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락앤락 아산공장 곳곳에는 주부사원들이 낸 아이디어들이 숨어있다. 생산라인에서 최상의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 ‘작은 혁신’으로 불량률을 낮추고 안전사고를 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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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앤락’의 뉴패러다임 실험 2년
지난 18일 락앤락 아산공장에서 만난 허난순(43)씨는 “지난 주말 배를 타고 군산에 다녀왔다”며 “꿈도 못 꿨던 가족 여행을 하게 된 게 다 혁신 덕분”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딸 여섯과 막내아들을 키우느라 빠듯한 살림 탓에 5년 전 락앤락에 취직해 아산공장을 다니고 있다. 초기 3년은 하루 12시간씩 주 6일 근무를 마치면 피곤에 절어 아들을 한번 안아주기도 벅찼다. 그러나 ‘혁신’은 허씨의 일상을 크게 바꿔놓았다. 주간 근로시간이 72시간에서 56시간으로 줄었다. 한달에 하루는 회사에서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남는 시간은 아이들 차지다. 허씨네 텃밭의 상추와 깻잎은 싱싱하고, 아이들은 엄마가 쉬는 날을 꿰고 있다.
허씨가 말한 ‘혁신’은 가정용 밀폐용기 제조업체 ‘락앤락’이 2년 전부터 추진한 ‘평생학습 체계의 구축’을 말한다. 2004년 인천·아산 등지의 공장을 통합하면서 종업원 306명 중 50여명의 여유 인력이 발생해 고심하던 락앤락은 정리해고 등 손쉬운 방법 대신 근무조 개편을 단행했다. 대부분의 플라스틱 사출업체들이 하는 2조 주야 맞교대 방식을 버리고, 종업원들을 3개 조로 나눠 각각 4일 동안 12시간씩 근무하고 이틀간 쉬게 했다. 또 한달에 하루는 8시간 동안 인성·안전·품질관리·건강 교육을 받게 했다. 고가의 사출 장비가 휴일 없이 돌아가니 회사에도 이익이 됐다. 그리고 무뚝뚝하던 주부 사원들이 점심시간이면 수다스러워졌다.
교육시간에 아줌마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느끼는 불편과 개선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절차 등을 줄여 생산 효율을 높이는 효과가 쏠쏠했다.
예컨대 제품 포장을 맡는 생산2부 사원들은 크기가 다른 반제품을 색깔이 다른 비닐에 담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반제품은 표면에 흠이 생기지 않게 비닐을 씌우는데, 색깔별로 구분하니 손놀림이 전보다 빨라졌다. 또 플라스틱 사출기에서 나온 제품을 검사하고 마무리 공정을 하는 생산1부에서는 상자 받침대에 바퀴를 달아 힘든 일을 줄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평생학습 모델 도입 전인 2005년 1~6월 각각 143건과 56건이던 품질 불량과 소소한 안전사고 건수가 이듬해 같은 기간엔 59건과 16건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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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2부의 정희천 대리가 주부사원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크기별로 색깔을 달리한 반제품 보호용 비닐을 보여주고 있다.(왼쪽) 교육훈련일을 맞은 주부사원들이 전문강사의 지도 아래 ‘몸살림 체조’를 따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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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혁신’에는 진통이 따른다. 2005년 7월 락앤락이 근무조 개편을 단행할 무렵, 회사가 벌인 설문조사에서 찬반 비율이 40% 대 33%로 팽팽하게 나왔다. 주부 사원 서너명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충분한 휴식은 매력적이지만, 월급이 줄어든다는 걱정이 컸던 것이다. 2년 전 퇴사했다가 최근 재입사한 양순남(37)씨는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처지라 한달에 5만~10만원 월급이 줄어드는 게 큰 걱정이었다”며 “그러나 식당일 등을 하며 다른 공장들의 열악한 환경을 보니 회사로 돌아올 결심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기획본부의 최영철 부장은 “사출기를 맡는 생산1부 쪽은 전에는 한해 4분의 1 정도가 얼굴이 바뀌었는데, 지금은 무단결근이나 이직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교육훈련은 직장 분위기도 바꿨다. 유한킴벌리에서 3년 전 락앤락으로 옮겨온 윤조현 공장장은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일에 찌들어 목석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연간 96시간씩 안전·품질관리는 물론 중국 문화 강좌 같은 교양 학습을 받다 보니 직원들끼리 화제도 풍성해졌고, 팀별 회식 자리도 활기를 띠게 됐다. 거래 은행의 지점장에게 듣는 재테크 강좌와 건강관리 프로그램도 큰 인기를 끌었다.
회사 경영진은 락앤락의 변화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기계가 일년 내내 돌아가고 종업원들의 애사심도 높아졌으니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김준일 회장은 “한국에서 제조업이 힘들다고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로 간다고 하는데, 후진국들도 기피(3D)업종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라며 “한국에서 사양산업이다 샌드위치다 하는 제조업 분야도 ‘뉴 패러다임’으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