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 하느님>의 작가 조정래. 태백산맥에서부터 시작된 '민족의 회한'의 문학이 여전히 계속됐다. <오 하느님>이라는 탄념은 그 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지게 만든다. <이것이  인간이란 말입니까>.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가 뒤이어 떠오른 이유다. 안타깝게도 <오 하느님>의 비극은 '배타적 쇼비니즘'으로, <이것이 인간인가>의 비극은 '시오니즘의 폐쇄성'으로 돌변했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그러나 노란 얼굴의 독일군 포로는 그의 인적사항을 기재하던 미군 병사의 사무적이고도 신경질적인 질문에 단 한마디도 답할 수 없었다. 그는 히틀러의 독일어는 물론, 그가 속해 있던 동방대대 795부대의 웬만한 다른 병사들처럼 러시아어도 할 줄 몰랐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일본군이었지만 일본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누구도 모르는 언어, 일찌감치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모국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동북아시아 변방의 조그만 반도 출신의 소작농 아들이었다.”(p.219*<오 하느님>에 실린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평론<노르망디의 실종자> 중에서)

 To. 신길만 선생께.

 생전 한 순간도 편안한 적 없었던 당신, 저승에선 안녕하신지요. 당신은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았고, ‘개 같은’ 죽음을 당하셨더군요. 당신의 실제 모델이던 양경종 씨는 92년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는 설이 있다는데, 조정래 씨가 그린 당신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개 같았어요.’ 저속하기 그지없는 표현이라 화내지 마세요. <오 하느님>의 마지막 장, 그러니까 당신의 죽음을 그린 지면을 덮고, 전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개 같은 죽음이구나…’ ‘비참한’, ‘얄궂은’, ‘비루한’ 등등의 형용사는 당신의 죽음 앞에서 너무 미약한 단어라고 전 생각했던 거예요. 
 
 당신은 피식민 국가 조선에서 살았던 미천한 존재였어요. 당신이 일본군에 “강압적인 ‘지명’”(p.27)당했을 때가 스무 살이었다지요. 장가를 갈 수 있는 나이였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일찍 장가가 입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또 아버지와 똑같이 평생 가난 속에서 허덕일 것”이 분명해 “논 한마지기라도 장만할 때까지 장가를 미루고, 뼈 휘도록 일하기로 했”었다지요. 그런데 “덜컥 지원병 지명을 당하고 말”(p.13)았던 거고요.

 당신은 몽골에서 있었던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에게 잡히고 말았어요. 소련군의 포로로 있던 도중 당신은 소련군으로 복무할 것을 제안 받았지요. 말이 제안이지, 사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요. “길은 외길이었다. 소련군이 되지 않으면, 다시 일본군으로 돌아가야 했다.”(p.83) 이후 당신은 소련인 신 미하일이 돼, 독일군을 상대했어요. “독일군이 일제히 소련을 공격하기 시작”(p.94)함에 따라 혹독한 시베리아를 횡단하였고요. 그리고 모스크바를 사십 킬러미터 뒤에 둔 소련의 한 지역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당신은 독일군에게 잡혔어요.

 독일군 포로가 된 이후의 생활은 예전 소련군 포로였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지요. 조금 더 고역스러운 잡일에 시달렸고 쓰레기보다 못한 음식을 집어삼켜야 했지만, 그 신세의 얄궂음이란 똑같은 것이었다고요. 게다가 소련군과 마찬가지로 독일군도 당신에게 명령을 했다지요. “좋아. 그럼 우리 독일군으로 근무하도록 하라!”(p.165) 당신은 별다른 주저 없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p.166)라고 대답했어요. “여기서 살아나가야” 했으니까.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 했으니까 말이죠. “대답을 하는 순간” 당신은 “이 생각만을 꽉 붙들고 있었”(p.166)다지요.

 당신은 노르망디에 갔어요. “덴마크라는 나라에서부터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해안까지 몇천리에 걸쳐 ‘대서양 방벽’이라는 것을 설치하고 있”(p.179)던 독일군에 합류한 것이예요. 쇠기둥을 박고, 벙커를 만들던 도중 노르망디전투에 투입된 미군에 의해 또 다시 포로가 됐어요. 미군 포로 때의 생활은 예전과는 달랐다지요. “아무런 통제나 간섭없이 자유로웠다”(p.187)고 해요. 그래서 당신은 “언젠부턴가, 다른 나라에 비해 포로를 월등하게 사람 대접 해주는 미국에 강한 기대를 품”(p.187)게 됐고요. “이런 나라라면,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바로 우리나라로 보내줄 것 같았”(p.188)다고 여겼다지요. 당신과 동료들은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썼습니다. “우리는 쏘련인이 아니다!”, “우리는 조선인이다!”, “우리의 국적을 고쳐달라!” 그렇지만 당신의 요구는 쇠고랑은 묵살됐어요. “유감스럽지만 국적을 고칠 수 없다. 그건 쏘련의 권한이지 우리 미국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간결한 말 한마디에 의해 말이죠.

 "독일의 패색이 짙은 가운데 얄타 회담이 열렸”고 “스탈린은 미국에 수용되어 있는 독일군 포로들 중에서 국적이 소련인 자들을 전부 소련으로 송환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해요. “미국 대통령은 그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고요. “독일군에게 잡힌 미군 포로들이 동유럽의 여러 수용소에 칠만오천 명쯤 갇혀 있었는데, 이제 그 지역이 소련의 점령하에 있었던” 까닭이지요. “미국은 자국민 포로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급선무였”(p.207)던 거예요. 당신은 배를 다시 소련으로 갔어요.

 “(중략)“여기서 삼십 분 쉬어 간다. 모두 내려 트럭선(線) 안에서 소변도 보고 자유롭게 쉬어라”
   장교들이 트럭에서 내리는 포로들에게 일렀다. 사병들은 트럭 사이사이에 서서 포로들을 분지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나무들 많은 야산으로 에워싸인 그 분지는 수많은 포로들이 용변을 보면서 휴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지막 트럭에서 포로들이 다 내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타당탕탕탕탕……
  타당타타타타……
  드득드드드드……
  야산 숲 속 여기저기서 기관총 난사가 시작되었다. 한가롭게 쉬고 있던 수많은 포로들은 아우성과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나뒹굴고 뒤엉키고 있었다."(p.213)

 작가 조정래는 당신의 마지막을 이렇게 묘사하며 끝냈어요. 당신의 운명처럼 기구하게, 허망하게 말이죠. 


 "이 남자는 일본군으로 징집되었다. 1939년 만주 국경 분쟁 당시 소련군에 붙잡혀 붉은 군대에 편입되었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 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로 붙잡혔을 당시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신길만 선생님. 작가 조정래를 통해 당신의 이야기를 접한 후 전 '민족주의'에 대해 생각했어요. 당신의 행로 중간 중간 강력히 자리매김하고 있던 '민족의 끈'을 봤어요.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놀랄 일이 벌어졌다. 조선말을 듣고 온 것은 강명수만이 아니었다.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길만과 천일호가 따로 찾으러 나서고 어쩌고 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모두 열한명이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손을 마주 잡는 순간에 십년지기가 되고, 한 덩어리가 되었다."(p.70) "신길만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해 인사를 했다. 그 사람이,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이 그렇게 반갑고도 고마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같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것처럼 마음 환해지고, 가슴이 뜨겁게 울렁거리도록 반가운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리고 무엇이 고마운지 모르면서도 그저 고맙고, 고마웠다. 그 사람이 틀림없이 이 곤궁에서 구해줄 것만 같은, 그가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이 고마운 마음을 일으키고 있었다."(p.56)

 그렇습니다. 당신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들에게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조선'이라는 '민족의 끈' 때문에 말이죠. 실제로 비슷한 습관을 공유하고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그야말로 강력한 '상상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에 대한 자신의 책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8세기 말경에 이 민족주의라는 문화적 조형물들이 서로 관련이 없는 역사적 동력들이 복잡하게 '교차해서' 나온 우발적인 증류물로 창조되었지만 일단 창조되자 그것은 아주 다른 사회적 환경에 다양하게 의식적으로 이식될 수 있는 '조립물'이 되었으며, 여러 종류의 정치적*이념적 유형들을 통합하고 이 유형들에 흡수될 수 있었다."(p.23)

 앤더슨의 말처럼 민족, 민족성, 혹은 민족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위력이 있는 반면 철학적으로는 그 내용이 빈곤하고 일관성마저 결여하고 있"(p.24)는 게 사실입니다. 즉 민족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이념적 유형'들과 통합됐을 때 매우 강력한 행위 동인으로 작용합니다. 당신의 행동은 피식민지배 상황의 특수한 정치적 유형이 '민족의 끈'을 공고히 한 셈이지요. 실제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쇼비니즘'의 광기로, 피식민국가의 해방의식과 결합해서는 민족자결주의로 탈바꿈합니다. 반론의 여지가 없진 않으나 우리나라의 해방에 '민족주의'가 준 함의는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이제 '민족주의는 반역'이 됐다는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 듯 합니다. 혹자는 '좋은' 민족주의와 '나쁜' 민족주의를 지혜롭게 구분하자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만, 공허한 외침으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민족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군 아래 일치단결을 강요하는 한민족 이데올로기는 국가에 의해 '밑으로부터의 희생'을 강요하는 기제로, 다른 한편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를 폄훼하는 기제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혹자는 북한의 존재 때문에, 통일의 당위성 때문에 '민족의 가치'를 옹호하기도 합니다. 일견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기엔 민족이라는 관념만한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통일담론에 있어 왕따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조직인 '민족좌파'는 북한의 핵실험을 묵인하고, 민족주의의 긍정성을 보수해 나가야 할 우파는 북한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둘 모두에게서 공히 '민족주의'가 걸림돌이 된 셈이지요.

박지성의 손을 꼭 부여잡은 이영표의 손. 이 때의 상황은 이렇다. 박지성이 '토트넘'의 진영에서 이영표가 가지고 있던 공을 가로챈다. 박지성이 소속팀의 동료인 웨인 루니에게 그 공을 연결하고, 웨인 루니가 득점에 성공한다. 웨인 루니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사이 박지성이 이영표에게 다가가 미안한 듯 엉덩이를 두들긴다. 이영표는 괜찮다며 박지성의 손을 맞잡는다.

 가슴 찡한 장면이다, 라고 한다. 글쎄. 난 그리 이들의 행동이 그리 가슴 '찡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박지성이 미안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 서로에게 '미안하거나 괜찮다며 두드리거나'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박지성이 미안했다면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의한 감정이어야 맞다. 그렇다면 이 감정을 풀 장소는 그라운드가 아니라 각자의 방에 있는 '전화기'여야 맞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장면을 보고 '울컥' 하는 국민들에 있다. 한민족의 이름으로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두 사람의 '우정'에 감격하는 우리 국민들. 이들과 우리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은 '한민족'이라는 사실 하나다. 자랑스런 한국인의 자랑스런 우정에 '한민족의 긍지'를 자위하는 것이다. 아무런 '우정'에나 감격하는 건 아니다. 이들의 '프리미어'함이 가미돼야 한다.  이게 무슨 대수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저 '우리끼리 만족하며 살면 되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다음을 보자.

 



 "태극전사를 응원하는 마음, 배타적 민족주의를 선동한 것인가?? 아니다. 우리 한민족은 9천년 역사동안 한 핏줄 속에 흐르는 홍익인간, 선민사상으로 나라가 어려우면 하나로 똘똘뭉쳐 외환을 극복해낸 민족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역사를 통해 보면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민족도 보살필 줄 아는 이미 세계화 마인드를 가진 민족이다." - 'SUNDANCE D.SIGN, 웰빙코스님 블로그 중에서.

'선민사상'이 대처 뭔가? '배타적 민족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다른 민족보다 깨어있다는 '선민의식'이 배타성을 불러오는 것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나라가 어려우면 하나로 똘똘뭉쳐'야 한다는 민족의식이 어디로부터 비롯됐느냐도 생각해 볼 문제다. 어디서 많이 봐온 홍보문구 아닌가? '힘들수록 뭉쳐야 한다'는 밑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붉은 악마의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건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신남'은 '놀이'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국가'와 결합해 '국가주의적 도구'로 변모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 국가주의는 종종 우리에게 국가 아래 단결할 것을 강요한다. 국가를 정점으로 한 '종적 단결'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흐리게 만들어 이건희와 전태일을 같은 층위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종적 단결' 아니라 '횡적 연대'다. 

민족주의에 관한 가장 큰 문제점은 앤더슨이 지적한 다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제한된 상상체들을 위해 남을 죽이기보다 스스로 기꺼이 죽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형제애이다." 앤더슨이 이 지적은 민족의 이름으로 전쟁에 동원된 경우를 상정한 듯 보이지만 현재는 전쟁의 자리를 '국가경제'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IMF를 불러오게 한 원인의 분석 없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한 것을 보세요. 민족의 힘을 믿겠다는 상투적인 선전구를 동원해서 말이지요.

최근엔 한-미 FTA가 타결됐습니다. 또 '민족의 힘을 믿겠다'는 얘기를 합니다. 국민을 무한경쟁의 사지로 몰아넣고, '민족의 힘'을 믿겠다니요.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은 스스로의 힘이 부족한 것이며, 이는 자기 책임으로 귀결된다지요. 임지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는 아포리즘은 그래서, 맞는 말이 됐습니다.

물론, 선생님. 당신이 살았던 시대의 민족주의를 간과해선 안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이제 그 시기 민족주의는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아야지, 현재의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피식민지를 견뎌내게 해 주었던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제 자리'에 돌려놓을 때가 됐다는 말입니다. '위안부 문제' 등 여전히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굳이 여기에 민족주의가 투입될 필요가 없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위안부 조사 위원회'는 민족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도 그 시기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근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는 이제 기록으로 남아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이 점에 당신의 비루함을 기록한 조정래의 <오 하느님>은 가치가 있습니다. 역사는 강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경향이 짙어, 삶의 밑바닥에 있었던 당신의 삶은 '한 줄' 따위로 정리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조정래의 다음과 같은 말이 큰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언제 어느 때나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다. 역사는 그 안에 포함된다. 인간을 응시할 수록 거듭하여 인간에 대한 질문과 마주 서게 된다." 조정래의 민족문학이 여전히 유효한 건 '역사 속에서 희생당했던 인간에 대한' 탐구 정신을 놓치고 있지 때문인 듯 보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를 묘사하던 대목에서 코끝이 매워질 정도로 찡했습니다. "니 이름을 왜 길만이라고 지었는지 아냐? 길할 길(吉)자, 일만 만(萬)자, 니 평생 좋은 일만 있으라고 그런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이름 덕도 보는 것잉게, 이름 믿고 무슨 일이고 열성으로 해야 혀." 억울하게도 당신의 이름은 이승에서 단 한번도 당신의 삶이 돼주지 못했다지요. 지금 계신 그 곳에선 이름 덕 보며 사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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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웅진지식하우스>

내 편견일 수 있겠으나, 진중권의 책은 별다른 고려없이 사는 편이다. 나에게 그는 그야말로 이름 하나로 책의 내용을 보증하는 확실한 보증수표인 셈이다.

내가 좋아하는 논객인 '고종석'과 비교해 본다면 진중권은 사실 '되바라진' 경향이 있다. '싸움닭'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비판엔 에누리 혹은 에티켓이 없다. 예전엔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었는데, 지금 생각컨대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그도 그럴것이 예전 그의 되바라짐은 대부분 지독한 보수꼴통에 대한 '거침없는 하이킥'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거침없는 표음'을 상당히 눅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단순히 어학만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미국을 고집하진 않았을 터. 그 때 내가 가진 돈은 전세방에 묻어둔 700만원의 보증금이 다였다.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으나 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세기가 다 지나도록 압도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세계 최강국 미국을 알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게 제일 큰 이유였다. 귀국한 지 2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때의 생각을 복원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애당초 그 짧은 시간동안 미국을 관찰해보겠다는 내 대책 없음이 문제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이물감으로 얼핏 기억에 남듯, 이색적인 생활방식에 대한 당시 내 사고의 편린이 설핏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보았던 이색적인 풍경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1. 내가 약 4개월 동안 체류했던 애틀란타는 미국의 전체 도시를 통틀어서도 교통상태가 불량한 곳으로 유명하다. 출퇴근 시간 도로 곳곳엔 상습정체구간이 끝없이 늘어져 있고, 또 웬 도로공사는 이곳저곳에서 계속되는지. 도로상태만 보자면 서울의 여느 곳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병목을 풀어가는 방식이 이 둘을 가른다.

 

한국에서는 다들 알겠지만 ‘파란불 진입, 빨간불 정지’가 제1원칙이다. 교차로에 이미 차가 꽉 들어차 더 이상 진입할 구석이 없음에도 파란불에는 우선 차머리를 들이민다. 심지어는 빨간불인 상황에서도 교차로의 혼잡함을 틈타 차를 진입시키는 운전자도 있다. 순식간에 도로는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엉망진창이 돼 버린다.

이에 비해 애틀란타에서 병목을 푸는 제 1원칙은 ‘정지선 대기’다. 파란불이 들어와 있더라도 교차로가 혼잡하면 무조건 정지선에서 기다린다. 금세 바뀐 빨간불 탓에 몇 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보다 분명한 점은 다음 턴엔 그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도로엔 항상 차들로 북적대지만 이들의 제 1원칙은 허물어지는 경우가 없다. 파란불 진입이라는 순간적인 이해에 집착하는 사회와 약간의 기다림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전체적으로 공유된 사회는 이처럼 다르다.

 

#2. 역시 애틀란타에서 있었던 일. 내가 가지고 갔던 700만원은 예상처럼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순전히 잠자리가 공짜로 보장된다는 이유 하나로 난 한국인 carpenter(목수)의 보조수가 됐다. 속된말로 노가다판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불법이었다. 그러나 부시도 알고, 체니도 알고, 우리 모두 알듯이 미국은 불법체류자들이 먹여 살리는 국가다. 풍요한 사회에 진입한 국가가 폼 안 나오는 직업을 대신해 줄 불법인생을 필요로 한다는 건 익히 아는 상식이다. 작업현장에 가면 근엄하게 오더를 내리는 소수의 Jack들이 있고 이 명령에 못질, 톱질에 열심인 Mr.Kim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김씨들과 같은 신세의 산쵸들, 즉 히스패닉이 있다. 

 

이들이 작업장에 오자마자 하는 일은 손에 쥐고 있던 카세트를 켜는 것이다. 이들의 라틴은 흥겨운 구석이 있으나 몸을 부리는 일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반해 우리 김씨들은 쉴새없이 손을 놀린다. 몸을 재게 부릴수록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집의 수가 늘어나며 이에 비례해 주머니가 두둑해짐은 물론이다. 무리하게 받은 오더를 채우기 위해 야근을 자청하고, 토․일요일도 가리지 않는다. 이쯤되면 산초들의 정시퇴근과 자진 5일근무가 부러울 따름이다. 내 사수는 마치 ‘습관’처럼 일을 하곤 했다. 그의 악다구니 근성은 그만큼 몸에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일에 지칠 때면 쪽빛 대서양 바다와 야자수나무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미시시피의 한 해안에서…‘카지노’를 즐겼다. 2박 3일 내내. 바다 내음 한번 들이쉬지 않고.


 돈을 벌 요량으로 애틀란타로 옮기기 직전,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봤던 '남북전쟁 재연'광경을 찍은 사진이다. 싸이월드에 올린 사진이었는데, 이 사진 밑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아놓았었다.
"우연히 미국의 civil war를 재연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요즘 들어 부쩍 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왔고, 그들 중 대부분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수고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이 내세우는 노예해방이나 자유, 평등, 등등의 가치 이면에 숨겨져 있는 civil war의 본성을 아는 이가 이들 중 얼마나 될 것인가."

당시 난 미국에 대한 반감이 극도에 달했을 때였다. 지금도 뭐 딱히 미국에 대한 내 감정이 그리 호의적이진 않다. 다만 배울 건 배워야겠다는 '용미'를 어설프게 습득했을 뿐. 이 사진을 보니, 이들의 '국가주의적 면모'도 어렸을 때부터 '전쟁 재연'이라는 '군대화'를 거쳐 형성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 

 

“‘국민성’, ‘정체성’보다 이 책의 의도에 더 적합한 것이 있다면, 아마 ‘하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일 것이다. 우리말로 흔히 ‘습속’이라 번역되는데, 거칠게 말하면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중략) 모든 인간은 같은 ‘류’로서 이른바 공통된 ‘유적’ 특성을 가지나, 특정 사안에 대한 생각, 특정 사건에 대한 느낌,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은 민족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인간의 몸에는 타고난 자연의 바탕 위에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층위가 얹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한국인의 몸에서 그 ‘구성된’ 층위를, 다시 말하면 한국인의 하비투스를 드러내는 데에 있다.”(pp.11-12)

 

진중권이 책을 냈다. 습관처럼 책을 샀다. 진중권. 이름 하나로 책의 내용이 보장되는 몇안되는 필력가 중 하나다.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한국인의 몸에 아로새겨진 습속을 드러낸 글이다. 이를 위해 저급 단어인 ‘국민성’ 대신, 전체주의적 발상이 묻어나는 ‘정체성’ 대신 ‘하비투스(habitus) 개념을 끌어들였다.

 

이 책에서의 한국인의 습속, 즉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근대화’, ‘전근대성’, ‘미래주의’가 한 몸에 뭉뚱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서양에 비해 너무 급속하게 진행된 근대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처럼 근대화가 압축적으로 진행된 사회에는 종종 전근대와 근대의 시간 축이 공시적으로 존재하게 마련이다.”(p.110) 그리고 이 근대화 과정은 호모 코레아니쿠스들을 ‘산업전사’로, ‘반공투사’로 만들었다. 군대화가 곧 근대화였던 셈이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70년대에 노동자는 일터에서는 ‘산업전사’였고, 일터 밖에서는 ‘반공투사’였다. 이 군대의 은유에는 좌우의 차이가 없어, 1980년대 좌익들이 즐겨 부르던 ‘인터내셔널가’의 한국어 버전은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라는 군사적 은유로 시작한다.”(p.32) 전근대적 타성에 젖어 있던 한국사회를 ‘근대적 군대’로 바꾸기 위해서는 전면적 인간개조가 필요한 법. 그리하여 박정희 ‘장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는 제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또한 민족 운명의 공동체라 하더라도 역시 민족의 구성 요소는 개인이다. 우리가 차제에 인간 개조를 부르짖고 민족적 자각을 요청하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p.25)

 

이 책에 소개된 조형예술 사진. 압축적 근대화를 온몸으로 감내한 한국인의 자화상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항상 '더 나은 미래'를 좆아 끊임없이 손을 내밀지만, 사실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헐레벌떡하는. 원래 '더 나은 미래'는 허구다. 오늘 생각한 '더 나은 미래'가 내일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의 성장 일변도 의식은 '더 나음'을 요구하기 때문에 말이다.

호모 코레아니쿠스들은 이 사진처럼 '헐겁다.' 남루한 회사 옷차림에 호모 코레아니쿠스들.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들을 가냘프게 만든다.  

 마르크스는 '종국에 노동은 유희의 형태'로 온다고 말했다. 진중권 역시 미래의 노동은 '유희적' 성격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노동은 '유희를 위해 온 몸을 바치는 노동'이다. 아니, 극단적으로 유희 없는 노동만 가득한 노동. 노동을 위한 노동 일꾼들이 바로 우리들, 한국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개조 프로그램도 뼛속 깊이 박혀 있는 ‘하비투스’를 쉽게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근대화는 전근대적 습속과 공존하는 특이함을 보인다. 요컨대 일반적 의미의 근대화는 ‘합리적 계산능력’이 행동양식의 주된 근거로 활용되는 것을 말한다. 냉철한 이성에 근거한 경제인이 합리적 인간의 표본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양식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정념적이다. 한국인을 묘사하는 단어로 자주 쓰이는 것은 “냄비 근성을 포함, 강인함, 활력, 승부 근성, 도전 정신, 자신감, 대담함, 빨리빨리 문화, 신바람, 악바리 근성, 잡초 근성, 거침, 격정, 난폭함, 떼거리 근성 등”(p.84)이다. 정념의 홍수에 빠져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앞서 서두에 소개한 예를 주목해 보자. 우리의 ‘파란불 진입’은 합리적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아니면 나 하나 빨리빨리 가보겠다는 정념의 소산인가. 밤잠 못자고, 휴일까지 반납하며 죽어라 일만한 Mr.Kim이 카지노에서 애써 모은 돈을 탕진하는 건 경제적 인간의 모습인가, 디오니소스의 감정인가. 

 

 아이러니한 것은 압축성장으로 기인하는 근대와 전근대의 공존이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어느 곳보다 앞선 인터넷 문화가 그 증거다. 인터넷에서 범람하는 창조적 상상력의 ‘콘텐츠’들을 보라. 수초 안에 배꼽을 잡게 만드는 동영상이 넘쳐나고, 기지가 번득이는 패러디도 가득이다. 컴퓨터가 야기하는 디지털 문화는 근대적 텍스트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전근대적 그림, 즉 영상의 영역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호모 코레아니쿠스의 한계가 있다. 즉 우리 한국인은 IT 강국이되, 그 사이에 ‘소비’라는 말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 IT 소비 강국. "프로그래밍을 하는 이들은 문자-수자 코드로 그림을 그리고, 이로써 가상의 ‘창조자’가 된다. 반면에 프로그래밍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림을 세계로 받아들임으로써 가상의 ‘소비자’에 머문다.(중략) 한국의 영상문화는 서구처럼 문자문화의 강력한 저항을 받지 않았다. 문자문화의 전통이 약한 게 외려 신속하게 디지털 영상문화로 이행하는 데에 유리한 조건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서구는 속도는 느려도 문자문화의 바탕 위에서 서서히 영상문화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 없는 그림을 선사 시대의 주술적 상상력이고, 문자로 그린 그림은 디지털 시대의 기술적 상상력이다. 우리의 것은 이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p.209)

 


 이 어찌 유쾌한 상상력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지금 인터넷의 바다에서는 이런 '유쾌함'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우리의 IT가 새지평을 열 수 있는 희망적 조짐이다. 다만 진중권이 우려하는 것은 근대적 이성에 기반한 '텍스트'가 부재하다는 것. '이미지'로만 이루어진 콘텐츠는 '의미없음'으로 이루어진 게 대부분이다. 또한 IT는 '프로그래밍의 생산'보다는 '소비'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물론 텍스트의 부재로 기인한 것이다.  

 

결국 진중권이 말하고 싶은 바는 우리의 몸엔 ‘전근대’와 ‘근대’, ‘미래’의 습속이 교묘히 섞여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신체가 아무리 그로테스크해 보여도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은 바로 그 몸이다. 다만 그 신체는 급조된 근대화에 따르는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아직도 과거의 타성에 사로잡혀 있다.”(p.289)는 필자의 우려가 제법 묵직하게 들린다. 필자는 이 우려를 극복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이런 변화가 가장 신속하고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곳. 이곳에서 신체가 받는 중력의 하중은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지만 신체는 권력의 생체공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나, 동시에 어느 정도는 존재미학을 통해 제 스스로 디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잠재성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늘 새롭게 디자인하는 신체는 최소한 강요된 유목에 따르는 고통을 적게 받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유례가 없던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즉 앞으로의 세기는 ‘새로움’을 디자인하는 시대인 것이다. 근대적 텍스트와 미래주의적 영상이 결합한 창조적 상상력이 그 해답이다.

 

 미래의 동력으로써의 ‘상상력’은 이미 진중권의 이전 저서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이하 놀이)에서 강조했던 바다. <놀이>가 개괄적 이론서라면,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그 이론을 한국인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원체 많은 자료를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하려 했다. 앞에서 소개한 예 이외에도 한국인의 습속이라고 할 만한 수많은 행동양식이 소개된다. 과연 진중권스러운 관찰력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발견이다. 다만 그의 경험칙이 호모 코레아니쿠스의 일반화로 넘어가는 급격한 전환을 지적할 수는 있겠다. 한 사람의 시선은 ‘편견’으로 가득차 있을 수 있으니. 그러나 ‘정교한 이론화’를 결여했다고 해서, 관찰의 표본수가 적다고 해서 그의 주장이 싸그리 부정될 순 없을 듯 보인다. 통계엔 허수가 가득하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그리고 진중권이라는 이름이 보증하는 ‘칼날 같은 이성’을 믿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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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에떼 -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비겁하게도 난 이들을 마음 속으로만 지지하고 응원한다. '세계화', '개방' 이라는 단어는 거역할 수 없는 성역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왜 하필 '영미식 개방'이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IMF체제에 의해 재정비된 이후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개방의 내용은 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는 열려있는 시간이며 채워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난 이들의 결집 정도가 FTA가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양극화의 간극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 믿는다. FTA찬성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언죽번죽 해댄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저력을 믿는다."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 자기 몸을 생고생시키는 데 이력이 난 국민들의 이력을 믿는단다. 이 어찌 대책없는 책임 떠넘기기냐만은 나 또한 전혀 반대의 이유로 '우리나라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군부독재의 총칼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기어이 '민주주의의 봄'을 만든 우리네 투쟁의 저력을 믿는다는 것이다.

며칠 전 反FTA집회를 마치고 술자리에 합류한 후배녀석에게 난 이런 말을 했다. "난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FTA를 찬성하며, 불가측하다는 이유로 反FTA 역시 찬성한다." 그 녀석은 물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물타기식 자세도 어이 없음이거니와, 다른 무엇보다도 난 그의 '사수'였다. 그렇다. 난 그가 대학에 첫 발을 내딛었던 날 그의 손목을 거칠게 부여잡은 채 소위 '투쟁현장'에 끌고간, 녀석의 '사수'였다. 그 녀석과 난 언젠가부터 대화가 뜸해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마주한 자리. 녀석은 당연스레 나를 자기와 같은 '편'일 것이라고 여겼을테다. 난 이 지면을 빌려 '커밍아웃'한다. 난 이제 어떤 '편'이나, '주의자' 가 아니라고. 김훈의 언어를 잠시 빌리면 난 '내 사유의 계통없음을 이제 더이상 숨기지 않겠노라고.'

 고종석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모아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바리에떼>(개마고원*2007). '문화와 정치의 주변풍경'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주제의 영역을 한정하지도 않았거니와, 신변잡기풍의 이야기도 군데군데 실려있다. 그는 이러한 신변잡기에 대해 우려한 듯 서문('군소리'라는 제목을 달린 서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껏 내 이름으로 내보낸 책들이 으레 그랬듯, 이 책 역시 그 짜임에 어떤 체계라 할 만한 것이 없다. 그 비-체계성이 이전 책들에서보다도 사뭇 두드러져, 나는 궁리 끝에 이 책의 표제로 '바리에떼'를 취하기로 했다. '바리에떼'는 프랑스어로 다채로움(곧이곧대로 얘기하자면 잡다함!)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버라이어티'에 해당한다. 왜 하필 프랑스어냐고 따지는 독자분들께는, '잡다함'이나 '버라이어티'라는 말이 한국어 화자들에게 행사할 정서적 환기력을 조금이라도 눅이고 싶었다는 변명을 드리고 싶었다. 이 책은 일종의 버라이어티쇼다.(이하 생략)"    

 고종석, <바리에떼*문화와 정치의 주변풍경>, 개마고원, 2007

  '바리에떼'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웬 '겉멋 부리기?'식의 반응을 보였다. 고종석의 얼굴에서 풍기는 '옆집 아저씨'  이미지에 의한 선입견 때문인지, 난 그가 멋부리기엔 전혀 소질이 없거나, 혹은 그런 건 애당초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가 여지껏 낸 책들의 제목을 쭉 훑어보니 또 그런 게 아니었다. 그가 붙인 제목은 그럴싸한 게 꽤 있었다.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2006, 개마고원), <모국어의 속살>(2006, 마음산책), <엘리아의 제야>(2003, 마음산책), <히스토리아>(2003, 마음산책), <언문세설>(1999, 열람원) 등.  인간의 편견이란 이리도 저급한 것이니 싶었다. 그의 넉살좋게 생긴 얼굴에 '촌스러움'을 떠올리는 지독한 편견.

 'Variete', 바리에떼. 프랑스어로 '다채로움'이라는 뜻이란다. 영어로는 버라이어티. 이곳 저곳 흩어져 있던 글을 한 책으로 엮은 터라 글의 소재건, 내용이건, 주제건 참 '버라이어티'하다. 그저 자기 입맛에 맞는 풍경을 골라 읽으면 되지 싶다. 원래 책은 '발췌독'에 쏠쏠한 재미가 있다. 나 또한 이 책의 뒤편에 있는 시평은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너뛰었다. 시는 해석이 곤란한 영역이 아닌가. 라고 나는 또 하나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유를 들춰내고 싶었다. '바리에떼', 즉 다채로움을 하나로 엮어낼 만한 하나의 꼬챙이를 찾아 이 책 전체의 내용을 엮어보고 싶었다. 원래 단순한 놈이 무식한 행동을 쉽게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내 무식함의 꼬챙이로 삼아버렸다.

 "결국 내가 20세기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모든 순수한 것에 대한 열정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순수한 열정이라는 것은 말을 바꾸면 근본주의, 원리주의다. 그것이 종교의 탈을 쓰든, 학문이나 도덕의 탈을 쓰든, 인종이나 계급의 탈을 쓰든 마찬가지다. 순수에 대한 열정은 좋게 말하면 진리에 대한 열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광신이라는 게 별게 아니라 진리에 대한 무시무시한 사랑이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무시무시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소수파나 이물질을 배제하는 전체주의의 문을 연다."

 고종석. 그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부른다. 그러나 그를 아는 이들, 그의 글을 즐겨 보는 독자들은 그를 '진보주의자'로 여긴다. 그는 또한 스스로를 지독한 '개인주의자'로 소개하지만 그의 사유 곳곳에는 '연대의 껴안음'이 보인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주의자'는 대단히 어색해 보인다. 그는 누구의 '편'도 함부로 들지 않으며, 반대로 누구의 '탓'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의 사유는 오롯이 '상식'에 기초한 인간의 나아갈 길을 겸손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봐도 '배타적 개인주의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복거일을 대할 때를 보자. 복거일은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라는 글을 통해 소위 '친일 부역자'에 대한 변호를 시도했다. 고종석은 이 책의 <식민주의적 상상력*복거일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 부쳐>라는 글에서 복거일의 친일 불가피론(그 시대의 친일은 시대의 정황상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는 식의)과 이른바 근대화론(일제 시대를 통해 우리나라는 비로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도입할 수 있었다는 식의)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그런데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면 겸손함이 지나쳐 그의 비판을 오히려 무디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다. "나는 이제 연부역강하다고는 할 수 없을 혜안의 문필가가 왜 굳이 이 책에 소중한 열정을 지불했는지 쉬이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저자의 글과 책을 여느 독자에 견주어 큰 저항감 없이 거의 다 따라 읽어왔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변호>의 '급진적 파격'에 흔쾌히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부분 부분의 세목들에서는 동의할 수 있는 점이 적지 않았으나, 전체로서의 이 책의 논지에 나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요컨대 나는 이 책이 불편했다. 그것은 그토록 버리고 싶어했던 민족주의를 내가 아직도 말끔히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p.88)

 민주당 분당에 이은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당의 가벼움"(p.184)이라 일갈하면서도, 그는 끝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우리가 지켜내야 할 참여정부"(p.196)라며 보듬는다. 이쯤되면 그 역시 사유의 '계통없음'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계통없음'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적어도 내가 볼 때 그의 계통없음은 '주의', 'ism', '편먹기'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것일 뿐, 그의 사유는 일정한 '흐름'을 지니고 있다. '상식'.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이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주의'에 대한 집착일테다)로 거부되는 상식에 기반한 글을 그는 쓰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강준만은 '책임의식'에 의한 글쓰기라고 봤으며, 이에 바탕한 고종석식 '진보주의'를 주장했다.

 난 언젠가부터 '이념'이라는 것에 짙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과연 모든 사회현상을 명쾌히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생각이라는 게 존재하느냔 말이다. 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꼭 대체복무를 인정해야 하며,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람은 왜 북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수 없느냐는 말이다. 왜 FTA를 찬성하는 사람은 反FTA 깃발을 들 수 없느냐는 거다. 20세기를 진득이 살아낸 우리들의 사유가 언젠가부터 '줄서기'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사건이 있고, 사건을 해석하는 상식이 있고, 이것에 기반한 이념이 있는 게 아니라 이념이 있고, 그 이념으로 해석하는 사건이 있고, 해석된 사건에 의해 상식이 결정되는. 이념에 의한 줄서기. 고종석의 글이 좋은 이유는, 그가 겸손한 자세를 매사 일관되게 유지하는 까닭은 그가 모든 사회현상의 이면성을 숙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에 의한 줄서기에서 단호히 벗어나 각자의 '바리에떼'(다채로움)을 충분히 이해하려는 자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겸양이다. 그래서 난 '고빠'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자 소설가 고종석. 그의 글은 하도 '전방위적'이라 하나의 타이틀로 소개하기 버거운 구석이 있다. 최근엔 한국일보에 '언어학'에 관련된 깊은 사유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를 어찌 '소설가', '사회비평가' 라는 걸로 한정할 수 있겠는가.  헐거운 단어이지만 '작가' 정도가 그나마 무난할 듯.

 이 사진을 보니 고종석의 이미지에 대한 내 편견이 무리는 아닌 듯 보인다. 갈수록 민둥해지는 머리와 이에 비해 갈수록 평수를 넓혀가는 이마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 내는 저 후덕함이여. 딱 옆집 아저씨 풍이다. 저자에겐 미안한 편견일 수도 있지만 난 이래봬도 '고빠'다. 고종석 오빠.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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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깃발
제임스 브래들리.론 파워스 지음, 이동훈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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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울역에 있던 노숙자에게 목도리를 건네는 '목도리녀.'

개인적으로 난 그녀의 행동에 '작위성'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세상엔 어느 누구나 인정하는 '미덕'이 있게 마련인데,
이런 것에까지 '악의'가 스며들었을 때 그 사회가 주는 비정함을 내 스스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스틸 컷' 한 장이 만든 또 다른 스토리의 '허구성'이다.
  

 

1. 서울역의 목도리
 
서울역에 있던 노숙자에게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건네고, 빵과 우유를 사주던 모습이 일반인의 카메라에 찍혀 유명세를 탄 대학생이 있었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한 시민이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아 인터넷에 소개하면서 이 사건은 유명해졌는데, 이후 국내의 여러 매체가 이를 기사화했다. 그녀는 ‘목도리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가 됐고, 그녀의 아버지 역시 십수년간 독거노인을 돌보는 등 선행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두 모녀는 ‘부전여전’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목도리녀가 취업을 준비 중인 미국 유학파 출신이라는 것과 모 금융회사에서 그녀를 고용할 것이라는 기사가 났다. 그리고 이 기사는 확인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허위’기사 혹은 조작 기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목도리녀는 모든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잠적을 했다. 목도리녀를 지켜보던 몇몇 네티즌들은 그녀가 취업을 위해 선행을 미리 ‘계획’하고 찍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행위는 실제인가, 거짓인가. 
 

영화 <아버지의 깃발>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키워드로 쓰이는 사진. 이 사진 한장이 미국민들에게 주는
감동은 컸다. 전쟁은 곧 끝날 것이며  따라서 내 아들이, 남편이 곧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고,
훨씬 더 '의도적'으로는 '미국의 승리'를 확신케 해주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면?

 

2. 아버지의 깃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미군해병부대가 일본군의 요새지역인 이오지마섬에 투입된다. 한 달이 넘도록 전투를 계속한 끝에 미군은 이오지마섬의 꼭대기에 성조기를 꽂는 데 성공한다. 마침 그 모습이 한 사진작가에 의해 찍히고, 이 사진은 신문매체를 통해 미국 전역에 소개된다. 이 사진은 언제 끝날지 몰라 지루해 하던 미국인들에게 ‘전쟁의 종식’ 혹은 ‘연합군의 승리’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미국인들은 사진 한 장에 열광했다.
 
  그러나 사진 속 장면은 신문의 설명처럼 그들이 ‘처음’ 성조기를 꽂을 때가 아니었다. 사진 속 6명의 대원 중 끝까지 살아남은 3명의 대원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지만 침묵한다. 전쟁 때문에 엄청나게 늘어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의 성금이 필요했던 미국 정부는 이들을 영웅으로 만들고, 진실을 조작할 것을 지시한다. 이들 만들어진 ‘영웅’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전국을 돌며 모금운동을 벌이고, 사진에 열광했던 미국인들은 주저 없이 돈을 내놓는다. 이들은 전쟁 중에 스러져간 동료들과 별 것 아닌 행동 하나로 ‘영웅’이 된 스스로를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전쟁의 기억이 국민들로부터 가물가물해져가는 것과 동시에 이들 ‘영웅’ 역시 가물가물 잊혀진다. 이들의 행동은 실제인가, 거짓인가.     
 
 

3. 장 보르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는 제1차 이라크 전쟁이 한창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를 때 ‘이라크전은 발발하지 않았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CNN 등의 미디어가 소개하는 이라크전은 첨단무기에 힘입은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만 있을 뿐 전쟁의 진짜 모습, 즉 살육전의 아비규환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TV를 시청하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이라크전은 첨단 무기가 시연하는 화려한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 이미지는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승리’라는 메시지를 ‘마사지’해주었다. 제2차 이라크전쟁의 비극이 제1차로부터 기인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 마사지는 거짓인 셈이다. 여전히 미국은 이라크전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지’에 의해 실제와 거짓이 모호해진 현대 사회를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라 불렀다.
 
  보드리야르가 주목한 매체는 사실 ‘TV'나 ’영화‘ 등의 영상매체였다. 이들의 연속성은 사진에 비해 훨씬 ’사실감‘이 높다. 반면 교묘한 조작에 의한 왜곡 역시 용이하다. 섬세하게 조작된 영상 메시지는 보는 이의 오감을 ’마사지‘ 해 준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봤듯, 실체와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시뮬라시옹‘의 사회는 무릇 영상매체에 의해 주도되는 것만은 아니다. 목도리녀는 인터넷과 휴대폰카메라의 결합이 창조한 ’시뮬라시옹‘이며, 아버지의 깃발은 사진 한장과 국가주의, 영웅주의가 결합했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2005년 대림 미술관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사진전'을 선뵌 적이 있다(고 한다.)
사진전의 제목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다. 자신의 시뮬라시옹 이론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듯 이 전시회
한켠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은 침묵한다. 사진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현실과 그 이미지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다.
관람객이 이 사진을 보고 그 이미지에 관해 의문을 품고 있는데,
사진이 어떠한 답도 내놓지 않고 아무런 답도 해주지 않을 때 그 이미지는 순수하다. "
 
 
  우리는 무수히 많은 거짓 이미지에 노출돼 있다. 우리가 사실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여러 장면이 사실은 여러 이유로 조작되고, 왜곡된다. 속된 말로 감동의 눈물바다였던 ‘지하철 결혼식’ 동영상은 연극과 학생들의 연기였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한 여중생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올린 영상 역시 철저히 의도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황우석 사건의 여진이 가시기도 전에 이병천 교수의 늑대 복제 논문 역시 조작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다 심각한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러한 조작이 더욱 용이해졌다는 점이다.  실제 인터넷을 떠도는 ‘몰카’영상을 보라. 포토샵에 의해 섬세히 ‘뽀샵’처리된 사진들을 보라. ‘명품’보다 더욱 성능이 우수한 ‘짝퉁’을 보라. 이들은 대부분 실제를 가장한 ‘가짜’다. 과연 현대는 실제와 거짓의 구분이 불가능한 ‘시뮬라시옹’으로 가득한 사회가 아닌가.
 

서울대 이병천 교수팀에 의해 복제된 늑대 '스널피'와 '스누피.'
이 기사가 나간 후 국내의 보수언론들은 '생명복제 시대 다시 열어야 한다' 식의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러나 이 실험 역시 '황우석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수치가 조작되고, 연구 성과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마르크스가 그랬던가.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고.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사실 황우석 사건은 '비극'적 측면이 많았다. 과학계의 입장에서도 그렇거니와, 아무것도 모르고 공짜 홍보에 열을 올렸던 '언론계'의 입장에서도. 국가도, 국민도 모두 일인의 사기 행각에 허무하게 당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똑같은 내용의 논란이 반복됐다. 이건 '코미디'에 가깝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은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이긴 하나, 전쟁영화라 보긴 힘들다. 전쟁영화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스펙타클’한 영상은 원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 그는 다른 작품을 통해 ‘휴머니즘’에 대해 얘기한 적이 많은데 전쟁영화에서 나오는 전우들간의 우정이야 모든 전쟁영화의 공통 화두라 특별할 만한 게 없다.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개인들의 방황 역시 다른 영화에서 여러 번 다루었던 스토리다. 이 영화가 내게 새로이 다가왔던 부분은 ‘미디어에 의한 현실 왜곡’이었다. 굳이 미디어로 한정할 수 없는 현재의 영상공간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대사회에 꽤나 신선한 문제 거리를 던져준 셈이 아니겠는가? 이 영화에서의 왜곡이 ‘국가’에 의해 주도됐다면 현재의 이미지 왜곡은 콘텐츠의 생산자에 의해 직접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다를 뿐. 더욱이 현재의 콘텐츠는 생산자과 소비자의 구분 없이 ‘유비쿼터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지에 의한 현실 왜곡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UCC가 상징하는 민주성을 마냥 긍정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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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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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문제다. 위의 그림은 3월 27일자 경향신문의 1면 톱기사와 그 밑에 배치됐던 광고물을 스크랩한 것이다. 1면의 기사에서는 '목매는 협상'에 끌려다니는 한미FTA와 최근 협상타결에 실패한 한-말레이시아 FTA를 비교해 놓았다. 같은 면 한국무역협회 등에 의해 실린 광고물은 한미FTA에 의한 '개방'이 우리나라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을 담고 있다. 한미FTA가 세간의 집중을 받은 이후 경향신문은 꾸준히 그 위험성을 지적해 왔다. 가령 오늘자(4월 2일) 신문에서는 1면 톱을 비롯, 총 9면을 할애하여 FTA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보도했다. 내가 지금 문제 삼고자 하는 바는 FTA 찬반논쟁이 아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실려있음이 분명한 1면 톱과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중요 밥줄'일 수밖에 없는 하단 광고물 사이의 이물감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다. 이 이물스런 편집은 시사저널 사태로 촉발된 자본-언론간 엇나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엄연히 '사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언론사가 자본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기란 쉽지 않다. 군부독재 시절의 언론탄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과거의 언론사들처럼 말이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 전두환을 옹호하는 기사를 썼으며, 오랫동안 '김국'라는 애칭으로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맡았고, 지금은 당대의 문장가로 평가받는 '김훈'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젊은 기자 시절에 나와 내 선배들은 인간의 사회가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가치에 의하여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언론 전체는 패배하고 좌절했습니다."(p.223) 그는 시사저널 사태를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자신의 후배들을 보며 비참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오늘 시사저널의 사태는 저 개인의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30년 전 내가 젊은 기자였던 시절에 우리 나라 언론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그 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 시절이었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 자리에서 무너졌던 것입니다. 저도 그 때 무너진 기자 중 하나입니다. 오늘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한 사람이죠.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내 후배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30년의 세월을 무효화하는 것이고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부정하는 사태이기 때문에, 나는 내 후배들이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끝없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p.223)



2006년 6월 19일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 전횡 의혹을 다룬 기사를 인쇄 직전 삭제하면서 발생한 '시사저널 사태'는 생각처럼 쉬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물론 우리가 쌓아놓은 '민주주의적 가치', '언론윤리의 잣대' 에 따르면 이른바 '편집권'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편집국에 속해있음이 분명하다. 다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사가 상품이 되는 엄연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편집권'이 언론사의 경영권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문제다. 역시 그 자신 기자로 오랫동안 생활해 왔고,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고종석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편집권은 전적으로 편집국에 속한다고 무 자르듯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매체의 편집권은 그 언론 기업의 경영권 일반을 구성하는 하위 범주라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기사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은 경영자다). 편집국장에 대한 인사권이 경영진에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것은 시사저널만이 아니라 사기업 형태를 띤 다른 언론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나는, 우리가 자본주의의 공기를 숨쉬고 있는 한, 매체의 보도와 논평에서 자본과 경영의 그늘을(다시 말해 '장사'의 그늘을)말끔히 걷어 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p.242) 고종석이 말한 '사기업의 형태를 띤' 언론사의 예외로 둘 수 있는 언론사는 KBS 등 공영방송과 국민주주 혹은 사원주주 등 독특한 형태를 띤 언론사인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주주의 입김으로부터 극히 자유로운 '경향신문'조차 자본의 유혹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이라크전쟁 반대' 등 '평화적 가치'를 내내 지지한다던 한겨레 역시 미국산 전투기를 광고물로 실었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자본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주는 것은 '언론의 제역할'을 포기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언론은 이른바 '공익'(과연 공익이 무언가, 공익의 범위를 어디까지 놓아야 할 것인가. 언론사의 선택에 의해 달라지는 공익의 내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의 물음은 또 다른 문제다.)을 알리는 데 존재의의가 있으며, 현재 공익에 맞부딪히는 가장 강력한 존재가 '자본'인 사실 또한 엄연하다. 우리가 폭력의 공포 속에서 어렵사리 획득한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선 필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야 하며, 이를 위해 '편집권의 독립'이 핵심 요건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공익', '자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물질의 유혹 앞에서 쉽사리 무릎꿇기 쉽지만, 그것을 잃고 난 후에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 굴욕감은 물질이 주는 단물보다 훨씬 크다. 그런 점에서 시사저널 사태가 주는 묵직한 경고음을 그저 넘겨들어선 안된다. 고종석의 말을 더 들어보자. "그러나 나는,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그 고귀한 자유가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거기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권을 편집국 기자들이 공유하고, 어떤 사안을 기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 판단이 편집국장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은 그런 민주주의적 가치의 일부다."(p.242)



이 책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은 시사저널 기자들의 일상을 담은 글이다. 보다 뚜렷하게는 시사저널 기자들이 '진퉁' 시사저널 재직시 썼던 기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기도 했고, 시사저널과 함께 보냈던 지난날의 애환을 소소히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책 중간중간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는 결기가 묻어나기도 하고, 기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가짐'을 비장한 각오로 보여주기도 한다. 비단 '시사저널' 기자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기자들이기필코 수호해야 할 행동 원칙이 아닐까 한다.

 '기자'가 되겠다고 작심한 나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방황하지만, 수백번씩 좌절하지만...그래서 읽어본 책이다. <기자로 산다는 것.> 아직 '왜' 기자가 되려고 하는가, '어떤' 기자가 되겠는가 등의 당위론적 질문들에 마땅한 대답을 구하지 못한 터다. 글쎄, 이 책을 본 이후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기자가 된다면 이들처럼 '꿋꿋'했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당당'하길 바란다.

 '짝퉁' 시사저널이 발간된 이후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더욱 큰 것 같다. 외로움의 문장들이 가끔 눈에 띈다. 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꼭 이들을 만나봐야 겠다. 이들이 친 천막 풍경을 한번쯤은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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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7 1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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