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시선 394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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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 2016
#나는한국인이아니다 #송경동



1.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 했던가. 송경동 시인이 7년 만에 새 시집을 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의 발성과 호흡의 노래가 리마스터링 되어 발매되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까지 김현식, 유재하, 김광석이 예민하고 들뜬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들이 가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노래에서 가사와 간주가 사라졌다. 먹고 사느라 여유가 없다는 생각조차 사치인 시대가 되었다. 송경동 시인은 우리 옆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같이 운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는 언제 그칠지 모를 비를 우리와 함께 맞고 있다.




어머니의 나라말, 13쪽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벌교 사람이었지만/ 어머니는 오랫동안/ 혼자 ‘여천떡’이었다// 이름이 따로 없다가/ 내가 학생이 되고서야 가끔씩/ 생활기록부 속에서/ ‘이청자’씨가 되었다// 밥도 부뚜막에서 혼자 먹고/ 늘 맨 뒤에서 허둥지둥/ 무언가를 이고 지며 따라오던 사람/ 모두가 잠자리에 든 뒤 들어왔다/ 새벽녘이면 슬그머니/ 빠져나가던 사람// 어디선가 빌려와/ 언젠간 돌려보내줘야 할/ 딴 나라 사람 같던/ 어머니// 가장 가깝고도 머나먼/ 소라와 조개가 많이 난다는 나라/ 어머니의 그 나라말을/ 우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시인과 죄수, 20쪽

천상병시문학상 받는 날/ 오전엔 또 벌 받을 일 있어/ 서울중앙법원 재판정에 서 있었다// 한편에서는 정의인 게/ 한편에서는 불법, 다행히/ 벌금 삼백만원에 상금 오백만원/ 정의가 일부 승소했다// 신동엽문학상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날 오후엔/ 드디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벅찬 소식을 전해 들었다// 상 받는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닌 듯 종일 부끄러운데/ 벌 받는 자리는 혼자여도/ 한없이 뿌듯하고 떳떳해지니// 부디 내가 더 많은 소환장과/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의 주인이 되기를/ 어떤 위대한 시보다/ 더 넓고 큰 죄 짓기를 마다하지 않기를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부분, 102쪽

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송경동이다/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파르빈 악타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국경을 넘어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투쟁이며 항쟁이다







2. 연미는 이 시의 구절이 좋단다. ‘모자’에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 모자를 쓰고 싶었다, 부분 65쪽

이제라도
바람에 휙 날려갈 수 있는 가벼운 모자를 하나
찡긋 윙크하며 깔깔깔 웃을 수 있는 즐거운 모자를 하나
한없이 건방져 보이거나 시크해 보이는 모자를 하나
언제라도 표표히 떠날 수 있는 유목민의 모자를 하나
갖고 싶은데······ 둘러봐도
내가 꼭 쓰고 싶은

그런 멋진 모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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