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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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음과 눈물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



1.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꼬마는 울어제끼기 시작했다. 거리를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 내 편은 없구나, 내 편인줄 알았던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공포는 엄습한다. 엄마가 나를 잊은걸까?

"이놈새끼, 내가 그 자리에 가만 있으라고 했지? 어? 왜 말안들어!!"



엄마는 4번타자처럼 손바닥으로 수박만한 엉덩이를 두드려 팼다. 엄마는 원심력을 몰라도 허리의 반동과 손목스냅을 사용할줄 안다. 엄마는 물리학자다. 꼬마는 또 울어재낀다. 엉덩이에 전해지는 찌릿한 고통과 엄마가 사라진 찰나 느낀 그리움, 엄마가 나를 잊지 않았고, 나는 엄마를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은 눈물에 버무려졌다. 짠맛과 쓴맛 단맛이 모두 난다.


2. 잊음은 잃음이다. 연인이 헤어질 때 흘리는 눈물을 악어의 눈물로 매도하지 말자. 상대와 함께 했던 추억의 시간들이 내 앞에선 사람의 왼쪽에서 오른쪽눈으로 지나가고 상대의 등을 보는 순간 잊음과 잊혀짐의 시간이 시작된다. 모래시계에 담긴 기억의 모래 알갱이의 숫자와 굵기만큼 사람마다 잊음의 속도는 다르다.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말자. 과거의 끔찍한 기억의 사금파리들을 잊으려할수록 기억이 더 선명해지기도 하니까.



3. 상대를 가정한 잊음과 잊혀짐의 문제가 아닌, '나'를 잊고 잃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증이 소재로 밥먹듯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얘기가 내 문제가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점점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됐을때, 열심히 색칠했던 물감이 벗겨지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

파트릭 모디아니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주인공은 '나'를 찾아 나섰다. 별 볼일 없는 흥신소의 탐정이라도 탐정일텐데, 계속 헛다리만 짚는다.

나는 누구일까? 기 롤랑? 페드로 멕케부아? 스테른? 하워드 드뤼즈? 프레디?

아드리아네의 실타래는 자꾸 꼬여만 간다. 
흥신소 사장이었던 '위트'가 주인공에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183쪽)

과거를 잃은 현재는 잊혀진 과거의 또다른 얼굴이다. 마찬가지로 미래는 잊혀지고 잃어버림이 예정된 현재다. 개인이든 국가든 과거를 잊은 존재는 미래도 없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누구인가' '집단과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천착해 온 이유다.



4.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었지만 선뜻 책의 메시지가 와 닿지 않았다. 머리속은 뒤엉키고 앞 쪽에 배치된 단서들은 기억속에서 증발했다.

망각은 피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잊혀지고 싶지 않다. 잊지 않고, 잊혀지지 않고, 잃지 않기 위해 읽는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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