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똥 내 밥
김용택 지음, 박건웅 그림 / 실천문학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동시집 "내 똥 내 밥", 김용택 글/박건웅 그림, 실천문학사



1. 음력 설이 코 앞이다. 까치가 생각난다. 까치는 다른 새들과 달리 높은 나무에 둥지를 튼다. 어미는 수백 개의 잔가지를 모아 둥지를 만드는데 지붕(둥지 뚜껑)까지 있는 튼튼한 집이다. 누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왠지 까치 집은 그대로 나무 위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히는 줄 알면서도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대로 였으면 좋겠다.





-- 콩 세 개, 14쪽

할머니가 콩 셋을 땅에 심는다// 한 알은 하늘을 나는 새 주고// 한 알은 땅속에 사는 벌레 주고// 한 알은 땅 위에 사는 사람이 먹고


2. 몇 년 전 수원 큰아버지 댁으로 차례와 제사를 가져와서 이번 설에는 창원에 계신 부모님이 합천의 할머니를 모시고 오신다. 예전만큼 할머니댁에 자주 못간다. 할아버지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인 2001년에 돌아가셨다. 혹여 죽어서라도 자식들 고생 시킬까봐 돌아가시기 수 년전에 뒷산에 알밤같은 봉분 2개 만들어 놓으셨다. 당신이 돌아가시면 뚜껑 열어 관만 넣으면 된다고 웃으셨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정정하셨는데 얼마전 콩팥이 안 좋아서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셨다. 멀다는 핑계로 찾아뵙지도 못하고 기어이 할머니께서 큰아버지댁으로 올라 오신단다. 몇 번의 겨울을 보내면 할머니도 할아버지 곁으로 가시겠지. 뒷산에 풀이 자라겠지.





--- 오래된 밭 이야기 123쪽

강 건너 산에 밭 하나 있습니다/ 빈 밭입니다// 강 건너 산에 밭 하나 있습니다/ 젊은 농부 부부가 들어섰습니다/ 파릇파릇 고추가 자랍니다// 강 건너 산에 밭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밭 가에서 놀고 붉은 땅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리가 노랗게 익었습니다// 강 건너 밭 가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밭 윗머리에 무덤이 하나 생겼습니다/ 할아버지가 죽었습니다/이따금 할머니가 혼자 하루 종일 감을 땁니다// 강 건너 산에 밭 하나 있습니다/ 감도 다 따가고 밭이 텅 비었습니다/ 할머니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얀 눈이 옵니다/ 할아버지 무덤 위에도 둥그렇게 눈이 쌓였습니다// 강 건너 산에 밭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밭 위로 꽃상여가 가더니/ 둥그런 무덤 옆에 무덤이 하나 또 둥그렇게 생겼습니다/ 할머니도 죽었습니다// 강 건너 산에 밭이 하나 있습니다/ 봄이 와도/ 밭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풀만 자랍니다/ 풀만 우북하게 자랍니다// 밭이 산이 되었습니다







3. "인간은 동물이다."는 참이다. "모든 동물은 인간이다."는 거짓이다. '모든'이라는 글자를 빼면 어떨까? "동물은 인간이다."는 참일까 거짓일까. 다람쥐 이야기를 읽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일부다처제 사회의 다람쥐는 여럿 각시를 부양할 의무를 진다. 그들과 함께 '닥치는 대로' 알밤, 도토리를 주워 모은다. 정상적인 동물의 생태에서, 동물들은 인간과 달리 굶주림을 해결하고 겨울잠을 자는 동안 견딜만큼의 먹이만 모은다. 수놈은 각시들을 내쫓고 눈 먼 각시만 데리고 산다. 측은지심의 발현일까? 역시 아니었다. 제 배만 채우고 눈 먼 각시에게 썪은 도토리만 골라주었다. 분명 다람쥐 이야기인데 뜨끔한다. 내가 수놈 다람쥐 같이 살았거나 적어도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동물은 인간이다"라는 명제에 대해 자신있게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도록, 수놈 다람쥐가 되지 말아야 겠다.




---- 다람쥐 이야기 138쪽 전문

가을이 되면요 수놈 다람쥐가요 예쁜 각시 미운 각시 여럿을 얻는대요. 그래 가지고요 각시 다람쥐들 다 데리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 돌아다니며 알밤, 도토리, 상수리를 닥치는 대로 다 주워 모은대요. 그리고 찬 바람 불고 눈 올 때 되면요 각시들을 다 내쫓아 버리고 눈먼 각시 하나만 데리고 산대요. 밥 때가 되면요 자기는 상처 없는 좋은 알밤과 상수리만 골라 먹고 눈 먼 각시에게는 벌리 먹은 도토리나 상처 난 상수리나 못난 알밤만 골라 준대요.



4. 곤히 단잠 자고 싶은 오후다.



밤을 주세요 140-141쪽 전문

불 좀 꺼주세요/제발불 좀 다 꺼주세요/캄캄한 밤을 주세요/ 쿨쿨 자게 잠 좀 자게/ 밤을 주세요/ 깊은 밤을 돌려주세요/ 하루 저녁만이라도/ 불빛을 다 끄고/ 깊고 깊은 잠을 자요//나무도 풀도 사람도 매미도/물고기도/밤하늘에 별도/깊은 잠을 자게/밤을 주세요/아무 곳도 못 가고/아무도 못 오게// 먹빛같이/ 캄캄한 밤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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