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틀릴 것 같은 예감의 쾌감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를 읽고




1. 250여 페이지를 시속 250킬로미터로 달리다가 급작스레 뛰어든 노루 한마리를 보고 급제동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압축적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문체로 간결해서 책장이 잘 넘어간다. 잘 닦인 아우토반에는 감시카메라가 없다. 전속력으로 돌진하다 마지막 장에 부딪혀 나뒹구는 쾌감을 느끼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2. 동창생인 토니와 에이드리언, 토니의 여자친구 베로니카와 베로니카의 엄마가 중심인물이다. 토니와 베로니카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 토니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베로니카와 섞을려고 안달이다. 몸을 말이다. 

"왜 나랑 하기 싫어?" "그러면 안될 거 같아서" 무슨 말이 필요한가. 

사실은 몸을 섞을 수 없다는 사실보다 둘 사이 더 큰 문제는 생각과 가치관을 섞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베로니카는 학창시절은 물론 60대에 접어든 때에도 토니를 그저그런 놈으로 취급한다. 토니가 그저그런 놈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자신을 가리켜 '전 세계를 통틀어 이 정도로 가망이 없기도 힘들 사람에게 궁상 맞은 애정을 갈구할 정도로 맛이 간 멍청이 늙다리'로 자조할까?



토니는 베로니카의 집을 방문해 부모님을 뵙는다. 가족들은 토니를 경계하고 은근히 무시한다. 베로니카의 어머니는 토니에게 딸에게 많은 것을 내주지 말라는 취지로 경고를 하기도 하는데, 분명 뭔가 있다.



3. 토니와 달리 에이드리언은 명석한 두뇌를 가졌고 깊은 사유의 향기를 풍기는 남자다. 에이드리언은 캠브리지를 갔고, 그렇게 소식이 끊겼다. 어느날 토니는 편지를 받는다.



첫번째는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보낸 것인데 편지를 통해 에이드리언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에이드리언이 남긴 일기장의 일부를 보게 되어 베로니카에게 현재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일기장을 달라고 끈질기게 설득한다. 


또다른 편지는 에이드리언에게서 이전에 받은 것으로, 베로니카와 사귀게 된 것을 이해해달라는 내용이다. 토니는 저주의 답장을 보냈는데,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고 자책하고 베로니카에게 사과한다. 


노년에 재회한 두 남녀와 친구의 죽음. 그리고 에이드리언의 아들과의 만남과 반전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한다. 




4. 이 소설의 대단한 이유는 단순한 통속적인 이야기를 넘어선 역사와 철학을 그 속에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에 나오는 에이드리언과 역사선생님의 토론배틀의 긴장감은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 


'1차대전의 의미? 모르겠다. 역사는 주관적 의문과 객관적 해석의 대치인데 우리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사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27쪽)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34쪽)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역사는 살아남는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101쪽)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111쪽)



'더하는 것과 늘어나는 것은 다른 것'(153쪽)




삼국사기는 백제를 폄하하고,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도전은 탐욕적인 인물로 그리며, 태종과 세조의 업적은 칭송한다. '징비록'을 쓴 서해 유성룡은 '적자생존' 즉 적는 자만 살아남는다는 법칙에 의해 미화되기도 한다. 고려의 충신으로 알고 있는 정몽주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었으며, 유성룡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순신을 정치적 고려에 의해 위기에 내몬 사실은 주목하지 않는다. 



책을 읽어 나가며 생각은 역사속으로 저만치 날아가고 있다.


한 남자의 '틀린 예감'을 통해 역사와 철학까지 맛볼 수 있는 수작임에 틀임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