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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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페나크 소설, 조현실 옮김, 몸의 일기, 문학과지성사


1. 1923년생 남자가 10대부터 80대까지 기록한 일기다. 일기라는 형식은 내면의 기록으로 작성자와 독자가 같은, 철저하게 1인칭 글쓰기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일기의 형식을 빌렸지만 내면보다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어나는 몸의 변화(퇴화)에 철저히 중심을 맞추고 남자의 딸(리종)에게 남기는 글이었다. 1인칭 화자(‘나’)의 지극히 솔직한 몸에 대한 관찰과 감정의 표현, 내연의 관계, 치부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이스카우트 활동에서 나무에 묶여 개미들의 밥이 될 뻔 했던 경험이 원체험으로 이 일기를 쓰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오랜 병석에 누웠다 돌아가신 아버지, 아들처럼 키워준 비올레트 아줌마, 손자 그레구아르, 단짝 친구(티조) 등 곁을 하나 둘 떠나가는 사람들과 남겨진 이의 내면과 글쓴이도 결국 많은 이들 곁을 떠나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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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


- 요즘 의사들은 몸에 손을 대려고도 하지 않더군. 의사들에게 몸은 아주 단순한 것, 세포들의 조합일 뿐이지. X선 촬영, 초음파 검사, 단층촬영, 피 검사의 대상, 생물학, 유전학, 분자생물학의 연구 대상, 항체를 생성해 내는 기관. 결론을 말해줄까? 이 시대의 몸은 분석을 하면 할수록, 겉으로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덜 존재한다는 거야. 노출과 반비례하여 소멸되는 거지. 내가 매일 일기를 쓴 건 그와는 다른 몸, 그러니까 우리의 길동무,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서란다. 11쪽


- 그때 이후(개미사건) 평생 써온 이 일기의 목표는 이랬다. 몸과 정신을 구별하고, 내 상상력의 공격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고, 또 내 몸이 보내는 부적절한 신호에 대항해 내 상상력을 보호하는 것. (중략) 난 엄마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 (중략) 그렇게 비명을 질러대면서도 내가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는 것을. 22-23쪽




- 장갑과 비누로 아이들을 씻길 때마다 매번 놀라게 되는 건, 그 조그만 몸들이 정말로 단단하다는 것이다. 두 아이의 이 보드라운 살갗 아래 감춰진 단단한 살 속엔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다. (중략) 인간은 극사실주의 속에서 태어나 점점 더 느슨해져서 아주 대략적인 점묘법으로 끝나 결국엔 추상의 먼지로 날아가버린다.



- 마침내 리종에게 남기는 글을 마무리했다. 글을 쓰는 건 지치는 일이다. 만년필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등정이요, 단어는 산이다. (86세 11개월 27일 2010년 10월 7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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