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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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3
#시간의향기 #한병철 #사색



1. 철학자 한병철의 가장 유명한 책은 '피로사회(2010)'다. '시간의 향기'는 '피로사회'의 전작으로 후근대사회가 야기한 문제들을 시간적 차원에서 고찰한 저작이다. 제목과 부제를 통해 책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해보면,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가속화의 원인은 사물을 지배,조종하는 근대적 세계관에 기인한 것이고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향기'와 '시간적 중력'을 회복해야 한다. 머무름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색적 삶, 비타 콘템플라티바(vita contemplativa)에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2. 저자의 의견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겠지만 기존에 가졌던 내 생각과는 다른 부분들이 흥미로웠다. '느리게 살기'가 유행인데 한병철은 '느리게 사는 것'은 가속화에서 파생된 현상이지 대안은 될 수 없다고 한다.



-- 한병철에 따르면 이러한 사색적 삶은 이른바 느리게 살기와는 다르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이 직면한 시간문제의 원인을 근대 이래 다양한 층위에서 진행되어온 삶의 가속화 과정으로 환원하는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다. 가속화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생각은 결국 속도를 포기하는 느리게 살기에서 삶의 대안을 찾게 된다. .... 가속화라는 현상은 세계를 인간 의지에 따라 조작하고 지배하는 활동적 삶을 인간 존재의 유일무이한 가치로 보는 세계관의 파생적 결과일 뿐이다. 11쪽



이른바 느리게 살기 전략으로는 이러한 시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런 전략은 심지어 본질적인 문제를 은폐하기까지 한다. 17쪽


: 느리게 살기 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리게 사는 것도 어쨌든 활동적 삶이라는 홍수에서 조금씩 떠밀려가다가 결국 익사하는 결론이 예정된 삶이기 때문이다. 활동적 삶에 대항하는 '적극적 사색'와 '일단 멈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 친구나 직장동료들끼리의 대화에서 "엊그제 만난 것 같은데 벌써 몇 년이 흘렀다"는 말을 곧잘 한다. 하루하루는 그리도 시간이 안가는데, 왜 몇 년은 후딱 갈까? 직장인처럼 규칙적인 업무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특히 이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명의 발전과 함께 기계화, 자동화는 진진되고 여가 시간은 많아진 것 같은데 왜 피곤함은 더해갈까? 왜 점점 삶이 팍팍하고 힘들게 느껴질까? 이 책에서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물의 생산과 소비는 노동의 주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으로서, 사물 곁에 사색적으로 머무르는 태도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바로 오늘의 사회야말로 완전히 노동의 주체가 되어 버린 인간이 저 자유로운 시간, 노동의 시간이 아닌 시간을 감동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점점 증가하는 생산성은 점점 더 많은 여가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여가 시간은 더 고차적 활동을 위해서도 쓰이지 않고, 한가로움을 위해서도 쓰이지 않는다. 그 시간은 일에서의 회복이나 소비에 사용될 뿐이다. 일하는 동물은 쉬는 시간만 알 뿐, 사색적 인식에 대해서는 무지하다."160-161쪽


: 운동선수가 30대 중반에 은퇴식을 한 뒤 다음날 깨면 허무함을 느낀다. 매일 가던 직장인 운동장에는 더이상 선수로 갈 수 없다. 여가 시간이 무한정 생겼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그동안의 활동적 삶이 자아를 갉아 먹은 것이다. 영리하게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뜻있게 쓰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은퇴자는 자영업을 하거나 진로를 정하지 못해 시간과 돈을 까먹는다. 사색적 삶의 훈련을 평소에 하지 않은 탓은 아닐까.



4.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멈추고, 사색하고, 머물러야'한다.



후기의 하이데거는 행위의 강조를 철회하고 이와는 전혀 다른 세계와의 관계를 옹호한다. 그것의 이름은 “느긋함(Gelassenheit)"이다. 느긋함은 결연한 행동에 맞서는 ”맞쉼(Gegenruhe)"으로서,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계 속에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준다. “머뭇거림” “수줍음” “자제” 등도 행위의 강조와 맞서는 표현들이다. ... 깊은 권태는 과도한 활동성, 어떤 형태의 사색도 알지 못하는 활동적 삶(vita activa)의 이면이다.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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