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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소원칙
도정일 외 지음 / 룩스문디(Lux Mundi) / 2008년 12월
평점 :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를 필요로 하는 최근 우리 사회에 대한 사회 각계 전문가들의 반향을 아우른 것”으로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의 특별담화를 기록한 것이다. 글에 대해 나름의 일가견을 가진 분들을 초대해 그들의 ‘글’ 이야기를 들어본다. 김훈, 김영하와 같이 그 이름만으로도 글쓰기의 힘을 대신할 수 있는 소설가들부터 교수, 변호사, 평론가까지 여러 분야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물론 글을 쓰기위한 실천적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라는 책 제목처럼 글을 쓰기위한 최소한의 마음자세, 혹은 글쓰기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여러 인사들을 섭외하다 보니 아무래도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시작과 끝 부분의 작가들에 비해 중간에 삽입된 작가들은 비중이 떨어지는 것 같다. 글 자체도 어렵고 글쓰기라는 주제와 동떨어진 내용도 보인다. 일정량의 분량을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렇다고 책이 엉망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여기 책에서도 지적했듯 평하는 글을 적다보면 아무래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장점부터 이야기하는 게 순서겠지만 나 역시 전문적인 교육 없이 글을 쓰다 보니 적기 쉽고 말하기 쉬운 단점부터 들춰지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몇 몇 작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도정일 :
개인에게서 출발하는 일상의 글쓰기를 강조한다. 특히 학생들은 여러 실천적 방법을 통한 훈련으로 논술 부담을 떨쳐버리라 한다. 교육현장에서 오래 계셨던 분인지라 지금의 교육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많이 털어놓는다. 학생을 직접 마주하는 교사로서 독서나 글쓰기를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이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무런 준비도 없는 아이들에게 강압적이고 수동적인 글쓰기만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대담형식의 글 중간에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리, 요약하는 김숙이 교수님의 모습 역시 인상 깊다. 전체의 흐름을 염두에 두어놓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이끌어나가는 대화 기술은 서로를 무시한 체 자기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우리들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어쩌면 이런 대화 기술 역시 오래된 글쓰기를 통해서나 올 수 있는 산물이리라.
김훈 :
몇 해 전 독서토론회에서 봤던 그가 생각난다. 나지막하면서 어눌한 듯 이어지는 김훈님의 억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았다가는 무슨 말인지 놓쳐버리기 쉬운, 조금은 난해할 수 있는 말로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국어가 갖고 있는 모호함을 인문학에 대한 체계적 접근을 통해 과학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나 역시 우리말을 너무 함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지만 글자 한자 차이로 문장의 의미와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한 문장을 놓고 어떤 표현이 더 적당한지 갈피를 못 잡을 때도 많이 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위해 국문법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도 필요하지 싶다.
또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글쓰기에 대해서도 간단히 얘기한다. 칼럼과 에세이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최재천 :
통섭을 통해 학문 간의 소통을 이뤄내자고 말한다. 깊이 파려면 넓게 파려면 넓게 파야한다지만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넓게 파다가는 한도 끝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여럿이 함께 파자고 말한다. 각자의 분야를 파되 다른 사람의 분야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편협한 개인플레이로 치닫고 있는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복이 아닐까 싶다.
배병삼 :
고전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글쓰기를 말한다. 단어와 구절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에 놓고 낯설고 간결하게, 현실에 맞게 적으라 한다.
하지만 고전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배병삼 교수님의 글, <고전, 현재형으로 끊임없이 다시 써야 할 ‘오래된 미래’>는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겉돈다. 일단은 고전에 대한 나의 무지 때문이리라. 그리고 나를 이해시키지 못한 교수님의 글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
김수이, 이문재:
김수이 교수님은 일단 많은 글을 읽고, 많은 글을 쓰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긴 ‘결핍’과 ‘잉여’의 경험을 수사적이고 미학적으로 표현해보라고 한다.
이문재 교수님은 좀 더 실천적 방안을 제시한다. 메모하고 관찰하고 필사해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라고 한다.
하지만 글이라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수많은 문학 지망생이 존재하지만 세상에 빛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 독서와 사색이라는 오랜 담금질이 없이는 몇 페이지의 글도 채울 수 없는 것이 바로 글이다. 좋은 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학적 경험이 충만해야 할 것이고 이것을 스스로 소화하고 토해낼 수 있는 문학적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지 싶다.
아, 어려운 글쓰기여...
계속해서 박원순, 민승기, 이필렬, 차병직, 최태욱 님의 글 이야기가 쏟아진다. 하지만 다소 어렵게 다가오는 글도 있고 글쓰기라는 실천적 행위와는 멀게 느껴지는 글도 보인다. 초반부에 지닌 힘과 집중력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느낌이다. 비록 책의 말미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김영하 님을 불러 앉혔지만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마무리 짓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김영하 :
김영하 님의 잡기에서부터 최근의 소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까지, 글과 관련된 그의 오늘 날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한 정규교육 없이 어린 시절의 독서와 평범함에 대한 조율을 통해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확실히 다지고 있는 그를 보자니 부러움과 시샘이 몰려온다. 진지하면서도 기발함이 느껴지는 ‘힘’ 쎈 작가, 김영하.
글이란 확실히 부담스러운 존재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오는 경험의 재생산이나 한편의 글을 마무리 지었을 때의 뿌듯함도 크다지만 그에 못지않게 글쓴이를 고달프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머릿속에 맴도는 수많은 영상들을 단어와 문장이라는 기호로 표현하려다보면 머릿속이 절로 뜨거워진다.
하지만 하나씩 쌓이는 나의 결실들을 대할 때면 창밖에 뛰어노는 자식들을 보는 것만큼이나 흐뭇해진다. 수십 번을 고쳐가며 글을 다듬다가 자신을 마음에 딱 들어맞는 글을 찾았을 때의 즐거움은 글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리라.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도 글을 적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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