그녀 가족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중략) 그것은 그녀 가족이 무엇인지를, 온갖 잡동사니를 가득 쑤셔넣은 고물 자동차 안 짐 사이를 끼어 있는 그 보헤미안 가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간단하게 한 단어로 요약한 것이었음을.
피난민!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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