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척 멀리 왔네....

그제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고,
저녁에는 FTA 저지를 위한 촛불 문화제를 다녀오고,
밤에 깔개를 만들면서
오랜만에 Andrew Lloyd Webber의 Royal Albert Hall 공연 DVD를 틀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 공연에는 내가 20대 초반까지 친숙했던 것들이 그대로 있었다.
음악이 있고,  기독교 메시지가 있고,  서양 문화의 밝은 얼굴이 있었고,
삶에 대한 긍정과 평화의 메시지가 있었다.

문득 지난 20년간 참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실기시험 후에 처음으로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되게 되었을 때의 어리둥절한 느낌이 생각났고....
엑스트라까지 흥에 취해 공연에 몰입하는 모습이 부러웠고.....


한때 나의 생각이나 행동의 근간이었던 기독교.
모태신앙이었던 기독교 세계관을 벗어나 낯선 세계를 모험할 결심을 했을 때의 두려움....
아마 모태신앙이 아닌 사람은 모를거다.
낙원을 떠나 사막으로 나가는 데는 사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랬었는데.....
지금은 기독교가 나에게 제공했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만 남았을 뿐.
이제는 극단적인 환원주의에도 거부감이 없다.
스스로 '다원주의자'라고 하는 것.... 그조차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고등학생 때 택시를 탔다가 운전기사 아저씨랑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한참 이야기 하다가 그 아저씨가 나에게 말했다.
"학생.  학생에게는 아직 저 하늘이 파랗게 보이지?" 

그랬다.  그때는 세상이 파랗게 보였었다.
지금은? .......    음.......  글쎄.

20년 후에는 또 어떻게 보일까?   


2.  3일째 새벽 3시 취침.

그 '깔개'를 만드느라 이러고 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네. 
깔개 속에 솜 넣느라 팔도 아프고....
안하던 재봉틀 붙잡고 씨름하느라 허리도 아프고......
덕분에 몇 안되는 영화 dvd 좌르르 복습 중임.

오늘 밤에는 완성이 될 듯. ....... 기대하시라.....

한가지 확실한 것.
이 깔개, 두 개는 못만들 것 같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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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4-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기대하겠습니다.

瑚璉 2006-04-13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 학생에게는 아직 저 하늘이 파랗게 보이지?"
-> 그 기사분이 요즈음의 황사를 예견하신 게 아닐까요? (휙~)

hnine 2006-04-1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이 옷을 만드시고, 뜨개질을 하시고, 기발한 공작품(?)을 만드시고 하는 걸 볼때마다, 그게 단순히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의미로 보인단 말입니다 저는.

가을산 2006-04-13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하이드님/ 결과야 어떻든.... 고생하고 있으니까...... 고맙습니다요... 애고 허리야... ^^

호리건곤님/ 에..... 하늘(오늘 하늘 말고)은 파란 거 맞는데, 그걸 파랗게 보지 못하는 제 맘이 문제겠지요?
20년 후엔 '역시 파란 것 같아'라고 할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hnine/ 앗! 그 거대한 부수효과를 벌써 간파하셨나요?
그게 뭐시냐..... 배둘레 지방의 증식에 탁월한 효과가 있더라구요.

瑚璉 2006-04-1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 님, 배둘레햄은 공작활동에 의한 게 아니고 자연증식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공작활동으로 배둘레 지방이 증식했다는 것은 잘못된 인과관계의 설정이자 공작활동에 대한 음해라고 주장하겠습니다(-.-;).

객담은 이 정도로 하고, 마음 문제를 말씀드리면 마음을 마음대로 다스린다면 그건 이미 초인이겠지요? 저는 일체유심조란 말외에 일일호일이라는 말을 마음에 넣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호랑녀 2006-04-1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불과 2년 전, 다른 학교에서 근무할 때랑도 이렇게나 다른데요, 제가...
난 어쨌더라? 고등학교 때?
그 시절만 벗어날 수 있다면 한 10년쯤 목숨을 떼줘도 상관 없을 것처럼 느꼈습니다. 지금은...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10년은 너무 많고, 한 1년이라면 줄 수도 있으려나...^^

클리오 2006-04-13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개는 못만들겠다고 미리 못을 막으셨으니 욕심나도 그만... ^^

ceylontea 2006-04-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기대되요.. 깔개... 고생하신 만큼... 아주 잘 사용하실테니 기운내세요.

가을산 2006-04-1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리건곤님/ 객담은 이정도로 하고.... 빨리 '국민의 뜻'에 따른 이벤트 공지 하셔요... 얼마나 다양한 상상의 그림들이 나올지 기대가 큽니다.

호랑녀님/ 전 20년 전에는 빨리 40이 되었음 했었답니다. 그때가 좋은 줄도 모르고... ^^

클리오님/ 나중에 만드는 법은 확실히 올리겠습니다요... ^^

실론티님/ 고마워요. 화이팅 하겠습니다요.

마태우스 2006-04-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년 후에 님은 60이시군요. 그때 전 50대...으음... 그래도 하늘은 파랗겠죠 뭐

마립간 2006-04-1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넋두리

1 무척 멀리 왔네...

어렸을 때 교회 다닐 때도 이해도 동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제가 이해하리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김세환의 포크 송이나 레이프 가렛의 팝송 임희숙의 재즈 풍의 노래를 들으며 어른이 되면 얼마나 많은 음악을 들으며 가슴 설렘을 느낄까 했지만 아직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리 상상을 해도 내가 결혼하고 가족을 갖는다는 것을 떠오르지 못하고 있을 때 시간이 가면 해결해 준다는, 그리고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고 가족을 갖는다는 주의의 격려도 있었지만 아직도 혼자고

꿈을 꿀 때 파란 하늘이 보였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세상은 아직은 아니지만 올바르게 그리고 올바른 목표로 움직인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지 꿈속의 하늘은 SF 영화에서 나오는 dystopia의 하늘이었다. 구름, 먼지, 공해에 찌는 안개.

피터팬 신드롬, 모멘탈리즘? 허무주의, 냉소주의

주위에 봄이면 찾아오는 제비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TBC 방송 이야기나 가수 이용복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멀리 오기는 온 것 같은데...

가을산 2006-04-1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하하.... '답으로 21년 후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님의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19년이라구요? 정말 못 당하겠습니다~~

마립간님/ 와~.... 저보다도 옛날 것들을 더 잘 기억하고 계신 듯 합니다.
혹시 세상은 멀리 왔는데 마립간님은 아직 그곳에 계신 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