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방통 나눗셈, 귀신 백과사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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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백과사전 - 고전 속에 숨어 있는 우리 귀신 이야기
이현 지음, 김경희 그림, 조현설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8월
평점 :
어렸을 적 우리집 바로 아랫집에 자주 놀러 다녔다. 딱히 또래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시골이라서 그런지 아무 집이나 놀러가서 머물다 오곤 했었던 것 같다. 아랫집 식구는 할머니와 딸인 결혼하지 않은 언니로 단촐했다. 그러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후부터 오빠들은 아랫집에 할머니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말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때부터 저녁만 되면 바깥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고 행여 그 앞을 지나더라도 눈을 감은 채 빠르게 달려서 지나가곤 했다. 그때가 여섯살 정도였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을 때까지 무서움증은 사라지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말이다.
여기 특이한 책 하나가 있다. <귀신백과사전>. 동물백과사전, 식물백과사전, 곤충백과사전은 보았지만 귀신백과사전이라니 호기심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고 무서우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생긴다. 그런데 기우다. 읽다보니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올해들어 읽었던 우리나라 신화에 관련된 내용들도 담고 있어서 오히려 우리 문화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기분이다.
책장을 넘기면 일러두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 혹여 무서울거란 생각이 사라진다. '18 금'이라는 표시를 보고 18세로 오해해선 안된다. 만 18개월 미만의 유아를 칭하는 것으로 보호자의 독서 지도가 필요하다는 경고다.
내용은 3개의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제1부는 우리 조상들이 들려주는 사후 세계의 비밀로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로 저승가는 길과 염라국에 들어가는 과정이 나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 육신을 떠나야 하는데 그렇게 육신을 떠난 영혼이 귀신이다. 그렇다면 귀신은 어디로 가야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승의 안내자인 저승사자를 따라가면 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한 번의 죽음을 겪기 때문에 저승가는 길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미리 저승 가는 길을 외워 둔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저승는 서쪽에 있다. 나침반으로 서쪽을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열두 고개를 넘으면 황천강에 도착한다. 바리공덕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찾아 길값을 내고 황천강을 건너면 저승이다. 여기에는 세 갈래 길이 있는데 극락, 지옥, 서천서역국으로 그 갈림길의 입구에 염라국이 있다.
저승에 들어간 귀신은 염라국으로 가서 염라대왕을 만나 자신이 때에 맞추어 죽은 것인지 확인해야 하고(저승에서도 실수는 있다) 이승에서의 잘잘못에 따라 극락행인지 지옥행인지 판정받아야 한다.
제2부는 우리 조상들이 들려주는 인생살이의 지혜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로 여러 귀신들을 종류별로 나눠서 알려주고 있다.
손각시, 몽달귀, 객귀, 여귀 등 원한이 맺힌 채 죽은 귀신인 원귀는 일단 원한을 풀게 되면 저승으로 떠난다고 한다. 호국신은 나라를 지키는 귀신으로 귀신 중에서도 격이 높아 호국귀가 아니라 호국신이라고 부른다. 호국귀에서 으뜸은 단연 단군이다. 조상신은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귀신으로 저승에서도 후손들을 늘 보살피고 있으며, 그런 조상신에게 보답하고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죽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은 귀신인 사랑귀론 선덕여왕을 사모한 지귀가 있다. 죽어서도 은혜를 갚은 귀신인 보은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 죽어 귀신이 된 동물귀, 천연두를 퍼트리는 일을 담당하는 신으로 마마신이 있으며,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귀신들도 있다. 이렇게 많은 귀신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찜찜한 기분이 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마 적어도 집 안에서라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성주신, 삼신, 조왕신, 터주신, 문간신, 안당신, 업왕신 등 집 안 곳곳을 지켜주는 가신들이 있으니까!
정확한 통계 수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만 우려 1만 8천여 귀신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귀신이 존재할 것으로 예측된다. 귀신을 퇴치하는 방법으론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워두거나 초복에서 말복 사이에 팥죽을 먹어야 되며 붉은 색을 가까이 하고, 귀신을 만나면 왼발로 세 번 세게 구르며 큰 소리로 기침하고 침을 뱉으면 귀신이 도망간다고 하니 기억해 두자.
제3부는 우리 조상들이 들려주는 우리 신의 세계로 '귀신 말고 그냥 신!'이다.
평범한 귀신들은 염라국의 심판을 맏거나 이승을 떠도는 게 고작인데 하늘을 다스리는 친지왕으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받는 신들도 있다. 이 세상을 지켜 주는 대표적인 우리 신들로는 저승을 다스리는 대별왕, 죽은 영혼들이 죄를 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도와주는 오구신 바리데기, 저승사자의 우두머리로 그 유명한 삼천갑자 동방삭을 잡아들인 강림도령, 해를 지키는 해신 사만이, 집터를 지켜주는 가신 막막부인이 있다.
<귀신백과사전>을 읽고 '내가 귀신이 된다면'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우선 평소에 해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먼저 내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의 목록을 적어서 그 사람들에게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고(원귀?), 입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할 수 없었던 과감한 옷들도 입어보고 싶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이곳 저곳도 떠돌아 다녀보고 싶고, 욕심에 눈이 멀어 남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 앞에 시시때때로 나타나 심신을 허약하게 만들고도 싶다. 그러다 비슷한 처지의 귀신을 만나 친구로 삼아도 좋을 듯 하다. 그러고도 심심해지면 그제서야 염라대왕을 찾아가도 좋을 듯 하다.
나중에 염라대왕 앞에서 떨지 않도록 평소에 마음 씀씀이를 곱게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